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경기. 베트남 응유엔 반 퇀이 골을 넣은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0대1,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7월 29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경기. 베트남 응유엔 반 퇀이 골을 넣은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0대1,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 연합뉴스


난리가 났다. 지난 7월 29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동남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시행한 K리그 올스타전이 문제였다. 김신욱과 김진수, 곽태휘 등 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K리그 올스타는 무기력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베트남 U-22 대표팀에게 패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한국 축구의 위기론에 힘이 더해졌다.

속을 들여다 보면, 경기력과 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K리그 클래식은 오는 2일, 24라운드가 진행된다. 2위에 승점 5점이 앞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전북 현대, 조나탄을 앞세워 리그 우승을 노리는 수원 삼성, 반등을 노리는 FC 서울, 강등권 탈출을 노리는 광주 FC와 인천 유나이티드 등 K리그 클래식에 소속된 12개 팀 모두가 승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1위 전북부터 꼴찌 광주까지, 여유는 없다.

그 와중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올스타전을 베트남에서 진행했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려는 그 이유 하나에 구단과 선수들은 베트남으로 날아가 경기를 뛰었다. 수많은 비판과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전형적인 일방통행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통은 없다. 윗선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고, 추진된 사항이니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지난 7월 28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베트남축구협회에서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난 7월 28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베트남축구협회에서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구단과 선수, K리그 팬들은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 소속팀 선수가 선발되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우리 선수가 적당히 뛰고, 부상은 피하기를 원했다. K리그 클래식 24라운드에서 활약해주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다. '왜' 베트남에서 올스타전을 치러야 하고, 우리 선수가 선발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위에서 하라니까 해야 했다.

국가대표가 살면 K리그가 사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국가대표팀의 조기소집이 확정됐다. 축구인들은 '대승적', '거국적' 등의 단어를 남발하며, 국가가 하나로 뭉쳐야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국가대표팀의 위상과 관심도는 K리그와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크고, 월드컵이 있으므로 K리그는 물론 유소년 지원 사업도 이루어질 수 있다. 기업의 투자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한국 축구의 특성상, 월드컵은 무조건 나가야 한다.  

 신태용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라 스테이에서 열린 K리그 CEO 워크숍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소집 협조를 요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호곤 기술위원장.

신태용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라 스테이에서 열린 K리그 CEO 워크숍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소집 협조를 요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호곤 기술위원장. ⓒ 연합뉴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재는 1980년이 아닌 2017년이다. 그런데도 축구계 윗선은 여전히 '일방통행'이다. 소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조기소집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 너무나도 아쉽다. 신태용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언론을 통해 조기소집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힘이 없는 K리그 구단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 그제서야 K리그 구단을 하나하나 찾아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척했다. K리그 구단은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한국 축구를 위해 협조했고, 조기소집은 확정됐다.

지난 2007년, 대한민국 축구인들이 K리그를 얼마나 멸시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취임한 지 17일밖에 지나지 않았던 박성화를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했다. 2007 아시안컵 이후 자신의 사퇴를 천명한 핌 베어벡의 후임이 마땅치 않았고,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코앞에 둔 상황이란 변명이 붙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박주영과 백지훈, 김동진 등 '황금세대'를 앞세워 메달 획득을 노렸지만,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 구단과 팬을 무시한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K리그는 'B급' 취급을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이끌었던 홍명보,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울리 슈틸리케도 다르지 않았다. K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보여도,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해외파 선수가 국가대표팀 선발이었다.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축구인들 대다수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축구계 인사들이 K리그와 소통하는 2017년의 모습을 지켜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황당한 올스타전, 조기소집의 과정을 바라보면, K리그에 대한 생각을 가늠할 수 있다.

2017시즌, K리그의 AFC 챔피언스리그 성적은 암울하다.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했던 제주 유나이티드가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K리그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AFC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을 기록하고 있고, 최근 10년 내 가장 많은 우승팀을 배출한 곳도 K리그다. 2016시즌,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오른 팀도 전북 현대였다. 

박주영과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등 박지성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재능들이 K리그에서 성장했고, 유럽으로 건너가 성공을 거뒀다. 2017·2018시즌 초반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내고 있는 황희찬도, 포항 스틸러스 유스 시스템이 키워낸 재능이다. K리그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는 이재성과 '괴물 신인' 김민재도 유럽 무대로 나아갈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다.

 지난 29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경기. 올스타팀 염기훈과 김신욱이 볼을 쫓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현지시간)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 경기. 올스타팀 염기훈과 김신욱이 볼을 쫓고 있다. ⓒ 연합뉴스


K리그가 축구계 윗선의 변함없는 일방통행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수준은 아니다. B급 취급을 받을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필요할 땐 협조를 요구하는 모습에 무조건 응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난 6월, 조기소집으로 한국 축구는 이라크(친선경기)와 카타르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나. K리그 최고의 선수 대신 유럽 리그 벤치에 머무르는 선수를 활용한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결과는 어떠했나.

한국 축구의 자산을 키워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K리그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큰 대회를 앞두고 반복되는 일들이 바뀌려면, 70, 80년대 사고방식으로 한국 축구를 운영하는 자들이 2017년 사고방식에 알맞은 자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이들로 바뀌어야 한다. 황당한 올스타전, 불통의 끝을 보이는 조기소집.

국가대표팀 없는 K리그는 존재할 수 있지만, K리그 없는 국가대표팀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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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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