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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시대에는 사람들이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결혼하지 않은 형제들도 같이 살곤 했다. 농경 사회에서 노동력은 곧 경제력이었기에, 가족들이 뭉쳐서 살아가는 모습이 일상적이었던 것이다.

대가족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핵가족 시대가 도래했다. 산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3, 4인으로 구성된 가구가 증가한 것이다. 이들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어 조부모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런데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일본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 가족의 형태는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 이 가족의 형태는 나이든 부모과 40, 50대 자녀의 결합이다. 이들이 맞이할 미래는 가족의 파산이다.

가족의 파산
 가족의 파산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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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특별 취재팀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생활 형편이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파산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들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만든 책이 바로 <가족의 파산>이다. 200쪽도 되지 않는 이 가벼운 책에는 한국이 머지않아 맞이할 무서운 미래가 담겨 있었다.

일본에서 발생한 사회 문제는 보통 시간을 두고 한국에 들어오곤 했다. 고령화 문제 역시 일본에서 먼저 발생하고 한국이 그 뒤를 따르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에서 발생하는 가족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책이 주제로 하는 가족의 형태는 노인과 중년 자녀의 결합이다. 노인을 농촌에서 같이 모시고 사는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도 아니고, 젊은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사는 핵가족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다.

책은 인터뷰를 통해서 가족의 현황을 묘사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런 가족의 형태는 자녀의 귀환으로 인해 형성된다. 보통, 부모는 자식을 키워서 일자리가 있는 도시나 다른 지역에 보낸다. 자녀는 성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부모는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자녀가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이들이 고용 환경의 악화에 따라 직업을 잃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모가 병이 들었는데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직접 간병하기 위해 돌아온다. 타지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자녀가 부모를 찾아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는 과거에 자식을 학교에 보내던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점점 연로하여 일하기 힘들어 진다. 대부분의 수입을 연금 수령액에 의존하게 된다. 자녀는 한 번 사회 경력의 단절을 겪었기 때문에 점점 더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되고, 다른 일자리를 얻어도 부모를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금액을 받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인원을 조정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그 말은 뒤집으면, 노동자가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 속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중략) 파견 회사에서 일자리를 부탁하면 직접 일을 고를 수 없다. 결국 파견처에서 새로운 파견처로 옮겨 다닐 뿐이다.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려 해도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57P

이렇게 되면 자녀가 돈을 모아서 독립을 하거나, 부모를 안정적으로 부양하는 모습은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부모가 나이가 들면서 더 큰 질병에 시달리게 되면, 부모를 간병하기 위해 자식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기 위해서 일을 그만두면 부모의 연금수령액을 제외한 수입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 경우 가족들이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한국과 비교하면 지방에도 인구가 많이 분포한 일본이지만, 지방일수록 이런 문제는 심각해진다고 한다. 애당초 많은 요양 시설이나 일자리가 있는 도시와 달리, 낙후되거나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곳에 사는 이들은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이런 지역에서는 자녀가 충분한 임금을 받기도 어렵다.

부모를 돌보지 않고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지만, 오히려 부모는 자식이 오래 일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혼자 남겨지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렵게 되어도 자녀는 이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부모는 더 오래 혼자 남겨져서 결과적으로 더 위험하게 된다. 악순환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자녀가 일을 하면서 얻은 월급 때문에 되려 가족이 복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책은 한 교수의 입을 빌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금 수령액이나 낮은 임금만으로는 가족들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어려우니, 정부가 개입하여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대로 중류층이 붕괴하는 사태를 방치한 채 어느 정도 시장에 맡길지 아니면 국가가 개입해 세금은 거둬도 젊은 층과 중장년의 사회복지를 충실하게 다룰지, 이것은 정치, 행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택지입니다. 그것을 국민에게 정확히 제시해야만 합니다." -125P

"자식이 일해서 일하는 만큼 생활보호비가 감소한다면 차라리 일하지 않는 것이 낫죠. 그런 제도는 점검이 필요해요. (중략) 늙은 부모를 돌보기 위해 돌아온 자식이 그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것을 방치해선 안 돼요. 주거, 취업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그런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 사회를 건전한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됩니다." -128P

이전에 <노인지옥>이라는 책을 읽은 바 있는데, 그 책 역시 일본 고령층의 빈곤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의 파산>은 한 사람이 아닌 가족의 파산으로 나아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래는 머지않아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런 문제가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책에서 40%로 묘사되지만, 한국은 일본보다도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고령화 문제 역시 한국의 큰 문제다. 저출산은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하다.

책은 정부가 제도를 통해서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사회보장제도의 빈틈을 전혀 보완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면서, 시급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써 말한다.

함께 살아서 행복한 가족이 아니라, 함께 살기에 절망을 느끼는 가족이 확산된다면 사회에 희망이 사라질 것이다. 장수가 공멸을 가져오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가족이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오기를 희망한다.


가족의 파산 - 장수가 부른 공멸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동녘(2017)


태그:#노인, #파산, #가족, #고령화,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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