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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소재의 노인복지기관에서 출장상담을 하고 있는 고은솔 변호사.(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대구 동구 소재의 노인복지기관에서 출장상담을 하고 있는 고은솔 변호사.(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고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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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부모님과 연락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현재 저의 생계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어머니의 시신 인수를 포기합니다."

부양 단절, 경제적 어려움, 고령 등을 이유로 가족의 시신 인수를 포기하고 화장 등 절차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시신포기각서'(사체포기각서)다.

신체포기각서(?)와 헷갈려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담당하는 사회복지관련 실무자에게는 이미 익숙한 용어가 된 지 오래다. 시신포기각서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어떠한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시신포기각서' 탄생의 배경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1항은 "시장 등은 관할 구역 안에 있는 시신으로서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매장하거나 화장하여 봉안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무연고자가 사망한 경우 관할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망자의 사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시간·경제적 비용의 문제로 장례 없이 바로 냉동고에서 보관 후 화장하는 직장(直葬)으로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법률상 연고자인 직계비속이나 형제자매 등이 있지만 '오랜 기간의 부양단절, 경제적 형편' 등을 이유로 장례를 거부하고 시신 인수 등을 포기해버리는 경우다. 기초생활보장법 제14조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망한 경우 사체의 검안(검안)·운반·화장 또는 매장, 그 밖의 장제조치 등을 포함한 장제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2017년 현재 장례지원금으로 75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저 장례비용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75만 원은 수의 한 벌 가격조차 되지 않는 비용이다. 결국 친족들마저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경우 장례를 포기하고 구청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사후 처리를 의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우리 주변에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의 '무연고자'란 있기 어렵다. 1순위 상속인이 없으면 2순위, 3순위 계속하여 상속 순위가 넘어가기 때문에 때로는 사돈의 팔촌까지 누군가는 사망한 자의 친족으로서 그 사후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장례 및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친족에게 강제로 이를 인수할 방법이 없으니 일정 기간을 기다린 후 '사실상 무연고자'로 봐 직접 처리하기 위해 실무상 시신포기각서 등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각서 쓴다고 해서 '상속'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위와 같은 배경 속에서 행정 실무상 작성되는 시신포기각서는 직장 등 사후처리를 위한 절차상의 편의를 위한 문서에 불과하고 정확한 법률상의 용어도 아니다. 따라서 이 각서는 사망한 무연고자의 재산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민법 제1005조) '상속'의 법적 효력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상속이라 함은 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또 상속인이 알건 모르건 법률상 당연히 피상속인의 재산상의 권리 의무가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컨대, 부양을 단절했던 친족이 구청 공무원의 연락을 받고 시신포기각서를 작성해줬다고 하더라도 '상속포기'(또는 한정승인)까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법률홈닥터를 찾아오는 취약계층 중에는 "시신포기각서를 썼으니 상속포기도 된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라면서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또는 한정승인)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라고 뒤늦게 찾아오신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실의 오인 또는 단순한 법률의 부지(不知)에 불과하므로 특별한 요건을 갖췄음을 입증해 특별한정승인(민법 제1009조 제3항)을 주장하지 않는 이상 원칙적으로는 구제받기는 어렵다.

채무를 대물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통상은 피상속인이 사망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관할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신청을 해 채무 승계를 단절시켜야 한다. 행정기관의 연락을 통해 시신포기각서를 작성한 경우, 그 시점에 피상속인의 사망사실을 알게 되므로 통상 3개월의 기산점은 그때가 될 것이다.

부모의 시신을 포기를 한 아들은 무연고자로 사망한 노모처럼 훗날 본인도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될 확률이 높다. 시신포기각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 없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취약계층인 경우가 대다수다. 시신포기각서라는 잔인한 용어를 낳게 된 사회적·개인적 원인은 일단 차치하고 남아있는 또 다른 취약계층이 법률적 무지로 인해 채무를 대물림 받지 않도록 시신포기각서 및 상속의 효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 필요가 있겠다.

상속포기(또는 한정승인)에 대해 법률적 도움을 받고자 하는 취약계층 및 각종 사회복지기관은 법률보호의 모세관 역할을 하는 법률홈닥터 제도를 통해 무료로 1차적 법률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 법무부 인권구조과 법률홈닥터는 찾아가는 법률주치의입니다. 장애인, 수급자, 차상위, 범죄피해자,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및 나홀로 소송 조력, 법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 60개의 지방자치단체 및 사회복지협의회에 변호사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법률홈닥터 홈페이지] http://lawhomedoctor.moj.go.kr/
[법무부 인권구조과] 02–2110-3868,3853,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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