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알쓸신잡>

tvN <알쓸신잡>이 9화를 끝으로 성황리에 종영됐다. 재미있는 지식 예능이 무엇인지 잘 보여줬다. ⓒ tvN


28일, 감독 편을 마지막으로 <알쓸신잡>이 9화 만에 종영했다.

<알쓸신잡>은 여러 가지로 '지식인 예능'이라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파급력이다. 나PD 인지도와 유시민 이름값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케이블(tvN)에서 방영되는데도 7%를 돌파했다. 연예인이 아닌 석학들이 나와서 하는 인문학 예능 중에 이 정도의 시청률 파워를 보이는 예능이 어디 많을까.

그러나 <알쓸신잡>이 중요한 이유는 그 콘텐츠에 있다. <알쓸신잡>은 지식인을 지금까지와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다. 여태까지 TV에 나오는 지식인은 탈 인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 안에서 선정된 주제에 대해 발언하며 자신의 권위와 전문성을 빌려주었다. 설민석은 <무한도전>에 나와 한국사 이야기를 했고, 강형욱은 <동물농장>에 나와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무슨 지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주제가 결정됐고, 지식인은 지식을 담은 백과사전이 되어 주제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따라서 지식인의 출연은 많은 경우 '지식인'의 출연이라기보다는 '지식'의 출연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설민석의 지식'이 아니라 성별도 나이도 없는 중립적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지식은 각자의 직무 내지는 직업이었으며 그들은 자기 분야에 대한 백과사전을 하나 더 들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카메라 앞은 '예외적 장소'였고, 그 예외적 장소에서 지식인들은 '백과사전을 펼쳐서 읽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 프로그램에서 예능인으로 소비될 때도 있었지만,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는 지식과 분리되어 받아들여졌다.

지식과 지식인을 분리하지 않다

 tvN <알쓸신잡>

tvN <알쓸신잡>이 시청자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 지식을 지식인과 분리하지 않았다는 게 컸다. ⓒ tvN


그러나 <알쓸신잡>은 지식인을 일상 속에 던져놓는다.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여행을 즐긴다. 여행을 가면 누구나 그렇듯이,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풍광을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여행지마저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만큼 대표적인 관광지다. 경주, 통영, 전주, 춘천, 강릉, 순천, 공주. 어렵지 않게 그들과 비슷한 여행을 갔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여행은 일상적이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도 출연진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며, 다른 맥락 속에서 스스로 경험을 해석한다.

이러한 일상은 지식이 특수한 순간에 펼쳐보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순간 따라다니는 새로운 각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직업으로써 특정 분야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지식인은 <알쓸신잡>에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삶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결국 <알쓸신잡>의 제작진이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지식'이 아니라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다는 제작진의 의도를 제일 잘 보여주는 포맷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는 (여타 프로그램에서 지식인에게 요구하는) '전문분야'가 아니라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새로운 통찰과 지식과 결부시켜 이야기한다. 자신의 표정을 바꾸려고 노력해 온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거울 신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버지의 조간신문 냄새를 기억하는 작가 김영하는 '프루스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지식은 삶의 경험이라는 뿌리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알쓸신잡>에서 지식은 사람과 분리되지 않는다. 비로소 지식은 독립적이고 중성적인 실체가 아니라, 젠더와 나이를 가진 인간의 인식체계로 나타난다.

그래서 <알쓸신잡>의 출연진 구성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인격화된 '지식', 그리고 더 나아가 지식 소유자가 아닌 행위자로서의 지식인과 첫 대면인데, 중장년 남성의 지식밖에 만나볼 수 없다니! 아닌 게 아니라 <알쓸신잡>은 '중장년층 남성'의 경험에 뿌리를 둔 지식으로 채워진다. 신문사에서 일했던 황교익에게 '사라진 직업'의 대명사는 문선공이며, 마징가Z를 좋아했던 정재승은 마징가Z와 로봇 태권V 중 누가 더 센지에 대해 즐겁게 늘어놓는다. 춘천은 102 보충대로 기억되고, 출연진들은 과거보다 한국의 인권이 발전한 것에 자주 뿌듯함을 느낀다.

'중장년층 남성 지식'이 <알쓸신잡>에 나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여타 다른 사회적 계층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분명 아쉽다. 20, 30대는 그만큼의 권위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치더라도, 중장년 여성은 왜 <알쓸신잡>에서 배제되었는가? 왜 우리는 아침에 된장국을 끓이는 경험에서, 하이힐 디자인에 대하여,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던 기억에 대하여 '똑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까? 여성의 경험세계는 박학다식한 지식의 향연에서 보이지 않는다.

<알쓸신잡>의 한계, 시즌2에서는 극복할 수 있을까

 tvN <알쓸신잡>

'의사'를 말할 때 여자보다 남자를 먼저 떠올리듯, '지식인'이라는 말에서도 우리는 남자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알쓸신잡>의 구성이 아쉬웠다. ⓒ tvN


현실의 학문이 많은 부분 남성에 의해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김영하는 '여류작가'의 연원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종의 멸칭이에요. (중략) 그냥 뭐 여자들이 쓰는 거 있잖아, 여자들이 쓰는 그런 거, 소소한 이야기나 쓰는 사람들, (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거죠)."

여류작가뿐일까. 여성들은 아직도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지식인'의 이미지에서 배제된다. '학자'라는 단어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처음 떠올리는 사람은 몇 없다. 중장년층 여성이 모여 '똑똑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도 정교수의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으며, '아줌마'는 무식하고 속물적인 사람을 칭하는 뉘앙스로 자주 이야기된다. <알쓸신잡>은 이러한 사상 권력의 불평등을 더욱 공고화한다.

나영석 PD는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사실 여성을 '의도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하나의 집단을 처음으로 매체에 선보이는 것, 그리고 그 집단을 노출하는 유일한 매체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책임을 지닌다. 해당 매체가 수많은 사람에게 그 집단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첫인상은 그 집단의 향후 이미지를 좌우하고, 여러 편견을 고착화한다. 그 집단이 지식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알쓸신잡>을 본 시청자들에게 '지식인'의 모습은 어떻게 연상될지, '똑똑한 대화'는 어떻게 기억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tvN <알쓸신잡>

유시민과 김영하 등의 발언을 통해, tvN <알쓸신잡>은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남성의 시각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여성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말하는 건 분명 다르다. ⓒ tvN


파급력이 클수록, 의도가 아닌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제작진이라면 <알쓸신잡>이 지식인을 백과사전이 아닌 인간으로 비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다. 그렇다면 불균형한 성비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알쓸신잡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이지만 사실 그 앞에 '(중장년층 남성들의)'가 붙어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괄호를 숨겼기 때문에 마치 '중장년층 남성의 잡학사전'이 모두의 잡학사전인 것처럼 보인다. '중장년층 여성의 잡학사전'이나 '청년층의 잡학사전' 등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배제되는 것이다. 그 어떤 선언보다 은폐와 침묵이 차별적일 수 있다. <알쓸신잡>의 침묵은 중장년층 남성을 선별하여 '잡학사전'의 당사자로 임명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중장년 남성'이 '똑똑한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익숙하고 그 반대가 어색해서, 그 선언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알쓸신잡이 그러한 선언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여성의, 청년의 잡학사전을 복권하면 자연스레 괄호는 드러난다. <알쓸신잡>이 여성을 포함한 시즌 2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tvN <알쓸신잡>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즐겁게 봤던 tvN <알쓸신잡>. 시즌2에서는 출연진 구성을 더 풍성하게 꾸렸으면 좋겠다. 더 넓은 관점에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걸 보고 싶다. ⓒ tvN



알쓸신잡 유시민 김영하 황교익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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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간결함이 왜곡이 되지 않도록, 자세함이 장황함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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