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의 유재명.

<비밀의 숲>의 유재명. ⓒ tvN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 마저 붕괴 된 후다 (중략).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이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 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서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괴물' 이창준 검사, 아니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러한 유서를 남겼다.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혀서까지 바꾸고 싶고 뒤엎고 싶었던 판. 그것은 검찰이 은유하는, 또 검찰이란 사정 기관이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이 한국사회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비밀의 숲>은 마지막 회에서 하나의 장르 드라마가 아닌 사회파 드라마로서의 방점을 완벽하게 찍었다. 그렇지만, 그 결말 못지않게, 아니 그 결말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15회를 보자.

'우 실장이 출국한다는 걸 알았던 사람...'

사건 관계자들의 사진들을 빠르게 훑던 황시목 검사(조승우). 2번째로 영일재(이호재)를 용의 선상에서 탈락시킨다. 그는 살해당한 영은수 검사(신혜선)의 아버지다. 앞서 이창준(유재명) 민정수석의 아내인 이연재(윤세아)의 사진은 이미 칠판에서 떨어뜨려 버린 후다. 이제 남은 이는 이창준과 그의 장인이자 한조그룹 회장 이윤범(이경영). 황시목은 재차 자문한다.

'윤 과장을 움직여서 우 실장을 쫓게 만들 사람...'

이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이창준. 단 한 장 남은 그의 사진을 비추던 카메라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망중한을 즐기는 이창준의 모습으로 옮겨 간다.

29일 방송된 tvN <비밀의 숲> 15회의 클라이맥스는 황시목이, 한여진 경사(배두나)가, 그리고 서부지검 특임팀과 용산경찰서 강력계가 1회부터 쫓던 '스폰서' 박 사장 살인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린 인물. 윤 과장(이규형)을 실행에 나서게 한 공범이 이창준이었음을 확인하고 끝을 맺었다.

황시목은 처음부터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치 검사' 이창준을 의심했다.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종착역은 결국 이창준이었다. 작가가 직조한 '큰 그림'이 처음과 끝을 연결하며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기본에 충실한, 기존 '한드'와 격이 다른

 <비밀의 숲>의 한 장면

<비밀의 숲>의 한 장면 ⓒ tvN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의 모든 (장르) 드라마는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특히나 검찰과 경찰이 등장하는 수사물이라면 피해갈 도리가 없다. 그리고 <비밀의 숲>을 본 시청자와 안 본 시청자로 나뉠 것이다.

후유증도 벌써 시작됐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조작>이나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서 <비밀의 숲>과 비교하며 후유증(?)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비밀의 숲>은 이렇게 한국 장르물, 수사드라마, 아니 '한드' 전체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소설이나 웹툰 원작도 없다.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도 아니다. 이번이 장편 데뷔작이라는 이수연 작가의 오리지널 창작물인 tvN <비밀의 숲>은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의 눈을 완벽하게 격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14화까지 4~5%대에 머무른 시청률이 아쉬울 순 있지만, 그 자체로 장르물이 가진 대중적 한계나 한국 드라마 시청자의 평균적인 감수성 혹은 감식안을 확인시켜주는 지표로 만족해도 충분할 것 같다.

오히려 <비밀의 숲>이 한국에서 좀처럼 제대로 구현되기 힘들었던 정통 '후더닛'(whodunit, 범인이 누군지에 초점을 둔 서스펜스 스릴러) 구조를 보기 좋게 완성하는 동시에 신파나 멜로 라인 등 시청률을 올릴 만한 유혹들을 물리치며 곁가지로 빠지지 않았다. 이러한 제작진의 강단이야말로 작품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바탕이자 한국드라마로서 더할 나위 없는 미덕이라 할 것이다. 그 미덕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성실한 직업드라마, 한국 사회의 정의를 묻다

 <비밀의 숲>의 한 장면

<비밀의 숲>의 한 장면 ⓒ tvN


이미 상찬이 잇따르고 있다. 대본은 흡입력 있고 쫄깃하다. 아귀가 딱딱 맞으며 무엇보다 과하지 않다. 황시목과 한여진이 사건을 추리하고 수사해 나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다채롭게 그리는 건 기본이다. 그 분량과 타이밍 역시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다.

또 황시목의 추리 상황에서 종종 등장하는 회상 장면의 역시 과함 없이 담백하다. 누구의 회상인지 그 주체가 항상 명확하다는 것도 중요하다. 작가가 이 추리게임에 있어 속임수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괜히 '한국판 <오리엔탈 특급살인>'이란 비유가 나오는 게 아니다. 황시목(과 검찰)과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전개는 시종일관 정직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러한 작가가 전시하는 장르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묘사는 드라마의 주제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TV 프로그램 앞에서 나와 대국민 약속을 한 황시목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 경찰 역시 범인을 잡는 게 '일'이다. <비밀의 숲>은 이 황시목이 열심히, 묵묵히 일하는 궤적을 쫓아가는 일종의 '직업' 드라마다. 정직함과 정의감, 그리고 인간미를 소유한 한여진 역시 한눈팔지 않고 직업적 소명에 충실한 경찰이다.

'비밀의 숲'이란 제목이 일종의 은밀하고 조직 논리에 충실한 검찰 조직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직업 드라마'로서의 성격은 캐릭터들의 배치와 함께 그 자체로 <비밀의 숲>을 사회비판드라마로 격상시킨다. '검찰 스폰서'는 결국 용산 경찰서장을 포함한 미성년자 여성의 성 상납 사건으로 발전한다. 황시목이 처음부터 의심하던 이창준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인 이윤범의 권력욕과 직접 연결된 인물이기까지 하다.

박 사장 살인 사건으로 출발한 <비밀의 숲>은 이렇게 검경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한국사회 전반의 조직 논리와 권력 관계로 능수능란하게 확장하는 한편 고장 나버린 (직업)'윤리'와 '정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이미 고장 난, 아니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던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처절한 성찰과 반성, 이를 극복하려는 작가의 비전이 전제됐기에 가능한 서사였다.

그런 점에서, 어린 시절 뇌수술로 인해 '감정'의 일부분이 제거된 황시목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심이라는 점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자기)'감정 과잉'과 인맥·혈연·지연으로 얽힌 한국사회에서 정의를, 직업적 소명을 냉철하게 완수할 수 있는 이성을 작동시킬 인물이 이 뇌의 일정 (감정) 기능이 마비된 황시목 밖에는 없다는 역설 아니겠는가.

이 황시목이란 캐릭터 자체로 <비밀의 숲>은 한국사회의 법이, 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도된 역설을 내포하는 것이다. 황시목의 반대편에 처세와 태세 전환의 달인이자 부정부패와 신분 상승 욕망의 아이콘인 서동재(이준혁)가 자리한다는 점은 그러한 역설을 명확히 확인시키는 캐릭터 배치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서동재는 극이 끝나도록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인물 아니던가.

<비밀의 숲>이 한국의 검찰에 던진 강렬한 메시지

 <비밀의 숲>의 한 장면

<비밀의 숲>의 한 장면 ⓒ tvN


"우리 검찰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사정 기관으로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부와 권력에 맞춰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범죄자를 비호했습니다. 검찰의 가장 본질적 임무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 실패의 누적물이 이창준 검 검사장이며 우리 검찰 모두가 공범입니다. 물론 제가 저희 동료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이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 집행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헌법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헌법이 있는 한 우린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 검찰, 더 이상 부정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한번 싸우겠습니다. 기소권을 더 적확한 곳에만 쓰겠습니다. 검찰의 진정한 임명권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겠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더 공정할 것이며 더 정직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이런 괴물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 검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30일 방영된 마지막 회. 다시 TV 화면 앞에선 황시목은 국민에게 이렇게 '사죄'한다. 앞서 자살한 이창준은 검찰로 대변되는 사정 기관, 한조그룹으로 상징되는 이 나라 재벌과 재계, 그 한국사회 권력층을 위해 자신이 직접 칼을 들었고, 자신의 몸을 바쳤다. 지극히 장르적인 결말이면서 캐릭터가 지닌 의의를 훼손하지 않는 퇴장이라 할 만하다.

그런 '선배' 이창준을 황시목은 '의인'이 아닌 '괴물'이라 명명했다. 그건 한국 사회에 널린 (검찰로 상징되는)'괴물'들을 근심하는 한편 황시목의 일성을 통해 그 괴물들이 반성하고 각성키를 요구하는 작가의 일성이라 할 수 있다.

원인부터 결과를 경유해 향후 대처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대단히 명시적이고 현실적인 반성과 사과를 담은. 아마도, 이 황시목의 인터뷰는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위법을 저지르고도 변변한 사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을 위한 '사과의 정석'으로 길이길이 보전해야 하지 않을까.

이수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옳은 길의 반대말은 나쁜 길, 잘못된 길이 아닌 쉬운 길"이라는 취지의 답을 한 바 있다. 이 작가의 의도처럼, 도드라진 악인이나 절대적인 선인은 이 드라마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서동재처럼 '쉬운 길'을 선택하거나 그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며 사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면서 흘러가는 대로, 서동재처럼 살기 쉬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되니까 하는 거라고. 눈 감아 주고 침묵하니까 부정을 저지르는 거라고. 누구 하나만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대면 바꿀 수 있는 거라고."

극 중 한여진의 대사처럼, 이 끊을 수 없는 부정의 연쇄에 반해 <비밀의 숲>은 끊임없이 윤리와 정의에 대해 환기시켰다. 예컨대, 황시목은 자신이, 검찰 전체가 이창준이란 '괴물'을 만든 '공범'이라 지칭했다. 이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작가는 잊지 않고 있다. '쉬운 길'로 가느냐 마느냐는 이 '공범의식'을 어느 쪽으로 발현시키느냐에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

우리는 <비밀의 숲> 같은 드라마가 더 필요하다

 tvN <비밀의 숲>

tvN <비밀의 숲> ⓒ CJ E&M


물론 완급조절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느낌의 에피소드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완급조절도 <비밀의 숲>에서는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와 단단히 결부돼 있다. 더욱이 그 어떤 '신파'도 없다. 여타 드라마들이 오늘도 주야장천 만들어내는 억지 로맨스 없다. 15화까지 단단히 극의 중심을 잃지 않은 채, '범인이 누구냐'라는 '후더닛' 구조를 임계점까지 밀어붙였다.

<비밀의 숲>에 대한 상찬이 먼저 극본에 쏠렸다면, 연기와 연출 역시 이를 뒷받침할 뿐 아니라 최상의 컨디션을 마지막 화까지 유지해냈다고 할 수 있다. 1화 추격신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끈 안길호 PD의 화면 연출은 최근 범람하는 케이블 드라마 특유의 빠른 리듬과 편집에만 집착하고 천착하지 않는다.

예컨대, 긴 대화나 설명 장면도 완급 조절이 가능한 데다 범죄 장면의 회상 역시 과함이나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무엇보다 필요한 장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한편 인물들의 감정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좋은 대본에 좋은 연출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과하지 않으면서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기존 한국 드라마들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한 마디로, 놀랍다.

이러한 대본과 연출의 시너지 효과가 바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내부자들>을 뛰어넘는 '검사' 연기를 선보인 조승우, 특유의 말맛을 살리면서도 인물의 감정에 풍부함을 더한 배두나는 물론 조연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연기자들 하나하나에 개성과 매력이 깃들어 있다.

그리하여, 한국 드라마는 이제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장르 드라마를 넘어 어떤 한국 드라마보다 기본에 충실한 가운데 품위와 야심을 제대로 승화시킨 드라마로서, 그리고 대본과 연출, 연기의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뤄낸 보기 드문 사회파 드라마로서 말이다.

이미 <비밀의 숲>의 가치를 알아본 열혈 시청자들이 시즌2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그들은, 이런 '괴물' 같은 드라마의 두 번째 시즌을 목도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이러한 품위 있게 불편한 작품이 더, 계속 필요하다.

비밀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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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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