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삼각관계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서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집 앞에서' 싸운다. 집주인은 가정을, 은행원은 실적, 경찰은 일자리를 위하여.

지난 7월 22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제2회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그중에 세계 각국 뮤지컬 및 공연예술 관련 신작 영화 쇼케이스인 '더 쇼(THE SHOW)'의 상영작으로, 2016년 제작된 <앳 유어 도어스텝>(At Your Doorstep, 원제 Cerca de tu casa)이라는 생소한 스페인 뮤지컬 영화가 포함되었다.

한국에선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보다

<앳 유어 도어스텝> 포스터 2016년 제작된 스페인의 뮤지컬 영화 <앳 유어 도어스텝>의 포스터이다. 포스터 속 여인은 주인공 소니아 역을 맡은 실비아 페레즈 크루즈로, 영화 속 노래의 작사와 작곡도 담당했다.

▲ <앳 유어 도어스텝> 포스터 2016년 제작된 스페인의 뮤지컬 영화 <앳 유어 도어스텝>의 포스터이다. 포스터 속 여인은 주인공 소니아 역을 맡은 실비아 페레즈 크루즈로, 영화 속 노래의 작사와 작곡도 담당했다. ⓒ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토요일에 미리 예매한 후, 7월 24일에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오후 7시에 상영을 하는 터라 충무아트센터 인근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처음 방문이라 신기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영화제라 그런지 카메라를 든 이들이 보였다. 휴대폰 충전서비스가 되어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대극장 안에 제법 관객들이 있었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작품성이 좋은 영화였다. 2016년에 개봉한 영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암울한 현실 고발이라 묵직하지만 훈훈한 인간미를 놓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뮤지컬 장르답게 노래와 일부 율동까지 더하여 극 중 인물들의 절절한 심정이 더욱 잘 표출되었다.

특히 소니아가 대출금 납부기한을 연기하기 위해 은행원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실패한 후, 지하철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에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녀가 승객들과 추는 군무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했다.

소니아와 승객의 지하철 군무 소니아는 은행원에게 자존심까지 버리고 대출을 연기해달라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는 지하철역에서 승객들과 노래와 춤을 추며 비참한 심정을 표출한다.

▲ 소니아와 승객의 지하철 군무 소니아는 은행원에게 자존심까지 버리고 대출을 연기해달라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는 지하철역에서 승객들과 노래와 춤을 추며 비참한 심정을 표출한다. ⓒ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영화제 주최 측의 블로그를 보니, 여주인공 '소니아' 역의 실비아 페레즈 크루즈가 극 중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다. 칸영화제, 토론토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으나, 아직 한국에서는 수입 계획이 없다고 하니 아쉬웠다. 원정관람까지 시도한 보람이 있었다. 알아보니 8월 10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시네 심포니: 장편'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금융위기가 짙게 드리워진 2007년 스페인의 가을. 시위진압 복장을 한 경찰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 굳게 닫힌 집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온다. 집 안에는 잔뜩 겁에 질린 젊은 부부 다니와 소니아, 10세 소녀 안드레아가 있다. 방망이까지 든 경찰들의 무자비한 제압에 결국 집에서 쫓겨난 세 사람. 집 담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출금 못 갚아 집에서 쫓겨난 세사람

퇴거 위기에 놓인 가족 단란한 가족이었던 다니와 소니아, 안드레아는 2007년 스페인 금융위기에 은행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담보로 잡힌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집안에서 경찰들이 오는 것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 퇴거 위기에 놓인 가족 단란한 가족이었던 다니와 소니아, 안드레아는 2007년 스페인 금융위기에 은행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담보로 잡힌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집안에서 경찰들이 오는 것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이 젊은 가족은 궁여지책으로 소니아의 부모 집으로 간다. 화재감지기를 파는 행상인 다니는 사위를 무능하다며 타박하는 장모 눈치를 보느라 아내와 애정표현도 맘대로 할 수 없다. 소니아는 부유한 독일인 부부 집의 가사도우미로, 엄마 메르세데스는 공장의 세탁부, 아버지 마틴은 주유소 직원으로 온 가족이 일하지만, 이제 은행은 소니아의 부모 집까지 넘보려 한다. 아버지가 주유소 사장의 아들이기도 한 은행원을 믿고서, 아내의 동의도 없이 딸의 집 보증을 섰던 것이 화근. 늙은 부부마저 고스란히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래도 의리로 함께 살던 노부부 가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은행원 파블로는 과거 형편이 어려울 때 부친과 함께 소니아 부모 집에서 신세를 졌었다. 소니아는 은인의 딸이자, 사랑했던 여인. 그들의 집에 차례차례 압류를 걸어야 하는 자신의 현재 처지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이 일로 아버지로부터 사람들 앞에서 따귀까지 맞는 수모도 겪었다. 사표를 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상사의 말처럼 포상금과 해외 휴가 등의 혜택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오늘도 야근하며 대출자 리스트를 작성한다.

하이메는 경찰로, 은행에 대출금을 갚지 못해 압류를 당한 집주인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지난번에 갔던 젊은 부부와 딸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 집에서 발견하여 몰래 주워온 물건 안에는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거리로 내몰린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까? 현장에 함께 나가는 동료는 자신들은 그저 위에서 시킨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며 위로하지만 괴롭다. 10대 후반인 아들은 이혼한 것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 제 친구들이 알까 봐 일부러 감추고.

이들 이외에도 서민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기꾼이 등장한다. 가련한 소니아가 털썩 주저앉는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그 전에 아내가 필요한 급전을 벌려고 자행한 다니의 꼼수를 떠올리면, 어느덧 연민의 시선으로 바뀐다. 왜냐하면, 집을 둘러싼 집주인, 은행, 경찰의 삼각관계에서 보듯이, 이 사기꾼마저도 설령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나름의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내도 가정이 파탄이 날 절박함에 직면했을지도.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비극적인 상황은 비단 2007년 스페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역시 금융위기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집을 잃었던가. 한국도 서민들의 주택마련을 돕는다며 정부에서 한참 대출을 장려하던 때가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서 19금 공포영화보다 더욱 소름이 돋는 현실이다.

19금 공포영화보다 더 소름 돋는 현실

시위하는 소니아와 시민들 소니아 가족은 그들처럼 집에서 내쫓긴 시민들과 연대하여 집을 지키고자 시위를 한다. 2008년 시작된 이 시위는 스페인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 시위하는 소니아와 시민들 소니아 가족은 그들처럼 집에서 내쫓긴 시민들과 연대하여 집을 지키고자 시위를 한다. 2008년 시작된 이 시위는 스페인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은행은 '내 집'이라는 장밋빛 거대한 미끼를 내걸며 대출의 함정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업계의 방만한 경영과 경기침체로 위기가 찾아오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서민들이 감당한다. 대출금을 갚기 어려워 집을 팔고자 하지만 이미 집값은 크게 하락한 상태. 막대한 손해를 보고 팔려고 해도 집은 팔리지도 않는다. 결국, 은행에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나온다. 은행은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실적이란 이름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남발한다. 상황이 불리하면 돈을 회수하려고 공권력까지 동원하고, "우리가 무너지면 나라도 휘청"이라 협박하며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챙긴다. 그래서 마틴이 했던 극단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양심이 있던 은행원 파블로가 '반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영화 엔딩 자막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스페인에서는 하루 170명, 총 50만 명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은행은 무려 1000억이 넘는 유로를 공적자금으로 지원받았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에 나온 아이슬란드에 한국도 침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앳 유어 도어스텝 뮤지컬 영화 스페인 금융위기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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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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