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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시내버스에 냉방 하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타는 것이 지옥이었다.
 시내버스에 냉방 하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타는 것이 지옥이었다.
ⓒ 대한뉴스 (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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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더워지기 시작한다. 수은주가 30도 위로 쳐드는 일이 예삿일이 되고, 몇백 미터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생각하면서 오른 버스에서는 온몸을 얼릴 듯한 냉방폭탄이 엄습한다. 오늘 퇴근길은 창문을 열어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땀을 쭉 식힌다.

요즘 대중교통에서도 냉방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는 여느 여름처럼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동시에 들어온다고들 하고, 시내버스는 십중팔구 냉방을 켜고 차 꽁무니에서 제습된 물을 줄줄 내뿜는다. 점점 예년보다 덥다는 날씨예보가 엄습하는 가운데, 유일한 도피처는 대중교통수단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 대중교통 냉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지하철과 버스의 시기가 약간 다르고, 버스도 각 지역의 버스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혼자 다닐 때는 알아봐야 쓸모없지만, 누군가와 같이 버스를 탄다면 떠버리처럼 말할 수 있는 대중교통 냉방사를 차근차근 짚어본다.

비둘기호 승강구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것이 '냉방'이던 때도

새마을호에는 당시 귀했던 냉방이 '아낌없이' 가동되었다. (Wikimedia Commons, CC-BY- SA 4.0)
 새마을호에는 당시 귀했던 냉방이 '아낌없이' 가동되었다. (Wikimedia Commons, CC-BY- SA 4.0)
ⓒ Thyristorchopper(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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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수단에서 가장 먼저 냉방장치가 설치된 사례는 1969년 당시 호화열차로 운행된 관광호(새마을호 전신... 편집자 주)였다. 당시 청와대에도 없었던 고급 장치인 에어컨이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선망에 올랐다. 다만 관광호의 요금은 요즘 물가로 30만~40만원(서울-부산 기준... 편집자 주)에 달하는 비싼 요금이었던지라, 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차가 아니었다.

이어 전기방식으로 냉난방을 조절할 수 있는 우등열차가 1977년 경부선과 호남선에 첫 등장해 1979년 중앙선, 전라선 등에서 운행을 시작해, 80년대 초 모든 특급열차가 냉방을 갖췄다. 하지만 완행열차에는 여전히 냉방이 없어 더운 여름마다 빠르게 달리는 열차의 승강구에 대롱대롱 매달려 피서하는 손님 탓에 곤욕을 겪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특급열차가 나타나면서 과거의 특급열차가 운임을 인하하고, 정차역을 조절하면서 특급열차가 완행열차의 자리를 대체하기에 이른다. 에어컨이 그대로 장착된 '왕년의 특급열차'가 모든 역에 다 정차하였다. 일부 관광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일환이라 할 수도 있다.

고속버스와 좌석버스에 달려나온 에어컨

당시 '안내양'(여성 승무원)이 있던 고속버스는 에어컨 하나로 존재 가치가 입증되었다.
 당시 '안내양'(여성 승무원)이 있던 고속버스는 에어컨 하나로 존재 가치가 입증되었다.
ⓒ 대한방송 (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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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최초로 냉방장치가 설치된 것은 고속버스였다. 경부고속도로 완전개통 이전부터 운행을 시작한 고속버스는 1960년대 후반 당시 외제차를 들여와 운행하는가 하면 에어컨을 장착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에어컨으로 인한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시외버스와 달리 고속버스에서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어 전세버스에서도 냉방이 되는 차량이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리무진버스가 할증대절료를 받듯 당시에는 냉방이 되는 버스에 대해 30%의 냉방비를 할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캉스를 위해 차량을 대절했는데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아 찜통 속에서 관광하는가 하면, 대절 거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단다. 결국 정부에서는 1980년 냉방 할증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냉방이 되는 시내버스가 가장 먼저 운행된 도시는 서울특별시이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 2월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동년 10월 대우자동차가 좌석버스용 첫 냉방버스를 시판했단다. 냉방버스는 그 해 연말 서울시내를 오가던 좌석버스에 처음 출고되어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입된 버스가 1988년 당시 6백여 대에 달했다.

좌석버스 냉방과 함께 1986년 좌석버스 요금을 50원 올렸는데도 출퇴근시간마다 입석을 주르륵 세워가며 운행했다. <경향신문>의 1989년 보도에 따르면 좌석버스의 이용 승객은 냉방 전에 비해 4배나 껑충 뛰었다고 할 정도로 '대박'을 쳤다. 이 대박에 놀란 부산, 광주 등 대도시들도 좌석버스에 냉방버스를 도입하였다.

서울시 시내버스 냉방 도입은 1995년부터

1995년 4월 2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된 서울특별시 '고급시내버스'
 1995년 4월 2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된 서울특별시 '고급시내버스'
ⓒ 경향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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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번 에어컨을 쐰 승객들에게는 일반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었다. 또 좌석버스와 일반버스의 외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승객들 입장에서는 '모양도 똑같은 것이 자리와 냉방기만 차이가 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신문의 독자 투고란이나 방송에서는 연일 '일반버스'를 타는 승객의 민원이 빗발쳤다.

결국 1995년 버스 요금 20원 인상과 동시에 현대자동차에서 냉방버스를 출시한다. 당시 '에어로시티'는 고급시내버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되기 시작했다. 고급시내버스는 4월 2일 삼선버스(현 서울승합)의 서울 고덕동 - 서울종합운동장 구간을 운행하던 21-2번(현 3412번) 버스에, 당해 개통한 서울 지하철 5호선과의 경쟁을 위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1996년에는 TV, 공중전화가 달린 고급좌석버스를 선보이면서 개별냉방이 되는 현재의 좌석버스가 운행되었는데, 당시 '혁신'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2004년에는 시내버스에서도 개별냉방이 되는 모델이 출시되면서, 지금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기만 해도 쉽게 자신의 자리에 오는 에어컨 바람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시내버스의 모든 차량에 냉방을 장착해야 한다는 조례가 서울특별시를 시작으로 잇달아 통과되면서 무냉방 버스에 냉방을 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버스 천장에 다는 '3단 박스 에어컨'이었다. 박스 천장에 구멍을 뚫고 에어컨을 매립하는 박스 에어컨은 일부 노선과 전경버스 등에서 냉방버스 도입 과도기에 사용되었다.

지하철 1호선 냉방 쟁취사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일의 전철 모습. 천장의 선풍기가 냉방장치의 전부였다. 당시 대한뉴스 캡쳐.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일의 전철 모습. 천장의 선풍기가 냉방장치의 전부였다. 당시 대한뉴스 캡쳐.
ⓒ 국민방송 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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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개통된 부산 지하철 1호선, 1980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 2호선과 1985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 3,4호선의 공통점은 개통 때부터 냉방장치가 장착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1974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 1호선은 냉방장치로 선풍기만이 가동되었는데, 타 노선의 개통 이후 계속 냉방 요구에 시달려왔다.

당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바라는 점을 설문조사하면, 십중팔구가 '1호선에 에어컨을 다는 것'이 가장 큰 요구점으로 꼽혔을 정도이었다. 1987년 대우정공이 만든 냉방이 가능한 1호선 열차 24량이 도입되었는데, 엄청난 1호선 편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 이용객의 불만이 더욱 가중되었다.

결국 1989년 여름까지 모든 1호선 전동차를 대상으로 냉방장치가 장착되어 1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도 찜통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지하 전철역에서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승강장이 덥다는 불만 역시 1999년 지하철역에 냉방장치와 환기장치를 설비하면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최후의 '무냉방 교통수단'은?

5대광역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무냉방버스가 여전히 자주 통행했다. 안동시에서도 2006~2007년까지 무냉방버스가 본 버스의 도색을 하고 다녔다.(CC BY 4.0)
▲ 2000년대 초 안동시의 시내버스 5대광역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무냉방버스가 여전히 자주 통행했다. 안동시에서도 2006~2007년까지 무냉방버스가 본 버스의 도색을 하고 다녔다.(CC BY 4.0)
ⓒ Wikimedia Commons-STA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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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장치 없는 버스가 2010년까지 운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 2000년까지 대우자동차가 냉방장치 없는 버스를 시판했기 때문에 일부 농어촌버스 회사에서 이를 구입하여 2010년경까지 운행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으로 예천군, 부여군 등에서 무냉방버스가 최후로 운행되었는데 부여군의 무냉방버스에는 개별냉방장치로 부채를 걸어둔 것이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무냉방열차'는 비둘기호이다. 비둘기호는 2000년 정선선을 마지막으로 퇴역할 때까지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았다. 열차 내에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 없어 전기를 많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둘기호에는 옛 교실에 달렸을법한 커다란 선풍기 몇 개가 천장에 매달려 운용했는데, 열차의 차축이 돌아가는 힘으로 선풍기가 돌아갔다고 한다.

냉방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비둘기호에는 퇴역때까지 냉방이 가동되지 않았다. 차창을 열 수 있어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비둘기호에는 퇴역때까지 냉방이 가동되지 않았다. 차창을 열 수 있어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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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버스정류소에서도 냉방이 되는 경우가 많고, 덥고 추운 전철역 승강장에 냉난방이 가능한 대합실이 마련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철에서는 어플리케이션으로 편리하게 냉난방 민원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이다. 모두 시민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대중교통수단에서의 냉방은 어찌보면 '쟁취'의 역사에 기반한다. 고급의 이용자들만을 위해 제공되었던 냉방 서비스가 어느 새 보편적으로 적용되어 이제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서도 에어컨 레버를 돌릴 정도가 되었다. 지하철에서도 다른 노선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뿔난' 이용객들의 항의가 전 노선 냉방화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감사를 표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한다면 버스의 천장 한 번 쳐다보는 것이 어떨까. 서울의 대중교통 분담률을 올려준 소중한 에어컨 덕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귀가할 수 있게 됐지만,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태그:#시내버스, #대중교통, #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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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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