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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엔진결함을 고발한 김광호 전 부장
 현대차 엔진결함을 고발한 김광호 전 부장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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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현대자동차의 12개 차종에서 발견된 제작결함 5건에 대해 강제 리콜 처분을 내렸다. 국토부는 또 차량 결함과 관련해 은폐가 있었는지를 캐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현대차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실은 김광호 현대차 전 부장의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김 전 부장은 2015년 2월부터 9월까지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하며 다룬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9월 제작결함 32건을 공개했다.

김 전 부장의 고발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가 공개한 32건 가운데 8건이 리콜 조치를 받았다. 내부고발 건수의 1/4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소비자 안전에 경종을 울렸건만, 김 전 부장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현대차는 지난 해 10월 업무상 배임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영업비밀누설) 혐의로 그를 수원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내부 정보를 유출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같은 해 11월엔 그를 해고하고, 비밀정보 공개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김 전 부장은 올해 4월 복직했지만, 다음 달에 회사를 떠났다. 이런 가운데 수원지검은 이달 14일 증거불충분으로 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지난 28일 경기도 용인의 모처에서 김 전 부장을 만나 그간의 경과, 그리고 공익제보의 필요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 자동차 업계에선 이전부터 현대·기아차 차량 엔진에 결함이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돈다.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나 상사들이 이같은 소문을 몰랐다고 보나?
"회사 내부에서도 알고 있었다고 본다. 다만, 일부 몰지각한 책임자들이 자리를 지키고자 침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이런 건 둘째 문제고, 사회 분위기가 근본 원인일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조직 내부의 문제는 안에서 해결해야지 바깥으로 가져가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말이다. 내부제보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은 게 문제다."

- 현대·기아차는 재계 서열 2위의 대기업이다. 내부고발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나?
"처음엔 조직 안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무엇보다 회사 측이 결함을 파악하면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내부 문제제기가 장기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정이라고 판단했다. 한편으로 회사가 포상을 주리라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사측은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다 이대로 덮고 가면 회사의 장기적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만약 결함을 외면하면 장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다. 폭스바겐을 보라.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 적발당해 153억 달러(한화 17조 9천억 원)의 배상금을 물지 않았나? 무형의 손해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더 크다고 본다.

사실 내부제보에 나설 때만 해도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사내 교육을 받을 때 회사의 핵심 가치는 '고객 최우선'이라고 교육 받았다. 고객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차량을 만드는 게 회사 구성원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엔진 결함은 큰 잘못이었다."

김광호 전 부장의 내부고발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공개한 32건의 결함 가운데 8건이 리콜로 이어졌다.
 김광호 전 부장의 내부고발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공개한 32건의 결함 가운데 8건이 리콜로 이어졌다.
ⓒ 김광호 전 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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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고발로 인해 힘든 일을 겪었다. 그런데 공익제보로 인정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나?
"회사 측은 엔진 결함을 언론에 알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해고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국가권익위원회(이후 권익위)를 찾아가니 언론 보도가 나가면 공익 제보자로 보호를 못 받도록 규정돼 있었다. 심지어 공영방송 보도도 공익 제보에 속하지 않았다.

언론 제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회사에서 언론 제보를 문제 삼아 불이익을 가하면 사회적 기업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허위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면 법적 조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언론 제보를 문제 삼는 건, '그래 네 말은 맞는데 왜 언론에 알렸느냐?'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직 내부에서 해결 의지가 의심스러워 언론에 알렸는데 회사가 이를 문제 삼고,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면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올바른 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동차는 다른 제품과 달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말이다."

순수성 잃으면 내부고발은 실패한다

현대차 엔진결함을 고발한 김광호 전 부장
 현대차 엔진결함을 고발한 김광호 전 부장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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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내부제보를 한데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또 다시 내부고발에 나설 생각인가?
"그렇다. 난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명의 운전자이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이다. 또 내가 몸담았던 자동차 회사가 사회에 불이익이나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당한 상황을 목격하고, 바로잡는 건 직장인이자 사회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줍고, 금연구역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제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역시 내부고발에서 시작된 일 아니었던가? 사회가 바뀌는 데 이런 역할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현대차 내부고발은 120%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불이익을 각오하고 한 일이었고, 예상대로 해고 처분을 받았다. 그러다 권익위로부터 현대차의 해고조치가 불이익 처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아 4월 복직했다. 애초에 복직까지 3년은 걸리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불과 6개월 만에 복직이 이뤄졌다. 또 제작결함을 공개한 32건 가운데 1/4인 8건이 리콜 조치로 이어졌다. 1건 인정 받기도 힘든 게 현실인데 8건에 리콜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현대차의 리콜이 범위가 적정했는지, 시기적으로 적절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 내 스스로 내부고발이 성공했다고 보는 이유이다.

물론 내부에서 자정이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그러나 자정이 이뤄지지 않는데 그저 '좋은 게 좋다' 식으로 흘러간다면 사회의 발전이 가능할까? 아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회사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힘들어도 내가 나서야 할 땐 나서야 한다. '난 나서기 싫으니 당신이 해달라'는 태도는 너무 이기적이다."

- 내부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내부고발에 나서면서 '만에 하나 사심이 개입하면 이 제보는 실패한다'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내부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순수성을 유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 증진에 필요한지 따져보고, 사실을 확보해 시작하기 바란다. 관련 법령 검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도 고발 과정에서 자동차 관리법이나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을 면밀히 따져봤다.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법 규정을 모른 채 그저 문제 있다는 식으로만 주장하면 엉터리 제보가 되기 일쑤다.

또 하나,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야 한다. 직장 동료든, 상사든, 감사실이든 계통을 어겨서는 안 된다. 문제제기 과정에서 질책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깨질 때 깨지더라도 내부에서 노력해야지 무작정 외부로 가져 나오면 조직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쪼록 공익제보가 활성화되어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고, 투명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내 사례가 여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현대차, #리콜, #김광호 전 부장, #내부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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