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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 싫다, 엄마 슬슬 무릎 아프고 아빠 슬슬 허리 아파, 자랑만 하지 말고 같이 좀 가자, 이제 우리도 나이 먹어서 한 해 한 해 다르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온갖 팩트를 들어(반박도 못할 팩트) 자유여행을 종용할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과 자유여행을 하는 것은 비단 부모님만의 '로망'도 아니고요. 혼자 여행 다니면서 '엄마·아빠가 눈 뒤집힐 풍경이야...' 하며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던 경험들은 모든 여행자들에게 한 번쯤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끝까지 그 여정을 함께해본 입장에서 정말로 꼭 해봐야 할, 감동적이고 뜻깊은 경험입니다.

자, 효녀 효자 유나이티드 여러분. 그러면 이제 경험자로서, 자유여행을 부모님과 가고 싶다면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점 몇 가지를 밝혀둡니다. 제가 친구랑 이 얘기를 하는데 대부분이 "그거 결혼 준비할 때 부모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결혼은 안 해봤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두괄식으로 결론 먼저 이야기하고 뒷얘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빠밤)

잊지 말자, 우리 엄마 아빠도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일 뿐이다.
 잊지 말자, 우리 엄마 아빠도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일 뿐이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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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입니다.'

이 모든 여정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마치려면, 자기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상당히 먼 발치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 친구는 이것을 결혼식과 같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결혼시킬 때 드러나는 어머니·아버지의 의사결정 방식, 감정적 충돌 등을 보면서 "우리 엄마 아빠는 다 예외일 줄 알았거든? 근데 새로운 면 많이 봤어. 그냥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네..." 했다고요. 그래서 자기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아저씨·아줌마, 이러지 좀 마시죠' 소리 나올 선에서는 망설임 없이 어느 정도는 선도 그어줘야 모두가 행복하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자유여행에서 이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랑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결국 인간 개인이 순간순간 행복해야만 우리의 여행도 성공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부모님이 인내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여러분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자유여행을 앞둔 부모님이 하시는 얘기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 딸이 데려가면 아무데나 좋지. 엄마 신경 쓰지 말고 결정해."

이거 거짓입니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라 엄마의 심정만 진실입니다. 여기서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아무데나'는 어머니 기준으로 아무데나입니다.

저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호스텔 20인실에서도 (심지어 혼숙이어도) 잘 잡니다. 서서 바 크롤(Bar crawl, 바 투어) 하느라고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파티 잘합니다. 여행할 때 계획, 잘 안 짭니다. 특히 관광지는 멀리서만 보지 입장권 내고 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아침에 나오자마자 동네 바 아무데나 가서 맥주 한 잔 먹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숙소에 돈 왕창 아껴서 먹는 데 다 씁니다.

이런 제가 제가 다니는 '아무데나'에 저희 어머니를 데려가잖아요? 호로자식입니다(표준어는 호래자식이라는데 느낌이 안 사네요). 슈퍼 호로자식이에요.

엄마의 삶을 떠올려보세요. 엄마는 여행 자체를 잘 안 가십니다. 항상 생활비 아끼면서 사시다가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여행계를 해서 최근에 패키지여행 몇 번 다니신 게 어머니가 아는 여행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전제가 나옵니다.

부모님의 기준은 패키지여행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건 사실 장점도 있습니다. 패키지여행에서 못 하던 걸 자유여행에서 할 때 굉장히 감동하신다는 장점요. 어쨌든 '패키지여행'을 주로 다닌 대다수의 대한민국 '아줌마' 혹은 '아저씨'이기 때문에, 어머니·아버지의 '아무거나'에는 다음 사항이 포함돼 있다는 걸 빨리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말하는 '아무거나'의 기본 바탕>
- 패키지여행에서의 숙소 컨디션
- 간간이 한식 제공
- 적어도 1일 2관광지, 1맛집을 포함하여... 여튼 뭐라도 짜인 일정
- 변수의 부재

그럼 지금부터, 여행에 필요한 각종 예약과 진행을 앞둔 우리가 어머니의 말을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외에 우리가 고려할 것은 뭔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긴긴 이야기지만 깔때기 같은 전제는 '우리 엄마 아빠도 그냥 아줌마·아저씨다'입니다. 엄마를 향한 애정필터를 과감하게 걷어내시고, 그저 두 중년의 패키지여행을 책임질 가이드의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아직 취소수수료 안 나오는 곳들은 빨리 취소 및 변경하셔서 광명을 찾으세요.

[숙소] ① "엄마는 아무데서나 잘 자"

'아무데나'라고 해서 정말 '아무데나'가 아니다.
 '아무데나'라고 해서 정말 '아무데나'가 아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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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엄마랑 살던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어머니가 제 방 문을 엽니다. "방을 이렇게 돼지우리같이 해 놓고 어떻게 사냐!" 잉? 저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만? 귀신 나오겠다, 잠이 오냐, 사람이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놓고 살아야지 등등... 독립을 하고 나서도, 엄마가 내 집에 온다고 하면 택시 타고 미친듯이 퇴근해서 급하게 치워댔던 이유가 다 뭡니까? 엄마는 이러고 사는 꼴을 못 보시기 때문이죠. 안 그래요?

엄마의 '아무데서'는, 어느 정도 깔끔한 룸 컨디션을 유지하는 숙소인 상태에서 다른 일행과는 확실히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는 곳을 뜻합니다. 호스텔... 개별방이면 모르지만 당연히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물론 그런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20인실에 주무시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 저희 부모님이 유난스러운 성격이라거나 쿨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각자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쓸 거 쓰고 줄일 거 줄이는 게 자유여행의 기본이고, 어디서 줄일 것인지는 각자 살아온 삶을 토대로 봤을 때 언제 심리적인 압박을 덜 느끼는지가 기준이 될 뿐이니까요).

그런데 저희 '고객님'들은 어디에 익숙하다? 패키지여행에 익숙하지요. 패키지여행에는 뭐가 있다? '버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여행 하는 우리한테는 그런 거 없죠. 그래서 패키지여행처럼 싸다고 숙소를 외곽에 잡았다가는 난리 납니다. 시내 중심으로 잡자니 또 스페인 호텔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셋이 자도 마찬가지고요.

일정이 2주를 넘는 저희 같은 경우는 더욱 그래요. 예산 자체도 문제지만 버스 타고 갈 거리의 적당한 가격의 호텔 다니시던 분들이 시내 한복판 호텔 가격 보는 순간 부모님 마음까지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지요. 여기까지가 최적화된 숙소 결정을 위해 부모님을 객관화하는 과정인데, 여기서 이제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 또 필요합니다.

[숙소] ② 나는 엄마 아빠와 한 방에서 잘 수 있는가?

이제 나를 돌아볼 차례입니다. 아니오. 솔직히 엄마·아빠는 오히려 별 신경 안 쓰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선 엄마 아빠가 훨씬 쿨합니다. "엑스트라 베드 놓고 셋이 자면 되지 뭐~ 어릴 때는 뭐 안 그랬나~" 이번에는 내가 유난입니다. 엄마 아빠랑 잠 못 자요. 엄마 아빠가 피곤하면 코 고실 수도 있고, 심지어 피곤하면 저도 골 수 있지요.

문제는 엄마·아빠는 대체로 머리만 대면 잘 주무십니다. 그러면 세 사람이 동시에 여행하다 지쳐서 코를 골며 잘 경우가 온다는 건데, 대참사는 마지막에 자는 자에게만 옵니다. 외국까지 가서 새벽에 자면 큰일나요. 저는 새벽에 자서 오후 2시쯤 싸돌아다녀도 되는데, 제가 아까 언급했듯이 부모님은 그런 여행 태어나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무리 관대하게 마음먹어도 12시 전에는 숙소를 나가줘야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아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각종 예약, 맛집, 관광지 루트 등을 담당할 나는 숙소에 돌아오면 재정비가 필요합니다. 내일 뭐 할지 살펴보고, 체크하고, 변수가 생기면 변경예약도 알아보고. 그럴 때 부모님이 숙소 와서도 그러고 있으면 마음 불편해서 "엄마는 아무데나 상관없으니 그만하고 자라" 하실 확률이 높아요(진심으로).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아무데나'는 나와 부모님의 기준이 다르므로, 정말로 대책 없이 살아온 내 입장에서는 부모님 놀라시지 않게 뭐라도 알아보고 자 줘야 서로 마음이 편합니다. 독립된 공간은 그래서 중요해요.

이 모든 걸 충족시키는 것은, 에어비앤비에서 방 2개 이상의 집을 통으로 빌리는 것입니다.

스페인이 호텔이 많긴 하지만 당연히 가격이 꽤 나가는데, 이게 일반인의 집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은 비싸서 저도 1년에 한 번도 가 볼 일이 없습니다.

(서울인 독자 여러분) 우리 다 서울 시내에 살잖아요. 여기서 가격 경쟁력이 발생합니다. 호텔에서 1인이 1박 할 가격으로 완전 한복판에 있는 숙소를 싸게 예약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방 2개, 주방이 있고(이거 굉장히 유용합니다) 남들과 쉐어하지 않는 집을 기준으로 예약했습니다.

3명이서 스페인 주요 도시 한복판 숙소를 12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에 예약할 수 있었어요. 어느 정도 한복판이냐면, 마드리드는 마요르 광장 / 바르셀로나는 람블라스 거리 / 론다는 누에보 다리 전망... 이걸 서울 기준으로 하면 이태원 해밀톤호텔 / 홍대 상상마당 / 강남역 지오다노 정도 위치예요. 이 정도 수준의 한복판이었어요.

주방이 있기 때문에 하루 일정이 끝나고 라면 한 판 먹고 싶어하시면 함께 먹기도 좋았고, 마트에서 스페인 와인 사다가 온갖 현지 과일 채소와 함께 한잔 하면서 마무리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살짝 뭉클하면서도 짠한 이야기인데, 전업주부 어머니들은 뭔가 싸게 해 먹는 데에서 굉장히 희열을 느끼실 때가 있습니다. 밖에서 뭘 먹을 때 "이거 엄마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시고는 물 사러 간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오시곤, 다음날 짠 내놓으신 적이 있어요(스페인 고추 볶음이요). "맛 똑같지?!" 하시면서요. (진짜 똑같았어요!)

과일도 막 사서 풍족하게 깎아놓고 "한국 가면 이게 얼마야~" 하면서 기뻐하시고요. 거의 대부분 외식을 했기 때문에, 아침에 간단하게라도 뭔가 새로운 걸 해먹어보는 걸 재미있어하셨던 것 같아요. 물론 가이드인 저는 맛집 기껏 찾아놨는데 자꾸 위장 케파(수용력)를 갉아먹는다고 싫어했지만, 마술처럼 짠 내놓고는 설레는 표정으로 가족들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참 대단하고 귀여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발 여기까지 와서 하지 마' 했는데, 나중에는 '엄마 마음 편하면 하시게 두지 뭐' 하고 뒀습니다. 엄마 새삼 고마워요!

그리고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데, 부모님은 그런 게 참 재미있으셨던 것 같아요. 모르는 외국인이 "헤이~"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웰컴!" 하면서 와인도 한 병 주고요(스페인은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여행 중에 가슴 깊이 기억하는 엄마의 말 중 하나는, 세비야 숙소에서 문득 "민지야, 엄마는 외국 할머니 집 같은 곳에서 차 마셔보는 게 꿈이었어. 그런데 엄마가 사는 동안 그런 게 이뤄질 줄 몰랐어"였어요. 순간 너무 슬프고 기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예상치 못한 순간이어서 "그래?" 같은 소리밖에 못 했어요. 여러모로 에어비앤비는 좋은 선택이 됐어요(나중에 과정은 차차 나오겠지만 여튼 여담 하날 풀자면 귀국 후 엄마 아빠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 계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숙소 구하실 때와 다른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면 이런 게 있어요.

[숙소] ③ 엄마 아빠는 나이가 많습니다

엘리베이터 유무, 시내 접근성 등 확인해야 할 게 참 많다. 뭐가 됐든 미리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다.
 엘리베이터 유무, 시내 접근성 등 확인해야 할 게 참 많다. 뭐가 됐든 미리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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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음식이 싱거우면 소금을 친다.' 같은 리빙포인트야... 싶겠지만, 의외로 알아둬야 합니다. 에어비앤비 예약할 때 반드시 주소를 알아내서 우리가 이용할 교통수단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는 건 원래 기본이고요. 만약 그게 지하철인 경우 숙소 근처 출구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숙소 자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을 호스트에게 메시지로 확인하신 후 예약하시길 추천드려요.

호스트들 중에서는 "우리집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내가 들어서 옮겨줄 수 있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리 알아두시면 좋겠지요. 저 혼자 하는 여행이면 "괜찮아, 내가 들게!" 하면 되지만 셋이면 다릅니다. 특히 아빠는 엄마가 혼자 끙끙대고 캐리어 드는 꼴 못 보실 거고요. "나 혼자면 모르는데, 엄마 아빠와 하는 여행이어서... 잘 부탁해!" 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한 후 만나면 됩니다.

그리고 추가로,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역에서 많이 걸어야 하거나, 지하철역에서 올라갈 때 계단밖에 없거나 한 경우, 미리미리 부모님에게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말하고 안 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에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의 스트레스 관리가 가장 큰 변수인데,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식이 미리만 잘 말해주면 자식의 노고를 생각해 힘을 내주시거든요(엄마 아빠 수고했어... 고마워!).

"20분 뒤에 역 도착하면 거기서 출구까지는 들고 올라가야 해. 엘리베이터가 없더라고." "엘베는 없는데, 예약하기 전에 문의했었기 때문에 집주인이 짐 옮길 때 도와준대. 그러니까 사양 안 하고 도움받자." "이번 숙소는 여기서 조금 멀어. 12분으로 찍히니까 조금 걸어야 되는 거 마음의 준비하셔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 부모님은 대부분 "아이고 그 정도도 못 걷는 할매 아니다" "그럼 그럼~ 괜찮아"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고생했네" 등등, 마음에 무장을 해놓고 지하철을 내리시기 때문에 괜찮아요.

굳이 그런 말 한마디 듣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12분 걸으면 된다는 걸 알고 걸으면 피로감이 훨씬 덜하잖아요. 나만 아는 불편함에 갑자기 엄마·아빠를 직면시키면 놀라십니다. 꼭 미리 알려주면 훈훈함이 2배예요(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도 지쳐서 몇 번 놓쳤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엄마 아빠 미안했어!).

[식사] ④ "엄마 아빤 어디 가서 음식 투정 한 적 없어, 아무거나 잘 먹어"

'엄마·아빠 아무거나 잘 먹는다더니 왜 이렇게 불만이 많지?' 하고 불평하지 마세요.
 '엄마·아빠 아무거나 잘 먹는다더니 왜 이렇게 불만이 많지?' 하고 불평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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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담인데 우리 입장에선 '뻥'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제 언급 안해도 아시겠지만 그냥 언급합니다. 이 '아무거나'도 패키지여행에서 주는 식사 내지는 한국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춘 요리가 부모님이 경험하신 폭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다른 얘긴데, 이런 면에서 자유여행은 진짜로 뜻깊은 경험입니다. 엄마 아빠의 살아온 삶에 대해서 진짜로 생각해볼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엄마·아빠 아무거나 잘 먹는다더니 왜 이렇게 불만이 많지?' 하고 불평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도 우리처럼 돈 모아서 여행 갈 생애 주기적 여유와 기본적인 현장 박치기 영어가 가능한 정도의 삶의 기회, 인터넷으로 정보 알아볼 줄 아는 노하우 등이 있었으면 나처럼 다채로운 입맛 충분히 가질 수 있었어요.

쉽게 말해 나 없었으면 엄마·아빠도 나처럼 '월드 와이드 입맛'을 가진 사람이 될 기회가 있었어요. 부모의 삶에서 겪은 고생을 자식이 감내하거나 보상해야 한다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삶의 과정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인데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걸 외면하거나 남 일처럼 대응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입맛 안 맞아서 속상한데, 거기서 서러움까지 얹어주지 말고 그냥 우리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실제로 현지 음식에 상당히 가까운 걸 드렸는데 좋아하신 경우가 있다면 그건 운이 좋은 겁니다. 참작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저희 아버지는 고수와 하몽(Jamon) 마니아에요. 한국에서 비리지 않은 걸로 골라 파는 거 말고 그냥 스페인에서 챙겨간 하몽도 처음부터 생으로 그냥 잘 드셨고, 그걸 이번 여행에서 굉장히 꿈꾸던 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세 명이니까, 셋 모두가 행복해할 선택을 하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자취가 중간에 가끔 고개를 드는 한식 욕구를 해소해준다 치고, 현지 맛집은 뭘 기준으로 정할까요?

[식사] ⑤ 현지 맛집 정하기 1단계, 레전드 오브 레전드 우선 배치

'조별 1위는 고민하지 말고 우선 진출시킨다'는 접근 방식입니다. 먼저, 엄마·아빠가 스페인에 가면 뭘 먹고 싶어할지를 생각합니다. 저를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데려다 놓은 <꽃보다 할배>를 떠올려봅시다.

"이야 저거 끝내주네" 하고 리액션 좋았던 몇 개의 음식을 떠올립니다. 츄러스가 있겠고, 아빠는 하몽, 빠에야도 좋아하셨던 것 같네요. 그리고 바게트 위에 올려진 핀초도 좋아했고요. 그리고 내가 경망스럽게 먹었던 음식들도 떠올립니다. 소꼬리찜, 멸치 튀김, 스페인 곱창 조림 등등... 그리고 맛집 검색을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갈 도시는 어디 어디인데, 이 메뉴의 경우 현지인 한국인 가릴 것 없이 어디가 유명하니까 여기서 먹는 걸로 하자. 그런 식으로 일단 배치합니다. 예를 들면 츄러스의 경우, 마드리드에 있는 산 히네스가 워낙 유명하니 굳이 다른 곳 안 찾아도 되겠지요. 명동의 올타임 레전드 맛집은 뭐다? 웬만해서는 망하지 않는 서울 칼국수 원톱은 뭐다? 명동교자. 그런 집이 있는 메뉴라면 일단 우선 배치를 하고 나머지를 고민합니다. 레전드 맛집부터 잡다한 집까지 일단 나누는 거지요.

[식사] ⑥ 현지맛집 정하기 2단계, 트립어드바이저+네이버블로그+구글이미지

도전은 나 혼자만 하자. 엄마아빠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도전은 나 혼자만 하자. 엄마아빠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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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까지 할 것인지는 개인 선택의 문제인데, 저는 그냥 마음 편한 게 좋아서 했습니다. 일단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맛집을 찾아봅니다(트립어드바이저가 무슨 진정한 맛집이냐! 관광객이 짱짱 많이 가잖아!까지 논쟁하지는 않기로 합니다. 우리가 외국인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거니까요. 안 그러면 이 여정은 끝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서로를 다독입시다).

나 혼자 갈 거면 여기 아무데나 가도 됩니다. 가서 "와! 치즈 곰팡이 냄새가 오져" "와우! 이거 한국 사람 아무도 못 먹을 듯" 하고 나름의 좋은 추억 만들고 와도 되는데, 부모님이 함께 가시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네이버를 돌려봅니다.

놀랍게도, 진짜 유명한 트립어드바이저 맛집인데 네이버에 리뷰가 진짜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눈물을 머금고 제외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니까요. 여기서 도전정신을 반드시 억눌러야 하는 이유는, 이 여행의 씨앗이 된 엄마의 말, "우리가 언제 또 자유여행을 해 보겠니"는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도전은 나 혼자 합시다.

그렇게 과감하게 제쳐놓고 이제 나머지 맛집의 리뷰를 봅니다. 경험상 여기서 피해야 할 집은 "한국 사람이 80%예요" 혹은 반대로 "한국 사람 입맛엔 안 맞는 듯, 왜 맛있다는지 모를..." 이런 집입니다. 전자가 안 되는 이유는 그러면 패키지관광과의 차별점이 없어지기 때문이고, 후자가 안 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으므로 넘어가겠습니다. 베스트는 "여기 현지인 바글바글한데 한국 사람 입에도 잘 맞던데요?"입니다.

그리고 그 가게 이름으로 구글 이미지를 검색합니다. 거기서 제일 많이 나오는 그 메뉴를 시킵니다. 이건 왜 그러냐 하면 그게 실제로도 대표 메뉴이기 때문이고(외국 친구가 명동교자 평생에 한 번 가는데 비빔면 시키면 도시락 싸 들고 말려야죠? 비빔라면 보내주고 칼국수 시켜줘야죠) 만약 주변 테이블이 다 A를 먹는데 우리 테이블만 B를 먹는 경우, 부모님은 '뭔가 잘못됐다'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냥 맘 편하게 남들 먹는 걸 먹는 게 좋습니다. 론다 소꼬리찜이 그랬어요. 다른 것도 다 맛있기는 했는데, 대표 메뉴가 그거여서 먹었습니다. 물론 소꼬리찜, 이름부터 망할 수가 없잖아요.

[식사] ⑦ 내 자식이 외국 가서 주문을 스무스하게 한다는 것

이거 굉장히 '자식뽕'(자식 자부심)이 차오르는 순간입니다. 그게 그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츄러스 집 가서 "(손가락 1) 츄러스, (손가락 1) 뽀라스, 초콜라떼 2!" 이런 거를 리뷰 볼 때 괜히 알아봤다가 써먹으라는 겁니다. 먹물빠에야집이라면 '먹물빠에야'를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지 커닝했다가 메뉴에서 콕 찍으세요. 그러면 눈치 없이 웨이터가 그 다음 질문을 할 텐데, (아마 뭐 마실 거냐는 질문일 텐데 그거든 아니든 간에) 동문서답이거나 말거나 용기를 내서 음료를 주문하세요.

그냥 물, 탄산수, 맥주, 레드와인, 화이트 와인 이런 거 괜히 알아갔다가 얘기하세요. 웨이터 입장에서는 뭔 외국인이 와서 손가락과 세상 어설픈 단어만으로 어버버하길래 알아들은 것만 주문받고 불쌍해서 긴 말 안 묻고 돌아선 것인데, 이게 귀국 후에 한 3개월이 지나면 "걔가 스페인어로 프리토킹을 하더라" 정도의 무용담이 됩니다.

그 정도 뻥튀기는 아니더라도 여튼 '해외에 나가서 음식을 주문하더라' 하는 것은 엄청난 에피소드예요. 저것을 내가 키웠다니! 우리 민지 하고 싶은 거 다 해!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럴 때 부모님은 생각하실 확률이 높아요. "아, 자유여행 오길 잘 했다."

[관광지 구경] ⑧ '눈팅'은 하고 가라

마드리드 솔 광장(plaza puerta del sol).
 마드리드 솔 광장(plaza puerta del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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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게 제일 빡셌어요. 관광지에 감흥이 없는 저는 파리 다섯 번을 갔어도 퐁피두센터 안 가봤고요. 세비야 도착하고 나서야 세비야에 세비야 성당이 있으며 그게 제일 세계 3대 성당급이란 걸 알았거든요.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이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론다 같은 귀요미 동네에 왜 그 어마어마한 누에보 다리가 있는지 등등... 진짜 '멍충이' 수준으로 모릅니다. 저는 이 여행을 통해서 정말 저 자신을 많이 돌아봤어요. 너무 먹기만 하고 다녔구나(그래도 이런 여행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새삼 인지는 했어요).

계속해서 강조하는 부분, "우리 엄마 아빠는 패키지여행에 익숙한 아줌마 아저씨입니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가이드님이 거의 설민석 선생님 수준으로 맛깔나고 상세하게 모든 관광지를 설명해주십니다. 실제로 패키지여행 다녀와서 사진 열고 추억을 되새겨보면 정말 한국인 가이드님의 위대함을 느끼게 돼요.

어쩜 그렇게 재미있고 에피소드 위주로 기승전결 있게 잘 설명하시는지. 현지인보다도 해박하시고요(외국인 친구들아, 제발 경복궁 기둥의 의미 묻지 말아주라). 우리의 패키지 어머님·아버님께서는 그런 여행에 익숙하신 분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걸 할 수는 없는데, "몰라"가 안 통하는 것은 분명 멘붕(멘탈 붕괴)입니다.

스페인 몇 번 갔다 왔다고 친구들이 "야, 거기 콜럼버스 무덤이 있다며?" 하면 저는 "몰라"라고 했어요. "프라도미술관이 그렇게 유명하다며?" 할 때도 "몰라, 안 가봤어" 했습니다. 그게 친구들한테 내가 관광지에 감흥 없고 골목만 싸다녀서 모른다고 할 때는, 약간 취향 특이하고 캐릭터 확실한 내 친구 정도로 남을 수 있어요. 근데 부모님한테는 그게 안 먹혀요. "뭔지도 몰라? 아니, 자세한 건 알 필요 없는데 뭔지도 모른다고?"

앞서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모습을 보며 내 새끼 잘 키웠다 하고 터졌던 자부심은, "민지야, 저 큰 성당은 뭐야?" 했을 때 (누가 봐도 세상 최고 큰데도) "몰라" 하는 순간 '이놈시끼가 진짜 외국에서 처먹고만 다녔나'가 됩니다.

엄마·아빠랑 다니는 반경에 있는 큰 건물이나 랜드마크 등은 뭔지 정도는 알아두시면 좋아요. 구글맵 보면 나오니까 이름 보고 간단히 두산백과 검색이라도 해서요. 그러다가 세비야 성당 같은 데 입장권 끊고 들어간 경우에는 블로그 등을 커닝하면서 적절하게 설명도 해 봅시다. 한국 블로거들은 진짜 대단한 게 엄청나게 상세히 적으신 분들이 많아요. 물론 그게 다 검증된 팩트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인 사항 정도는 알아두면 좋겠지요?

여기서 반전은, 아무리 구구절절 설명해봤자 부모님이 TV나 영화에서 본 도시였을 경우 "엄마 저게 그거야!" 하는 게 최고입니다. 마드리드 솔 광장에서 "엄마 저 곰이야! 백일섭 아저씨가 기념사진 찍은 백일섭 닮은 곰!" 하면 "어머~!" 하고 달려가서 셀카 찍으십니다. 그래 됐어.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기타] ⑨ 엄빠와 나에게도 문화 차이 있습니다, 친절하게 안내합시다

위에서 언급한, 엄마 아빠가 외국에서 현지인과 얽혀 혼자 돌아다닐 기회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모르는 것들이 의외로 더러 있습니다. 덧붙여 꼭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새로 체득한 규칙이 아니라고 해도, 솔직히 우리도 5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이지만 2017년에 하면 욕먹는 것들이 있잖아요. 자유여행을 하는 일이 내가 몰랐던 세상의 룰을 알게 되는 일, 더불어 나를 알게 되는 일이라면,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을 하는 일은 엄마 아빠의 세계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런 걸 짜증내지? 왜 이런 걸 해 달라고 그러지?" 하지 말고 "엄마 아빠가 이런 일 겪을 일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겪는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들어요.

값싼 식당이 아닌데도 서비스가 느릴 때, 내가 빌린 에어비앤비인데 유럽 집 벽이 얇아서 큰소리로 대화하지 못해서 짜증 날 때, 그냥 빨리 계산하고 나가고 싶은데 테이블에서 계산하고 또 잔돈을 테이블에서 기다려야 할 때... 여행하면서 그런 순간을 엄마 아빠가 직면하게 되면 우리가 그 상황에 처음 놓였던 때를 떠올려서 '여긴 그렇더라구' 하고 마음으로라도 같은 편에서 이해시켜주세요.

내가 이 불편에 익숙해졌고 내가 이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온당하다고 느낀다고 해서 엄마·아빠도 내가 겪은 그 과정을 똑같이 겪어온 건 아니니까요. 물론 머리로는 이걸 안다 해도 여행 중에 모르는 중년 부부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여긴 한국이랑 다른데... 부정적이시네"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내일은 그런 기분 느끼지 않게 오늘 마음을 쪼개서 말해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치? 한국은 참 모든 게 빨라. 나도 처음 여행할 때는 너무 성질 났었는데 여긴 다 그렇더라고. 좋은 점도 있어."

[기타] ⑩ "난 남이야, 엄마·아빠는 연애라도 했지, 내가 무슨 수로 아냐고"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다. 그리고 나는 나다.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다. 그리고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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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우리 엄마 아빠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다"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더 많은 배려와 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엄마 아빠에게도 "자식새끼지만 어차피 남임"을 알려드려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져요. 이건 여행 전에 엄마 아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드리는 게 전달하기 쉬울 것 같아요.

"엄마·아빠, 우린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저는 엄마·아빠가 말하지 않는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거, 싫은 거, 가고 싶은 거,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은 것들은 미리 말해주세요. 왜냐면 이 여행이 시작되면 저는 가이드 일도 해야 하고 좋은 것도 보고 하면서 매번 선택을 해야 하거든요. 

자유여행은 원래 그래요, 선택 또 선택. 일정도 중간에 변경할 수 있고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고 과감하게 멍 때리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요. 다만 그 무수한 선택을 할 때 말하지 않은 마음은 추측해서 반영할 수 없어요. 나도 이 시간 이후로 여행 중에 내가 원하는 건 일부러 의사표현을 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런 게 많이 없을 거예요. 왜냐면 나는 앞으로도 스페인에 갈 날이 많고, 이미 다 와본 곳이니까요. 그거는 내가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 굳이 그럴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거고요. 그런데 엄마·아빠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해줘야 선택하는 저한테 수월해요. 그게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한식 먹고 싶어서 못 참겠다! 말하세요. 오늘 피곤해서 난 들어가서 잘래! 싶으면 내일을 위해서라도 무리하지 말고 말하고요.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엄마 아빠랑 같이 있었던 적은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은근 많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어떤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요. 그걸 추측하길 바라지 말고, 쟤는 결국 남이지 참... 하면서 말해주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게요.

아빠랑 엄마는 연애라도 했지, 서로 마음 얻으려고 아등바등해서 여기까지 와 보기나 했지... 딸인 저는 당연히 그런 입장 안 돼봐서 몰라요. 뭐든 원하는 걸 꼭 말해줄 것, 그리고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알아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면서 본인이든 다른 일행이든 기분을 망치지 않을 것. 요거는 약속합시다잉."

나름 여행 경험이 많았고,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약속을 받아냈어요. 그리고 엄마·아빠는 용기를 내서 많은 순간 이야기를 해줘서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엄마·아빠 또 고마워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엄마·아빠 사이의 어떤 룰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저는 그랬어요. 아, 이게 불타는 연애하다가 30년을 같이 산 커플은 나름 뭔가가 있구나 하는걸요. 저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내 남편의 구도에서 그런 걸 관찰할 수 있었던 게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는데, 그건 본내용에서 차차 이야기할게요.

[기타] ⑪ <꽃보다 할배> 환상은 깨트리고 출발합시다

편집된 70분과 리얼타임 70분은 완전 다르다.
 편집된 70분과 리얼타임 70분은 완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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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보다 할배> 진짜 왕팬이에요. 제가 얘기하는 환상은 "편집본만 보고 키운 환상"을 말하는 거예요. 백일섭 아저씨가 그 기차에서 얼마나 오랜 생각을 했을 거며, 이동하는 운전은 또 얼마나 지루했겠냐고요. 하루이틀 다닌 걸 70분에 압축한 액기스 같은 달콤함만이 자유여행에 있을 수가 없다는 걸 미리 꼭 말씀드립시다.

"어머니 아버지, 이서진에게는 수많은 스태프와 현지 코디 등이 있었겠지만 저는 저밖에 없어요. 편집된 70분은 재미있지만 리얼타임 70분으로는 세비야에서 론다 이동도 못 해요. 짐꾼의 넋두리를 할 왕작가님이나 나피디님도 없고요. 그래도 노력하겠지만, 생각보다 즐겁지 않은 순간이 와도 그냥 그러려니 그 순간도 즐기기로 해요. 아, 그리고 <꽃할배>에서 본 곳 중에 여기 안 가면 난 후회할 것 같아! 싶은 곳은 말씀하세요. 그거 기준으로 일정 짜면 되니까."

적다 보니 새삼 울컥하는 게, 엄마·아빠에게도 이게 마냥 쉬운 여행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름 우리 모두가 이 여행을 즐기려고 정말 기를 쓰고 노력했었구나 싶어요. 원래 저희 가족의 DNA 자체가 그래요. 놀 거면 열심히 논다. 과로를 해서라도 논다.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요.

이렇게까지 이것저것 치밀하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유여행은 원래 힘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여정을 가지고 동행한다는 건 여행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원래 그런 게 본질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들로 금방 채워져요. 셋이서 함께 어떤 풍경 앞을 마주할 때,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데 지금도 1분 1초가 간다는 게 슬펐던 순간들 같은 걸로요.

그러니까 피곤해도 '파이팅'하세요. 다녀와 본 입장에서 말하는데 진짜 후회 안 하실 거예요. 효녀 효자 여러분, 그리고 예민한 자식들과 동행할 세상의 수많은 엄마 아빠 여러분의 개고생을 응원합니다. 진짜로요!

덧붙이는 글 | 저자 블로그 http://min_traveler.blog.me/221060501015에 게재된 글이며, 해당 블로그에 연재중인 시리즈 [환갑 부모님과 스페인 현실여행 <걸어서 환장속으로>]의 일부입니다. 페이스북 '여행의 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자유여행, #여행, #스페인여행, #효도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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