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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씨가 받은 처방전과 한달치 약의 일부 지금도 매달 약을 한보따리씩 타오는 생활은 계속된다
▲ 수북한 처방전과 약들 강은씨가 받은 처방전과 한달치 약의 일부 지금도 매달 약을 한보따리씩 타오는 생활은 계속된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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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에 사는 강은씨는 '약을 안 먹어도 되는 삶'을 꿈꾼다. 어느덧 복용기간만 18년이 다 되었다. 30세이던 그녀가 48세가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비슷하다. 눈을 뜨면 흡입기부터 찾는다.

"흡입기하고는 거의 한 몸이네요."

식염수로 세척하고, 코에 넣는 약, 숨이 안 차게 하는 약까지 기본 옵션이다. 그녀는 냄새를 못 맡는다. 음식의 맛과 향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심지어 타거나 상한 음식을 구분하지 못한 적도 있어요"라고 했다. 대부분 경험하지 못할, 중증천식 환자의 서럽고 억울한 점이라고 했다. 그래도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다. 살기 위해서, 약을 먹기 위해서다.

지금도 매달 '한 보따리씩' 약을 타온다. 그녀가 꺼내놓은 처방전과 약들은 한눈에 봐도 수북해 보였다. 비염을 완화시키는 슈다패드는 한 알씩 하루 두 번, 중증천식 환자용 플루티폼 흡입제는 권장량대로 아침저녁 각각 2번, 숨이 너무 찰 때는 12번까지 쓴다.

"이 약은 사용하고 나서 꼭 입 안을 헹구어 줘야 해요. 목 안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대요."

그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올 때를 대비해 응급용으로 벤토린을 늘 갖고 다닌다. 점심에 먹는 항생제는 부작용 때문에 2주 이상 복용이 어렵다.

"바람이 안 들어오면 환기가 안 되잖아요? (증상이)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코가 막히면 콧물이 고여 농이 생기는데, 심해지면 두통과 치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2주가 지나도 호전되지 않으면 임시방편으로 다른 항생제를 쓴다. 끝이 아니다. 두통 때문에 진통소염제를 상시 복용하고, 가려움증을 완화시키는 알레그라를 먹는다. 보통 120mL한 알 정도로 효과가 있다지만, 그녀는 180mL를 쓰고도 부족하다. 자기 전에는 천식약과 비뇨기과 약이 추가된다.

“다리마비, 발가락 붙음, 피부가 녹아 힘줄이 보일정도, 위 뒤틀림, 온몸이 오징어처럼 꼬인다…….” 그녀의 핸드폰 메모장에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다리마비, 발가락 붙음, 피부가 녹아 힘줄이 보일정도, 위 뒤틀림, 온몸이 오징어처럼 꼬인다…….” 그녀의 핸드폰 메모장에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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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메모장에 직접 겪은 부작용 가득, 남들은 모르는 '도돌이표 같은 삶'

약의 부작용은 상당했다. 그녀의 핸드폰 메모장은 직접 겪은 증상들로 가득했다. 스테로이드제의 영향인지 부기가 심하고 살이 많이 쪘다고도 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니까 뭐가 아프냐고 하는데, 속으로는 피멍이 드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병원에서 시킨 대로 누워만 있었는데 체형이 많이 변하더라고요."

그녀가 보여준 과거 사진에는 날씬하고 건강해 보이는 여성이 웃고 있었다.

"게으르다는 소리 듣는 건 아닌지, 억울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18년 동안 하루 4번씩 약 먹는 거, 의지 없이는 진짜 쉽지 않거든요. 이런 생활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같이 치료받던 분은 결국 자살하시더라고요. 그나마 우울증 걸리지 않으려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장기간 많은 약을 복용하다 보니 소화도 문제다. "하도 오래 먹으니 위가 망가져서 볼록하게 튀어나올 정도더라고요." 결국 약을 먹기 위해 소화제를 따로 복용해야 하는 지경이다.

"이제 약만 봐도 이골이 나요"라며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열심히 치료받았어요. 이게 자랑이 아닌데. 약 먹으면 나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많은 약들을 먹었는데 이 정도라니! 정말 약 안 먹고 싶어요. 좋아서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아직도 기약이 없다.

"말이 18년이지, 벌써 48세인데... 기껏해야 현상유지 정도고, 점점 힘들어지네요."

그녀의 진단서에는 상세미상의 만성 기관지염과 알레르기 비염, 중증천식과 두드러기를 비롯한 아토피피부염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장기간의 투병 생활에 신장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에는 요실금 증상도 나타났다.

"진행이 빨라지면 어쩌지요? 코 기능이 나빠지면 치매가 올 수 있다는 말도 있던데, 앞으로 또 어떤 병들과 마주해야 할지…. 저는 종합병원이거든요."

그녀의 근심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정부가 산정한 피해등급) 4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정상인 건 아닌데,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네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현재로서는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강씨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서신동 산후조리원은 이미 폐업했고, 너무 옛날 일이라 대형할인마트 영수증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1일 가습기살균제참사 가해기업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마치고 인근 여의도 카페에서 강씨를 만났다.
 지난 7월 31일 가습기살균제참사 가해기업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마치고 인근 여의도 카페에서 강씨를 만났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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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싹싹 사용 후 시작된 비극, 태어난 지 열흘 된 아이도 응급실행

그녀가 약을 달고 살게 된 건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쓰고 난 이후였다.

"첫 아이를 출산할 1999년 무렵에 광고를 보았어요. 인체에 무해하고 임산부에게도 좋다니까, 매번 물청소하기 귀찮잖아요. 남편이 사오고 나서 거실이랑 안방에서도 틀었네요. 출산하고 나서도요."

강씨는 옥시싹싹을 2001년까지 계속 사용했다. 구입은 주로 전주시 서신동 할인마트를 이용했다. 그런데 1999년 9월 즈음, 태어난 지 열흘 된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응급실을 찾았더니 '급성모세기관지염과 폐렴, 장염'이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장담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을 찾았다. 산후 몸조리도 못 하고, 아이 치료에만 매달렸다. 2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60번은 반복했다.

"정말 힘에 부쳤어요. 아이가 살기는 살았는데, 만 6세까지 소아과에 매일 도장을 찍고 다녔네요.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고…."

따스한 도움을 줄 것 같던 민간 보험회사들은 가입조차 거부했다. 당시 200만 원 수준의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그녀는 5년간 직장생활 해서 모은 돈을 탈탈 털었다. 대출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 시간이었다. 치료는 계속되어 중학교 3년 내내 이어졌다. 천식약도 꾸준히 먹여야 했다. 어느덧 고3이 된 딸은 지금도 환절기만 되면 매번 홍역을 치른다.

문제는 아이만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기침이 심해졌다. 보통 가벼운 재채기, 콜록콜록 수준이 아니라 '억' 소리가 났다. 앉아도 서도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눕는 것도 어려웠고, 엎드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우선이었다. 단순 감기라 생각하고, 동네병원 위주로 다녔다.

하도 낫지 않으니, 2004년 즈음 어느 내과 의사는 기관지 확장제를 처방했다. 기침이 좀 멎었고 병원에 다시 가보니 천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웬 천식이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20대에는 딱히 병치레한 적이 없던, 건강했던 그녀였다. 전주의 용하다는 여러 병원들은 다 돌아다녔고, 어르신들의 말도 들어 몸에 좋다는 약은 모조리 먹었다. 은행 기름·한방요법·수세미 물·도라지 물…. 끊임없는 리스트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전히 발병원인은 모른 채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2013년 말에는 상급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입원 당시의 모습. 강은씨 보유 사진 재촬영
 여전히 발병원인은 모른 채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2013년 말에는 상급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입원 당시의 모습. 강은씨 보유 사진 재촬영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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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으로 빠지는 발병원인 "마음의 병은 아닐까요?"

그렇게 햇수로 15년이 흘렀다. 근무하던 간호사들보다 더 오래 다녔지만, 그 병원은 답을 주지 못했다.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다. 더 이상 약이 없다고 했다. 결국 2013년 겨울에 종합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을 찾아갔지만 여전히 미궁이었다.

"기침이 왜 안 멎을까요?"

의사들도 당황했다. 마침 호흡기-알레르기에 권위가 있는 전직 대학병원 교수가 진료를 보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원인을 밝혀내기 쉽지 않았다.

"아무 증상이 안 나타나는데, 왜 기침과 호흡기 곤란으로 실려 올까요? 혹시 마음의 병 아닐까요?"

의사는 정신질환을 언급하기도 했다. 증상은 계속 악화되어 산소 호흡기를 써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의사는 갸우뚱하며 천식검사를 진행했다. 천식검사를 회상하는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주일동안 모든 약을 다 끊어요. 온몸에 두드러기부터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붓고, 온갖 증상들이 나타나더라고요."

그렇게 모든 증상을 참았더니 중증천식이 장기간 악화된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때부터 약을 맞추는데 만 7~8개월이 걸렸다. 교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효과가 없을까요? 비염·축농증에 피부소양증도 있고, 호흡이 잘 안 잡히네요."

한 달 입원하고 한 달 퇴원하고, 다시 재입원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겨우 약을 맞춰갈 무렵 남편이 경기도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남편의 타지생활도 안쓰러웠다. 결국 2016년 7월에 이사를 해야 했다. 주치의는 말렸다.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려하던 그는 마침 가톨릭 성모병원에 근무 중인 아들을 소개해 주었다.

노교수가 챙겨준 서류뭉치를 들고 올라갔는데도 적응 기간은 또 6개월이 필요했다. 종합병원마다 쓰는 약들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처방이 불가능했다. 면역주사를 비롯해 꾸준한 치료가 이어졌고, 덕분에 산소호흡기도 안 달고 장을 볼 수 있는 단계까지는 나아졌다.

바보처럼 착실하게 살아온 그녀, 부작용 때문에 첫아이는 결국 외동이 됐다

부산 토박이인 그녀에게는 '착실한 사람' 냄새가 났다. 유년시절에 부모님 말씀도 잘 들었고, 새마을운동을 할 때는 쥐 잡이, 소주병도 열심히 모았다. 십수 년 된 옷을 아직도 입는 그녀로서는, 새 옷도 길어야 6개월인 딸의 낭비를 이해하기 어렵다. 운전할 때도 신호를 칼 같이 지켰다. '그런다고 누가 본다고... 바보같이 산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대기업에서 5년간 일하던 커리어 우먼이기도 했다. 1997년에 결혼하고 남편이 전북으로 발령받아 퇴사를 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직장생활도 하고 싶어요. 한창 재밌었을 때인데, 아쉬움이 크죠. 남편이 혼자 벌다 보니, 사고픈 게 있을 때도 살짝 눈치가 보이잖아요? 안 그래도 병원비도 많이 드니까. 그리고 예전에 예뻤었는데…."

그녀가 '호호호' 웃었다.

퇴원 후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데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산소통을 쓰게 되면 폐가 자가 호흡을 싫어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내 의지가 필요해요. 숨이 차면 잠깐 넣었다가 다시 빼고, 일상생활을 위해선 많은 노력을 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집 밖으로도 못 나와요."

오랫동안 아프니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첫 아이는 결국 외동딸이 되었다.

"동생을 원하던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죠. 하지만 약 후유증 때문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니까, 혹시라도 둘째에게 뇌나 중요한 장기가 없다거나, 만약 나처럼 아프게 될 것 같은 상상을 해보니 망설여지더라고요. 무서운 얘기잖아요. 내가 겪은 고통을 아이가 똑같이…. 얼마나 끔찍해요."

지난 7월 17일 강은씨가 서울역에서 열린 시리즈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폭염과 폭우에도 매주 캠페인에 참여했다.
 지난 7월 17일 강은씨가 서울역에서 열린 시리즈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폭염과 폭우에도 매주 캠페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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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주부의 숨 가쁘고 험난한 여정

강은씨는 20년차 주부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하고, 반찬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딸을 깨운다. 이제 1시간이면 거뜬하다.

그리고 캠페인에 나설 준비를 한다.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해 현금을 올려놓고 오는 날에는, 딸이 한바탕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음식쓰레기를 버리면 얼추 시간이 맞는다. 요즘 서울에서 낮 12시쯤 열리는 일정에 참여하려면 10시 차는 타야 한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기 때문에, 광역버스를 타려면 9시 30분쯤이 마지노선이다.

"버스가 가끔 정시보다 조금씩 일찍 오기도 해요. 원망은 못 하는데, 그 찰나의 시간 때문에 놓칠 때도 가끔 있고…."

뛰기는커녕 빠른 걸음도 어렵다 보니 신호등의 불이 바뀐다던가, 몇 걸음 앞두고 버스가 지나가면 애가 탄다.

험난한 여정이다. 지하철을 잘못 타 춘천으로 향하기도 했고, 복잡한 수도권 환승할인을 익히는 데 1년이 걸렸다.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기도 하고, 갈아타는 것도 만만치 않다. 캠페인에 한 번 다녀오면 며칠 앓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음만 급해서 잰걸음으로 걷기라도 하면 숨이 차오른다. 입원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 다음날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진 적도 있다.

지난 7월 31일 강은씨가 여의도 옥시본사 앞에서 열린 시리즈 캠페인에서 항소심 판결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강은씨가 여의도 옥시본사 앞에서 열린 시리즈 캠페인에서 항소심 판결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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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녀가 캠페인에 나오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시 캠페인에 나온다.

"지금 같은 심정에서는 가해 기업들의 알량한 보상도 필요 없고, 끝나지 않는 이 고통을 한번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존 리 전 대표와 신현우 사장은 약 팔고 잘살고 있잖아요?"

지난 7월 26일에 나온 옥시와 세퓨 관련자들의 항소심 판결을 보며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말도 안 되잖아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데, 결국 시간 싸움 속에 잊힌다는 게…. 그래서 남편이랑 싸우고 딸이랑 싸우면서도 나오곤 해요."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남편과 트러블도 종종 있었다. "'배상이나 인정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 당장 치료비가 급한 것도 아닌데 무리하면서 굳이 꼭 가야겠냐'는 거죠." 예쁜 딸도 "고3 엄마가 왜 자기는 안 봐주고 꼭 나가야만 하느냐"며 서운해 한다. "설득은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아요. 강남엄마들은 이렇지 않다는 둥 뾰로퉁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가족들의 반응에 약간 허탈할 때도 있지만, 강은씨의 소신은 흔들림이 없다.

"피해자가 압박해야 가해기업들이 죄책감이라도 느끼겠죠…. 그래도 우리 집은 당장 급한 사정은 없으니까, 저라도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게 싸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귀신처럼 말이에요. 함께 싸워주고 호응해 줄 수 있는 사람들만 있다면, 기어서라도 나와야지요!"

지난 3일로 예정된 롯데마트 관련자들의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인터뷰 이후 항소심 선고 일정이 8월 17일로 연기되었다).

다시 가정으로, 계속되는 '잠 못 이루는 밤'

캠페인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오후 4~5시가 된다.

"근처에서 장보고 저녁준비 해요. 오늘 메뉴는 아직 결정을 못 했네요. 한번 둘러봐야겠어요."

오늘도 그녀는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들과의 싸움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약 성분 때문인지 잘 못 자는 편이에요. 새벽 2시 넘어서까지…. 계속 화장실에 가게 되고, 깊은 잠을 못 자요. 숨이 막히면 자주 깨기도 하고요."

그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도 계속된다.


태그:#가습기살균제참사, #가피모, #가습기넷, #옥시싹싹, #시리즈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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