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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세 시간으로 할당된 강의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진다. 학생들은 잠을 채우거나, 잠을 깨우거나 하고, 나는 질문을 받거나, 목을 축이거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리고 흡연자이다 보니 담배도 한 대 태운다. 어느 강의일, 쉬는 시간의 이야기이다. 여느 때처럼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웠다. 그리고 거기에선 그 강의를 듣는 수강생 한 분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서로 멋쩍게 목례를 나누고 각자 담배를 피우던 와중에 그 수강생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마디 질문을 했다.

"교수님, 혹시 성소수자이신가요?"

그저 의아했다. 무슨 의미지? 그리고는 별 생각 없이 쉽게 답을 내뱉었다.

"아뇨, 전 다수자인데요?"

죄송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급하게 비벼 끄며 돌아서려는 그에게 반문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셨어요?"

그분의 사연은 이랬다. 이 대학에는 아직 성소수자 모임이 결성되어 있지 않은데 새로 구성해 보려 한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조언이나 자문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마침 자신이 듣는 강의의 교수자였던 내가 성소수자이진 않을까 추측을 했다는 것. 게다가 강의 도중, 내가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서 관련 단체들도 많이 알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른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동 중인 친구들도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문의를 하라고, 자세한 답변이지만 형식적이고 건조하기도 한 답변을 건네며, 쉬는 시간이 끝나가니 들어가자고 했다.

마저 남은 강의 시간을 채우고 운전을 하며 퇴근하는 길, 도대체가 운전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친구는 왜 내가 성소수자일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지? 내가 그렇게 보이나? 교수라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옷을 입고 출강하는데 그것 때문인가? 아니면 내 말투에 어떤 특이점이 있나? 뭐지? 뭘까? 나는 이성애자인데? 지금까지 여성과만 교제해 왔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순간.

학생의 질문은 나의 '벽장'을 열게 만들었다
 학생의 질문은 나의 '벽장'을 열게 만들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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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3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같은 반의 친구 한 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공학이 아닌 남자 중학교였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며 노래도 잘하던 그 친구의 이름이 아직 기억난다. 중2 때까지는 외양 자체에 무관심했던 내가 중3 때는 꾸미고 싶어졌다. 잘 안 감던 머리를 더 자주 감았고, 세수 후에는 로션과 스킨을 바르기 시작했다.

중3의 1년은 금세 흘렀고 졸업식 날 그에게 난 손편지를 건넸다. 너는 참 멋있고, 그래서 많이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그렇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서 좋다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친해지고 싶다고, 몇 장을 썼다 구겼다 하면서 마음을 꾹꾹 눌러 적은 편지를 건넸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 당시의 나의 마음은 이제와서야 번역하길 "like"가 아닌 "love"라는 동사를 사용하게 된다. 첫사랑의 개념 정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제법 폭넓게 정의를 한다면 그도 나의 첫사랑이란 영역에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을 "love"라는 동사로 의미화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첫사랑이라는 범주를 떠올릴 때 이 당시의 경험의 기억은 고스란히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잊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감춰져 있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나는 이 경험과 이 경험의 기억을 내 머릿속 벽장 속에 꽁꽁 감춰 두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흡연자들은 대개 화장실에 좌변기가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곤 했다.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좌변기가 있는 칸 안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걔 진짜로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아, 몰라. 중학교 때부터 짜증났어."

후자는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급히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어떤 감정의 뭉텅이들을 벽장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벽장 속에 집어넣었다는 기억마저도 벽장 속에 함께 집어넣었다. 나의 그 감정들은 누군가들에게 "짜증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교수님, 혹시 성소수자이신가요?"

짧은 질문이 15년간 굳게 닫혀 있던 벽장을 열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운전을 멈추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고 나와 선글라스를 벗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세계가 달라졌다. 양분법의 세계가 와장창 깨졌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양분법의 세계. 이성애자가 있고 동성애자가 있는 양분법의 세계가 깨졌다. 그 양분법의 세계에서 이성애자에 위치하고,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

세계를 흑백으로 나누던 선글라스가 벗겨지자, 이 세계는 규정할 수 없는 색깔들로 가득찬 총천연색의 스펙트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자문했다. 그럼 나는 어디에 위치하는 것이지? 나는 무슨 색인 것일까? 답할 수 없었고 답하지 않기로 했다. 답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고, 규정할 수 없어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매우 미시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나는 위의 쉬는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는 "아뇨, 전 다수자인데요?"라고 말하는 나의 입을 막아야지. 그리고는 대신 답할 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계속 잘 모르는 중이에요. 하지만 전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손을 잡아주며 감사하다고 말해주어야지. 당신은 언젠가 내 벽장을 열어준 적이 있다고, 선글라스를 벗겨준 적이 있다고, 나의 세계를 더 자유롭게, 더 많게,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준 적이 있다고.

#장면 2

이 이야기는 그다지 꺼낸 적 없던 이야기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결과부터 이야기하자. 한 소설가가 내가 잠든 사이 성행위를 시도하려 한 바 있었다. 그 소설가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여성이었고, 한 학기 나를 가르쳤던 강사 선생님이었다.

친구가 어떤 지방 소도시로 놀러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곳은 그 친구와 내가 함께 들었던 창작 수업의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그 선생님의 집에 놀러 가서 술을 맛있게 먹고 온다는 계획.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계획이었다. 흔쾌히 응했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모두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일이 일어났다. 내가 잠든 사이 내 하의가 벗겨져 있었고 그 선생은 물리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와중에도, 그리고 술에 취한 와중에도, 너무나도 놀란 와중에도 난 분명히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나는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저항은 하지 못했다. 그곳은 그 사람의 집이었고, 나는 술에 취해 있었고, 게다가 그곳엔 다른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만 끝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행위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조는 아마도 보통 "너도 원했잖아"로 치환되어 버리고 말겠지. 나도 원했던가? 아니면 그것은 나의 착각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적어도 당시의 내 몸은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몸이 너무 취해, 성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임이 확인되자 그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멈추었다. 그렇게 그 밤은 지나갔다.

사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그 사람은 나에게 "너 문단에 나오면 누나들이 참 좋아하겠다. 예쁘게 생겨서. 자기 옆에 앉으라고 막 그럴 것 같아. 나 정도 나이 되면 완전 어린 애들보다 너 정도 나이 있는 애들을 좋아해" 등의 발언을 하였다. 그때는 그랬다. 다들 깔깔깔 웃겼다. 함께 그곳에 간 친구도 함께 깔깔깔 웃었다. 동석한 다른 친구에 비해 예쁘다고 해주니까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몰랐다, 그때는. 그게 이제 와서는 이렇게 기분 나쁘고 수치스러운 기억이 될 줄은.

성인 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안내서
 성인 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안내서
ⓒ 성인남성성폭력피해자지원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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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안은 채 친구와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동석했던 친구와 둘이 술을 한잔했다. 그에게 난 그가 잠든 사이 있었던 위의 일들을 가십처럼 이야기했고, 그 친구도 가십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오랜 비밀로 하자고 약속하였다. 그 일에 대해 나는 착각, 혹은 경중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그리고 한동안 나는 그것이 성폭력의 범주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수치스러웠을 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둘의 젠더가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 내 남성성이 발현되지 못한 일 정도로 의미화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믿고 있던, 답습해 왔던 성역할의 전복에서 왔던 수치스러움, 그런 상황이지만 신체가 반응을 하지 않아 "남성"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의 수치스러움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런 거 다 아니었다. 또 다른 한 친구와 만나 어렵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친구 왈, "좋았겠네.", "멍청한 놈, 줘도 못 먹냐?" 같은 반응이 돌아오자, 나는 정말이지 주먹을 쥐고 그 친구의 얼굴을 때리고 싶었다. 그날의 그 일은 성폭력이 맞았다. 여러 권력 위계의 교차 속에서 한 권력은 다른 권력을 뛰어넘기도 한다. 나는 남성이라서 성폭력을 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특정 상황에서 젠더 위계를 뛰어 넘는 연령 위계와 관계 위계에 굴복 당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성과 관련된 장면에서는 우리는 젠더 위계 중심으로만 생각한다.

내가, 동석했던 친구가, 그리고 저딴 말을 했던 친구가 알고 있던, 그리고 대개의 "우리"가 믿고 있던 "남성"이란 무엇일까? 성관계라고 하면 상황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무조건 환장하는?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굴종시켜야 하는? 정복해야 하는? 상위에 있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 우리가 말하는 "성"에 있어서의 남성성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나는 등단을 하게 되었다. 등단 직후부터 지금까지 문단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별로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딱히 무엇인지 나도 분명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바로 이 일이 내가 문단 활동을 그다지 열심히 참여하고 싶지 않게 된 첫번째 계기라는 것을. 혹시나 마주치게 되면 나는 무슨 낯으로 그 사람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다행히 그 사람은 소설가이고 나는 시로 등단한 덕에 지금까지는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쩌다 그 사람의 이름이 내게 노출되면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어쩔 수 없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일이 지금 내게 이렇게 큰 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이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매우 미시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어 위의 저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저항할 수 있을까.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것은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런 타임머신은 개발되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은 난 여기에 있다. 그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날과 똑같아서 오늘의 내가 오늘로 다시 오게 된다 할지라도, 난 여기에 있다.

#돌아와서

'남성성'이라는 주제가 나에게 던져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위의 두 장면이다. '남성성(男性性)'이라는 이름의 '성(城)'은 무척 높고 단단했다. 아니, 다들 그 성은 무척 높고 단단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그 성이 너무 높다 하여 넘을 생각도, 너무 단단하다 하여 부술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 성에는 감시자들이 너무 많아 탈출할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아니 나 스스로도 그 성에서 탈출할 욕망조차 가져 보지 못했다. 남성성 안에 사는 것은 무척이나 안온했기 때문이다.

그 안온함에 균열이 가는 일이 있었다. 바로 위의 두 일들이다. 물론 미시적으로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균열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이 일들로 이제 나는 '남성성'이라는 '성(城)'의 존재 양식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성벽에 다가가 손을 대보기로 했다. 떨리는 손을 갖다 대려 했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성성'이라는 '성(城)'의 벽은 높은 것도 단단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감시자들이 있었다. 감시자들이 서로를 감시하며 성벽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성벽은 무척이나 높고 단단하다고. 그 누구도 넘거나 부술 수 없다고. 그리고 혹여 그 성벽을 허물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모두가 달려가 비난하고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감시자 중 한 명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성벽도 없는데, 이런 성을 우리는 '성(城)'이라고 불러도 될까? 하지만 모두가 모두를 가두고 있기에 우리는 '성(城)'이라고 불러도 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성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탈출하고 싶어 하기는 한 걸까? 잘 모르겠다. 일단 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난 예전만큼 이 성이 안온하지는 않다. 나는 이 성의 안온함이, 감시자의 시선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비애월구씨는 대학에서 시간제 강의 노동을 하고 있으며 시인으로 활동 중인 노동당원으로, 이 글을 통해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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