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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여인숙. 이곳에는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쪽방촌이다.
 S여인숙. 이곳에는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쪽방촌이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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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여인숙.

대구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맞은편 낡은 주택들 사이에 있는 이곳은 이름은 여인숙이지만 쪽방으로 불린다. 2층 건물로 된 여인숙에는 20여 개의 방이 있다. 1층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 평(3.3㎡) 남짓한 방들이 이어져 있고 대낮인데도 팬티만 입고 누워 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방에는 조그만 담요가 한 장 깔려 있고 담요 위에 베개 한 개와 얇은 이불이 한 장 놓여 있다. 낡은 선풍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고 티비는 나오다가 안 나오다가 한다. 소리도 들렸다 들리지 않았다 제멋대로다.

여인숙 주변에 낡은 쪽방촌이 여러 곳 있고, 이곳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한 달에 15만 원 가량의 월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나이가 많고 몸이 아프지만 일을 할 수 없고 기초수급권자이거나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한 평 쪽방에 누우니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대구의 한 쪽방촌 풍경. 복도 양쪽에 한 평 남짓한 집들이 연이어 있다.
 대구의 한 쪽방촌 풍경. 복도 양쪽에 한 평 남짓한 집들이 연이어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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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구의 날씨는 섭씨 35도를 넘었고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더웠다. 하루를 묵겠다며 이곳을 찾자, 주인은 1만 5000원의 방값을 요구했다. 에어컨이 있는 방이라고 했지만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1만 원을 주고 방으로 들어섰다.

쪽방에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한 뼘 남짓한 작은 창문에는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누워서 발을 뻗으니 방 끝과 끝이 거의 닿았다. 반대쪽으로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방의 너비는 한 평보다 약간 넓었다.

계단 입구의 첫 번째 방문이 열린 곳을 보니 70대가 넘은 노인이 혼자서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선풍기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갖은 옷가지들이 벽면에 걸려 있다. 냉장고는 보이지 않았다. 먹다 남은 음식과 반찬이 작은 밥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른 방도 마찬가지였다. 한 노인은 불을 끈 채 팬티 바람으로 티비만 주시하며 누워 있었다. 티비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인기척도 없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빈 컵라면 용기가 뒹굴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하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계단 입구에 공동화장실과 공동세면장이 있다. 하지만 날씨가 무더운데도 누구 하나 샤워를 하거나 씻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방 안에 앉아 한 시간이 지났다.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뜨거운 바람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웃옷을 벗어버리고 말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람들이 왜 옷을 입지 않고 누워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복도로 나왔다. 문이 열려 있는 방을 두드렸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먼저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프다며 방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다른 방을 두드렸다. 아파서 잘 듣지도 못한다며 "말을 많이 하면 괜시리 화가 나니까 그냥 문을 닫고 나가 달라"고 다그쳤다.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계단 밖으로 벗어났다.

대구시 중구 달성동의 한 쪽방촌. 한 평 남짓의 방안에는 조그만 선풍기와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대구시 중구 달성동의 한 쪽방촌. 한 평 남짓의 방안에는 조그만 선풍기와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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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저녁 무렵 어두컴컴해지면서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옆방에서는 누구도 밥을 먹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간 있다가 쪽방촌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쪽방촌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정아무개(68)씨를 만났다. 그는 폐가 아파서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전혀 일을 하지 못해 기초수급비와 노인연금 등에서 나오는 58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몸이 아프면서 방랑생활을 하다 대구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그는 결국 병이 악화돼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병원의 소개로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정씨는 "방세 15만 원 내고 약값 나가고 생활비로 쓰다 보면 늘 부족하다"면서 "하지만 나는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살고 싶다. 내가 도움을 받으면 나를 도와주는 분도 힘들고 나도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숨이 차서 밥을 잘 먹지 못 한다"면서 "밥맛도 없고 반찬을 사다 먹어도 금방 시어지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겨울에는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는데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까 옷을 벗고 선풍기를 틀어도 맥이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줄에 목을 맸지만 살아남아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돼"

한 평 남짓한 쪽방에 한 노인이 옷을 벗은 채 잠들어 있다. 방안에는 옷가지들로 가득하다.
 한 평 남짓한 쪽방에 한 노인이 옷을 벗은 채 잠들어 있다. 방안에는 옷가지들로 가득하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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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대변을 보러 갔다가 넘어졌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구조가 되지 않았어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 시간 넘게 거기 있을 수밖에 없었죠. 결국 사람들이 와서 구해줬는데 방에 들어오니까 어지러워서 나가지를 못해요."

이아무개(75)씨는 농촌에서 월급을 받으며 트럭운전을 하다가 쓰러져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내 몸은 항상 건강할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운전을 하다 아파서 도로가에 차를 세워두고 병원에 왔다"면서 "수술을 했는데 창자가 썩어서 일부를 도려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초수급자로 분류돼 한 달에 60만 원을 받아 월세 16만 원을 내고 나머지는 약값과 병원비, 생활비로 쓰고 있다. 정씨에 비해 월세가 1만 원 높은 것은 방 안에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기 때문에 전기세로 1만 원을 더 내는 셈이다.

이씨는 "소변을 보러 가려고 해도 넘어지고 못 먹고 힘드니까 차라리 죽으려고 목을 매달았다"면서 "내가 하도 답답해서 남 고생 시키면 머하겠노 싶어서 솔직한 말로 죽어뿔라고 목을 맸는데 저게 터져서 죽지 못한기라"라고 말하며 창문 위에 걸려 있는 노란 줄을 가리켰다. 끊어진 줄이 못에 묶여 있었다.

그는 "넘어지면서 기절했는데 깨어나서 보니 목에 졸린 자국이 있고 노끈은 끊어져 있어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지금까지 버티면서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울먹였다.

오아무개(76)씨는 "여름이 힘들지 겨울에는 두꺼운 옷 많이 입으면 된다"면서 "옷을 벗고 있어도 땀이 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공동세면실에 가서 좀 씻으면 시원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몸이 성해야 혼자 씻기라도 하지, 누가 내 몸을 씻어주겠소?"라며 머리를 돌렸다.

식지 않는 열기에 열대야까지,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다

쪽방촌의 공동세면실. 무더운 날씨인데도 누구도 나와 씻지 않았다.
 쪽방촌의 공동세면실. 무더운 날씨인데도 누구도 나와 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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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늦은 밤인데도 열대야 때문에 땀으로 뒤범벅이 됐고 몸은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가끔 혼자 나와 바가지로 물을 붓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더위를 참으며 잠이 들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는 약 780여 명이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국에는 1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 지자체에서 집계한 것으로, 채 드러나지 않은 쪽방주민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낡은 선풍기나 그마저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최병우 대구주거복지센터 소장은 "여기에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이분들은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더 밀리면 노숙밖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여기 계신 분들은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면서 "겨울에는 연탄을 보내주기도 하니까 그나마 나은 편인데 여름에는 창문이 있는 곳도 있고 창문이 없는 곳도 있다. 창문이 있어도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쪽방 주민들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곳에 계신 분들은 지역 시회에서 배제된 분들"이라며 "몇 십 년 살아도 동네 사람이 아니에요. 주민들이 이들을 동네 주민으로 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쪽방의 월세가 너무 비싸다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평짜리 원룸에 살아도 30만 원 남짓이면 가능하지만 이곳에선 1평 남짓의 방에 살면서 월 15만 원 정도 지불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일을 하지 못하거나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낮은 쪽방 주민들이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높기 때문에 주거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다며 "지칠 대로 지쳐 이곳에 온 이들을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쥐죽은 듯 고요한 쪽방촌의 밤도 깊어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방 안에서 여러 잡념이 생각났다. 무더운 열대야의 밤을 힘들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쪽방촌 사람들의 모습이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태그:#쪽방촌, #쪽방 체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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