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마철에는 풀 자라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콩밭을 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풀이 자라났습니다. 비 뒤끝이라 풀이 쑥쑥 뽑힙니다.

콩농사에도 요령이 있다

풀과 한참을 씨름하는데, 동네아저씨가 우리 집을 앞을 지나다 말을 붙여옵니다.

첫번째 순치기를 하고 난 뒤, 장마철에 콩이 엄청 자랐습니다.
 첫번째 순치기를 하고 난 뒤, 장마철에 콩이 엄청 자랐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서리태가 너무 웃자랐어! 순 쳐주라고?"
"저희 순 한번 잘라줬는데요."
"장마통에 키가 너무 자랐는걸! 또 쳐줘야 해."
"야박스러운 것 같아서요."
"뭐가 야박스러워! 콩순 길러먹남? 무지막지하게 쳐줘야 많이 달리는 거야!"

우리 콩밭은 감자를 거둬들인 뒤, 이모작으로 서리태를 심은 땅입니다. 거름기가 많아 그런지 콩 자라는 속도가 엄청 빠릅니다. 잦은 비에 부척 자랐습니다.

아저씨께서 아마추어 농사꾼인 내게 콩재배에 관한 설명을 해줍니다.

무성하게 자란 콩을 그냥 놔두면 쓰러지게 되어 수확이 감소합니다.
 무성하게 자란 콩을 그냥 놔두면 쓰러지게 되어 수확이 감소합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야박스럽게 두번째 콩순을 질러주었습니다
 야박스럽게 두번째 콩순을 질러주었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콩은 말이야, 웃자라게 되면 도복을 한다구! 그럼 수확량이 확 줄지. 그래 때맞춰 적심을 해줘야 하는 거야!"
"도복은 쓰러진다는 거고, 적심이란 건 순치기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 맞아. 적심할 때 '적'은 딸 '적(摘)'자야! 콩 웃순 잘라주는 거지!"

농사용어도 한자말이 많습니다. '도복(倒伏)'이니 '적심(摘心)'이니 하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아직도 한자말을 많이 쓰십니다.

아저씨가 콩농사 요령을 설명하십니다. 한 수 배웁니다.

장마철에는 콩이 웃자라게 됩니다. 거름진 땅은 더욱 그렇습니다. 콩이 웃자란 상태로 내버려두면 키가 너무 자라 비바람에 도복현상이 발생합니다. 쓰러지게 되면 뿌리 발육이 시원찮아 수확량이 크게 감소하게 됩니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콩 순치기를 낫으로 후려쳐 합니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콩 순치기를 낫으로 후려쳐 합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콩재배에서 웃자람을 억제하고,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 순쳐주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이른바 적심이라 합니다. 콩의 적심은 줄기의 끝눈 부위 생장점을 잘라주는 것입니다. 순을 쳐주면 곁가지가 왕성하게 나오고, 이로 인해 많은 꼬투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아울러 뿌리가 굵어지고 잔뿌리가 많이 생겨 콩이 쓰러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키가 작거나 쓰러질 염려가 없는 경우는 굳이 순치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콩꽃이 맺힐 때는 순을 잘라주면 되레 수확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콩이 자라는 것을 잘 봐서 적기에 순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웃자람이 심할 때는 두세 번 순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내가 가위를 들고 콩순을 잘라주려고 하자 아저씨가 답답하다는 듯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고!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순을 치려고! 나무 전지가위 없남?"
"있죠. 그걸로 하게요?"
"그럼. 그거 없으면 낫으로 후려치는 거야!"

콩 순치기할 때 전지가위를 이용하면 일이 훨씬 쉽습니다.
 콩 순치기할 때 전지가위를 이용하면 일이 훨씬 쉽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내가 전지가위를 찾아오자 아저씨가 시범을 보이십니다. 콩 줄기 끝부분을 싸잡아 싹뚝싹뚝 자릅니다.

"어때 쉬어보이지? 이제 한번 해보라구! 콩밭이 넓으면 예취기로 후려치면서 후딱 끝내 버러지!"
"그것까지 동원해요?"
"그렇다니까! 애통터지게 언제 손으로 쳐주냐면서!"

전지가위로 콩순을 잘라주니 일이 훨씬 쉽게 끝납니다. 아저씨는 농사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십니다.

농사는 정성과 노력에 대한 대가

일을 마치고 수박을 잘라 먹으면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도회지에서 내려와 전원생활 하는 분, 농사는 거저먹는 줄 알더라고? 그 사람, 뭐라는 줄 알아? 어디서 들었는지 비닐 씌우고, 거기다 씨 뿌려 놓으면 풀 안 메도 되느냐고... 고랑에 풀 나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모양이야!"

"그래요. 또 어떤 분께서 제게 힘 덜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묻기에 콩을 심으라고 했어요. 근데, 그분이 콩을 심어놓고 김을 매지 않아 콩밭인지 풀밭인지 모르게 했더라구요. 또 콩순을 쳐주지 않아 죄다 쓰러지고 난리였어요. 넓지 않은 콩밭, 호미로 슬쩍슬쩍 긁어주기만 하면 될 걸!"

아저씨는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농사는 농사꾼이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물은 부지런히 정성을 쏟아야지 보답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이야! 농사도 이젠 머리를 써야해. 도회지 사람들이 농약 치는 걸 질색을 하니까 친환경적으로 짓도록 해야 해. 그렇게 해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판로도 뚫고 말이야! 좋은 물건은 비싸도 사먹는다니까!"

평생을 농사지은 농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배울 게 참 많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도 아저씨는 자리를 뜨면서 한 말씀 남기십니다.

두번째 콩 순치기를 끝낸 콩밭입니다. 이제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곁순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두번째 콩 순치기를 끝낸 콩밭입니다. 이제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곁순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제 콩순을 쳐주었느니 콩 아랫도리가 튼튼해질 거야. 정성을 다해보라구. 그냥 기대하지는 말고! 말 못하는 작물도 주인 발자국 소릴 듣고 자란다고 하잖아!"


태그:#콩농사, #콩순치기, #적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