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선수들

2017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선수들 ⓒ 박진철


한국 배구의 지상 과제는 단연 2020년 도쿄 올림픽 남·여 동반 출전이다. 배구계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미 세계 배구 강국들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배구만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김연경 혹사' 부분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2회에 걸쳐 한국 배구의 현주소와 도쿄 올림픽 전망을 심층 점검해 본다...<기자말>

세계 배구 강호들은 이번 여자배구 월그드랑프리 대회를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에 초점 맞췄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 팀인 중국은 장창닝, 휘러치, 수윤리, 얀니 등 주전 멤버들을 출전시키지 않고 휴식과 재활 기회를 부여했다. 주 공격수인 주팅(24세·198cm)과 주전 센터 유안신유에(22세·201cm)도 대회 중반까지 거의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리징(27세·186cm), 치안징웬(20세·188cm), 왕유안유안(21세·195cm), 가오위(20세·193cm) 등 지난 시즌 중국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한 선수나, 20대 초반의 장신 유망주들을 과감하게 주전으로 기용해 테스트를 했다.

세계랭킹 2위 미국과 4위 브라질은 아예 전면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두 팀은 똑같이 리우 올림픽 엔트리 12명 중 무려 10명을 이번 월드그랑프리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러시아도 곤차로바, 코셀레바, 쉬체르반 등 주 공격수들에게 휴식 기회를 주었다.

리우 올림픽 은메달 팀인 세르비아는 주전 멤버를 대부분 출전시켰다. 그러나 핵심 공격수인 보스코비치(21세·193cm)는 대회 중반까지 전혀 출전시키지 않았다. 20대 초반이지만, 세르비아 대표팀의 기둥이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 기회를 부여한 셈이다.

리우 올림픽 4위 네덜란드도 20~22세 유망주들을 대거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이탈리아도 어린 장신 유망주들을 적극 기용했고, 벨기에는 엔트리 14명 중 무려 6명이 19세~21세였다.

2그룹 강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본과 태국 등 아시아 강호들도 젊은 유망주들을 고루 기용하면서 도쿄 올림픽을 겨냥한 주전급 선수 발굴·육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유망주 적극 기용, 지금이 최적기·일석삼조 효과

세계 배구 강국들이 이처럼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해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해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도쿄 올림픽까지 3년이 남은 지금 시점이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국제대회를 통해 새로운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를 키워야 국가대표팀 운용에도 여유가 생긴다. 20대 후반~30대 초반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 때까지 현재의 기량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운이 나빠 부상을 입게 되면 출전조차 못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등을 대비해 지금부터 유망주들을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시켜 기량과 경험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어린 유망주들이 국제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경우 자국의 배구 흥행에도 큰 활력소가 된다. 일석삼조의 효과다. 그리고 이것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강팀들의 필수 코스이자 당연한 국가 전략이다.

'정반대'로 가는 한국 배구

그러나 한국은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리우 올림픽 주전 멤버를 거의 그대로 차출했다.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는 전무했다.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엔트리 12명의 평균 연령은 한국 나이로 28.4세였다. 30대 이상 선수도 4명이나 됐다. 가장 어린 선수가 박정아, 김미연, 김연견으로 모두 1993년생(25세)다. 이들은 2011~2012시즌 V리그에 데뷔했고, 올해로 프로 7년 차다. 이미 중고참급 선수들이다.

나이를 기준으로 선수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 강팀들이 18세~21세의 장신 유망주들을 국가대표팀에 포함시키고, 주전 또는 교체 멤버로 기용하며 국제무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한국 배구가 원래부터 이랬던 것도 아니다. 과거 국가대표를 보면 고등학교와 대학생, 프로 초년생 등 나이 어린 유망주들을 발탁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자배구의 김세진, 문성민, 전광인, 송명근, 여자배구의 김연경, 양효진 등이 그런 과정 속에서 대형 스타로 성장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배구를 지탱해 온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가대표팀에 장신의 유망주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시도 자체가 실종된 모습이다. 한국 배구가 세계 강호들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스피드 배구, 장신화, 서브 강화'가 시급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도 눈감고 있는 것이다.

쉼표 없는 '김연경 혹사', 이미 심각한 수준

 '작전 타임' 김연경 선수

'작전 타임' 김연경 선수 ⓒ FIVB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 주전급 선수들이 국제대회 대부분을 소화하면서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김연경에 대한 관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김연경은 한국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 출전과 메달 획득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 키워드이다.

그러나 김연경의 나이도 이제 30세다. 도쿄 올림픽은 3년 후다. 갈수록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주 중요한 국제대회가 아니면, 국가대표에서 제외시켜 줄 필요성도 있다. 안타깝게도 김연경의 현재 모습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이미 혹사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김연경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올해 5월 3일까지 터키 리그 일정을 소화했다. 6개월이 넘도록 터키 리그, 터키컵, 유럽 챔피언스리그 등으로 강행군을 펼쳤다. 체력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세계 강팀들의 주 공격수들이 자국 배구협회의 배려로 충분한 휴식과 재활 기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김연경은 한국배구연맹(KOVO)의 이벤트성 대회와 국가대표팀에 모두 차출돼 살인적인 일정을 치르고 있다.

김연경은 터키 리그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지난 6월 3일 KOVO가 주최한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 출전을 위해 훈련에 돌입했다. KOVO가 V리그의 글로벌 마케팅 차원에서 개최한 이벤트성 대회였다. KOVO 소속도 아닌 김연경이 한국 프로배구의 흥행을 위해 헌신해준 것이다.

그리고 6월 14일 월드그랑프리 대회를 위해 국가대표팀 훈련에 합류했다. 이어 7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불가리아-폴란드-한국-체코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더군다나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매주 3일 연속 경기를 치렀다. 비몽사몽 간에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연경은 한 달 동안 전 경기를 뛰며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했다. 세터의 토스마저 불안하면서 나쁜 볼을 처리하느라 체력 소모는 더 심했다. 한국이 예선 라운드에서 2번이나 이겼던 폴란드와 결승전에서 패해 2그룹 우승을 놓친 것도 김연경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고갈된 체력 때문이다.

배구협회, 도움은커녕 '대표팀 발목' 붙잡아

배구협회마저 대표팀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을 붙잡았다.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엔트리를 다른 나라보다 2명이 적은 12명만으로 운영했다. 선수 기용도 핵심 선수들이 거의 전 경기를 뛰었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다른 국가들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의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까지 비난과 분노가 폭발했다. IBK기업은행의 긴급 후원으로 전원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긴 했지만, '차별'이라는 큰 상흔을 남겼다.

김연경에게 휴식이란 단어는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8월 1일 체코에서 귀국한 뒤 이틀 만에 다시 국가대표 훈련에 돌입한다. 오는 8월 9일~17일까지 필리핀에서 열리는 2017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도 출전해야 한다. 이 대회는 올해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로 도쿄 올림픽 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대회 중간중간 국가대표 소집 훈련까지 감안하면, 김연경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올해 9월 24일까지 무려 11개월 동안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셈이다. 국가대표팀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소속 팀의 리그 준비에 합류해야 한다.

배구팬들은 월드그랑프리 대회가 끝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배구협회와 감독이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세계 최고 선수인 김연경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2019 아시아선수권에 올림픽 본선 티켓이?

한국 배구가 선택과 집중 대신, 대부분의 국제대회에 주전 선수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남녀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도쿄 올림픽 출전권 방식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와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감독은 물론 배구계 상당수가 2019년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걸려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부여된다는 주장은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능성이 가장 낮은 방안이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지난 5월 4일 발표한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 부여 방식 개편 잠정안'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출전 국가 확정은 남녀 모두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1단계는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게 자동으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부여된다. 2단계는 올림픽 세계예선전(본선 출전권 3장), 3단계는 올림픽 국제예선전(3장), 마지막 4단계는 각 대륙별 올림픽 예선전(5장)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FIVB가 발표한 잠정안이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다.

4단계인 올림픽 대륙별 예선전은 오로지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하기 위한 이벤트성 대회이다. 아시아도 그동안 유럽 등 다른 대륙이 해왔던 대로 2019년도에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별도로 치른다는 뜻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팀에게만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주어진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아시아배구연맹이 2년마다 개최하는 아시아선수권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대회이다. 출전 국가부터 차이가 있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이미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국가는 올림픽 규정상 출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시아선수권은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참가할 수 있다

아시아배구연맹은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별도로 열지 말고,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 팀에게 올림픽 본선 티켓을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FIVB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는 2018년도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현재로선 여러 면에서 FIVB의 잠정안대로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별도로 치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럴 경우 아시아선수권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거의 상관이 없게 된다.

최강 이란, 4강 탈락 수모에도 '유망주 대거 출전'

실제로 지난 1일 끝난 2017 남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아시아 최강' 이란은 성인 국가대표를 단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대신, 청소년(U23) 대표팀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 패해 4강 진출조차 실패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결과지만, 이란은 아시아선수권을 어린 유망주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하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미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한 호주도 전력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란, 호주, 중국, 대만 등 강호들이 모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한국 대표팀이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4강 안에 들어야 하는 이유마저 사라져 버렸다.

이들 강호들이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이번 대회의 5~8위가 포함되는 B조로 자동 편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은 8강전에서 이들 중 한 팀과 만날 수밖에 없다. 강팀들을 피해보겠다는 목표가 어긋나 버린 것이다.

여자배구는 이번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올림픽 본선 출전권에 미치는 영향이 여러 면에서 더욱 미미하다. 또한,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예선전 사이에 한 달 정도의 공백이 있다. 때문에 아시아선수권에는 지칠 대로 지친 주전 멤버들에게 휴식을 주고, 대신 유망주들을 파견해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감독만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 배구협회가 정확한 정보를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2019년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걸려 있다는 주장은 전혀 확정되지 않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그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연초에 국가대표 감독님들에게 올해 아시아선수권도 중요하다는 점은 설명했다"고 말했다.

*2편에 한국 배구의 유망주와 도쿄 올림픽 출전권 획득 전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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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V리그 김연경 월드그랑프리 배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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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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