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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의 ‘크루즈’ 신형은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크기를 키우고 무게는 줄였다. 포스코에서 생산한 ‘초고장력이나 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무게를 130kg 줄여 연비를 확보하는 동시에 안전성을 높였다. 아울러 ‘말리부’에 적용한 쉐보레 패밀리룩을 승계했다.
▲ 크루즈 한국지엠의 ‘크루즈’ 신형은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크기를 키우고 무게는 줄였다. 포스코에서 생산한 ‘초고장력이나 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무게를 130kg 줄여 연비를 확보하는 동시에 안전성을 높였다. 아울러 ‘말리부’에 적용한 쉐보레 패밀리룩을 승계했다.
ⓒ <사진제공ㆍ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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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키우되 무게 줄이고 1.4터보엔진 장착했지만

한국지엠은 지난 3월 9년 만에 쉐보레 크루즈 풀 체인지 모델(=올 뉴 크루즈)을 출시했다. 한국지엠 경영진과 노동조합 모두 말리부의 성공 요인과 성능을 승계한 크루즈에 거는 기대가 컸다.

크루즈는 중형 세단 말리부처럼,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차체를 키우고 중량은 무려 130kg을 줄였다. 포스코에서 생산한 초고장력이나 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무게를 줄여 연비를 확보하는 동시에 안전성을 높였고, 1.4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을 장착해 배출가스 감소와 고효율을 달성했다.

지난해 말리부가 몸집을 키우되 무게를 줄이는 방식으로 중형(=소나타 급)과 대형(=그랜저 급) 세단 시장을 파고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크루즈 또한 인기를 끌 것으로 한국지엠은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실패로 끝났다.

3월 출시 이후 7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7309대에 불과했다. 3월에 2147대를 기록한 뒤 신차 효과를 보지 못하고 바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4월 1518대에서 5월 1160대로 떨어졌다가 6월에 소폭 반등해 1434대를 기록하더니 7월에 다시 1050대로 뚝 떨어졌다. 신차인데다 여름 휴가철 자동차 구매 상승 여건을 감안하면, 7월 판매 실적은 최악이나 다름없다.

크루즈의 실패는 경쟁 업체에서 경쟁 차종 신차를 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이해하기 어렵다. 크루즈와 동급은 현대차의 아반떼, 르노삼성의 SM3, 기아차의 K3 정도다. 이들 차종의 신차가 없었는데도, 크루즈는 신차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크루즈의 실패는 성능을 따지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지엠은 다운사이징(downsizing, 소형화)해 개발한 4기통 1.4리터(1400cc) 가솔린 터보엔진을 크루즈에 장착했다. 최대 출력 153마력과 최대 토크 4.5kg.m로 동급 차종 최고 연비와 출력을 자랑한다. 한국지엠이 밝힌 복합연비는 1리터당 13.5km에 이른다.

1.4리터 터보엔진은 가솔린 2.0리터 엔진과 성능이 비슷하지만, 2.0리터 엔진에 비해 배기량이 적어 친환경적이고, 기름을 덜먹기에 효율적이다. 국내 수입차들이 터보엔진을 장착한 것과 같은 이치다.

또, 크루즈에 장착한 3세대 6단 자동변속기는 동급 차종에서 고효율 구동력 전달과 부드러운 변속감에서 비교우위를 자랑했다. 아울러 차체의 74.6%에 이르는 범위에 포스코가 생산한 초고장력이나 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차체를 키우면서도 무게 130kg나 낮춰 연비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차체가 커진 덕에 뒷좌석에 여유 공간을 확보했다. 준중형 세단이지만 중형에 버금가는 여유 공간이 생겼고, 적재 공간(=트렁크) 역시 중형에 버금가는 469리터를 확보했다.

세련된 디자인 또한 출시 당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도 크루즈는 시장에서 실패했다. 그 이유는 뭘까.

한국지엠이 지난 3월 17일 실시한 신차 발표회 모습. 당시 제임스 김(사진 오른쪽) 한국지엠 사장은 ‘올 뉴 크루즈’가 준중형 세단의 새 기준이라면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시장에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
▲ 한국지엠 한국지엠이 지난 3월 17일 실시한 신차 발표회 모습. 당시 제임스 김(사진 오른쪽) 한국지엠 사장은 ‘올 뉴 크루즈’가 준중형 세단의 새 기준이라면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시장에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
ⓒ 사진제공 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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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사양, 말리부보다 비싸게 가격책정

자동차 제조 회사들이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신차의 성능과 옵션을 강조하지만, 시장의 요구는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 구매 기준은 성능, 가격, 디자인이다. 크루즈는 성능과 디자인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가격 책정에 실패했다.

이는 소비자와 딜러가 모두 한목소리로 하는 얘기다. 지난달 크루즈를 구입한 G(41)씨는 "저속 기어변속 때 약간 꿀렁거림이 있지만, 중ㆍ고속에서 잘 달리고 잘 돌아간다. 묵직한 느낌도 좋다. 터보엔진 외에도 '오토 스톱 시스템'으로 연비도 좋고, 정지할 때 소음도 적다"고 한 뒤 "그런데 비싸다. 비싸지만 안정성을 높이 평가해 구매했다"고 말했다.

쉐보레 대리점의 한 딜러는 "차는 정말 잘 만들었다. 그런데 가격 책정에 실패했다. 비싸니까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단적으로 크루즈 1.4터보엔진 최고급 사양의 가격이 말리부 1.5터보엔진 기본 모델 가격보다 비쌌다. 그렇다면 크루즈 살 바엔 말리부를 사게 돼있다. 통한의 가격책정이 실패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기본 사양 1890만원에서 최고급 사양 2478만원으로 책정한 크루즈의 시판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넘볼 수 없는 벽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지엠은 업그레이드 한 성능만큼의 가격을 책정했지만, 이는 실패로 이어졌다. 말리부 1.5터보엔진 기본 모델이 2380만원이었으니, 통한의 가격책정이었다. 한국지엠은 시장 반응이 냉담하자 뒤늦게 200만원을 낮췄지만, 이미 '비싼 차'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새 크루즈는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크기를 키우고 무게는 대폭 줄였다. 차체가 커지면서 뒷좌석에 여유가 생겼고, 적재 공간(=트렁크)도 중형 세단에 버금갈 만큼 넓어졌다.
▲ 크루즈 새 크루즈는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크기를 키우고 무게는 대폭 줄였다. 차체가 커지면서 뒷좌석에 여유가 생겼고, 적재 공간(=트렁크)도 중형 세단에 버금갈 만큼 넓어졌다.
ⓒ 사진제공 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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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게 실패요인"

크루즈 실패요인을 가격에서만 찾긴 어렵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한국지엠의 국내 판매 실적(8만 3509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10만 1139대)보다 무려 17.4% 감소했다. 말리부(2만 2045대, 28.3% 증가)와 트랙스(1만 63대, 66.9% 증가)의 성장에도 많이 줄었다.

크루즈의 경우 7544대로 작년 같은 기간 6082대보다 1462대(24%)가 늘긴 했지만, 이는 신차 효과라 하기 어렵다. 크루즈 구형 모델은 지난해 7월 1434대가 팔렸는데, 새 모델은 올해 7월 1050대 팔리는 데 그쳤다.

소비자와 한국지엠노조는 크루즈의 실패를 가격책정 실패만으로 보진 않는다. 한국지엠 차를 구입한 L(36)씨는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차를 만들고 판매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실패요인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동급 현대차와 비교하면, 현대차는 기본 사양에도 여러 편의장비가 마련돼 있는 반면, 한국지엠 차엔 없다. 마치 '저렴한 건 옵션은 없으니까 알아서 해'라는 느낌을 받는다"며 "크루즈 LS와 가격이 비슷한 아반떼 벨류 플러스의 경우 선루프 빼고 차량에 있는 웬만한 편의장치가 다 있는데, 크루즈 LS는 깡통이다. 그 흔한 버튼식 시동장치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지엠노조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어쩌면 집 다음으로 큰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게 자동차다. 수천만원대 물건을 사는데 배려 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면 이는 내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크루즈 가격을 200만 원 내렸다는 것은 그만큼 비쌌다는 것이다. 신뢰는 그만큼 무섭다. 좋은 차를 가지고 엉망으로 마케팅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지엠은 반등이 필요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사실상 현재 사장이 없어 경영에 공백이 생겼다. 제임스 김 사장은 지난 7월 2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상근회장과 대표이사 CEO 맡게 돼, 8월 31일부로 사장을 그만둔다'고 밝혔다.

경영에 공백이 생기면서 노사 간 임금협상은 물론 회사 발전전망에 대한 타협점도 만들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판매실적이 줄면서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지엠의 자본 철수설과 산업은행 지분 매각설이 더해져 공장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한국지엠 영업소 관계자는 "크루즈가 잘 만든 차라는 것은 소비자들도 안다. 그러나 가격을 다시 낮춘 것만으로 돌아선 마음을 회복하긴 어렵다. 새 사장 취임과 함께 국내 소비자가 다시 '좋은 차'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특단의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지엠, #크루즈, #쉐보레, #1.4터보엔진,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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