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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1일 오전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신임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류석춘 혁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1일 오전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신임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류석춘 혁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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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주시니 고맙긴 한데 이건 극우화라기보다는 아예 '저질화'로 가는 것 같은데..."

맞다. 감사하다. 그래도 한국사회와 정치의 수준과 균형을 고려하자면 애석하다 못해 탄식이 새어 나온다. '보수'라 칭하기엔 그 본래 뜻이 아깝고, 극우라 칭하기에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저질화'도 좋지만 '본색을 드러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28일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쓴 말마따나 '저질화'로 가면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인데 그게 꽤나 자연스럽다. 이렇게 청년들 앞에서 "일베 많이 하시라"며 독려했다는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자유한국당의 맨얼굴을 셀프 폭로하는 중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류 위원장과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대학생과 청년들을 만나 자유한국당의 미래와 청년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혁신위와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센터가 공동 기획했고, 대학생포럼·한국당 대학생위원회 등에서 30명 가량의 청년과 대학생들이 모였다.

이날 자리에서 "청년과 여성층에서 지지가 어려워졌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만나 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밝혔다. 그런데, 류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독려'를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게 어째 위기의식의 발로나 궁여지책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발언을 좀 더 들여다보자.

'뉴라이트' 류석춘은 왜 일베를 사랑하나

"내가 아는 뉴라이트만 해도 '일베' 하나밖에 없다."

류 위원장 본인이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베'가 '뉴라이트'라 단정하는 건, 그래서 청년들에게 '일베'를 하라고 권장하는 건 일종의 코미디 아닌가. 류 위원장의 이러한 비뚤어진 시각은 "'여시'(온라인 사이트 '여성시대') 등 전부 저쪽(진보 진영) 편이다"며 "일베 하세요"라고 했다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뉴라이트'라 홍보하고 어필하는 것만 해도 부적절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류 위원장은 거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뉴라이트야말로 문재인 정부 들어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대표적인 '극우', '친일' 세력 아니던가.

또 이날 자리에서 류 위원장은 최해범 혁신위원이 "예전에는 '일베충'을 처음 들었을 때 욕인 줄 알았는데 자기들끼리 '베충이, 베충이' 하다 보니 욕의 의미가 사라졌고, 캐릭터화까지 시켰다"는 상상과 짐작에 가까운 발언을 하자 "(일베를 캐릭터화한) 그 인형 예뻐요"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러시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패륜' 사이트를 '보수'라는 혹은 '보수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적극 옹호하고 심지어 참여를 독려하고 나서는 제1야당의 혁신위원장이라니. 류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의 배경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류 위원장은 '일베충'이란 용어와 관련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선점하는 일은 당이 할 일이 아니라 정치평론가들이 할 일"이라며 일베의 표현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일베가 문제적인 것은 (재론하기에도 불쾌하지만) 결코 정치 평론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언어'나 '표현'의 문제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과거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일베와 같은 보수 세력과 보수 사이트를 적극 키운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과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미 지탄받아왔던 패륜적이고 위법적인 표현이나 행태들이 현실 정치와 영향을 주고받고, 한국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보수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극히 편협하고 몰상식하며 비정치적인 이유로 일베를 옹호해왔던 것이 류석춘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보수 정치인들 아니었던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사랑하는 (일베의) 지향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비난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던 바로 그 류석춘 본인 말이다.

"대한민국 정통성 사랑하는 일베 칭찬하자"던 류석춘의 '일베 옹호'

지난 2105년 한 보수 성향 유투브 방송에 출연한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난 2105년 한 보수 성향 유투브 방송에 출연한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유투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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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터넷 사이트 중 하나이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독특하다는 특징이 있다. 일베를 악의 근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건 이해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라고 생각한다. 일베나 오유(오늘의 유머), 축구나 야구처럼 좋아하는 게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사랑하는 일베 지향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비난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지난 2015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신분으로 보수 유투브 방송에 나와 류 위원장이 일베를 언급하며 했던 발언들이다. 특히 류 교수는 "실제 생활에서 실천되면 패륜적이라고 할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이트에서 자기들끼리 즐기는 유희용 멘트일 뿐"이라며 "그렇게 얘기하면 시비 걸 사이트가 너무 많은데 왜 일베만 가지고 유독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베를 칭찬해야 할 근거 중 하나가 인터넷 공간이 '좌편향' 돼 있다는 점이라는 것도 코미디지만, "일베를 보고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 알 수 있을 만큼 전파력이 커졌다"고 했던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시각 역시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얼마나 현실 감각이 떨어져야 사회학과 교수가 일베 게시물들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걸 파악할 수 있는 건가. 그런 류 교수가 자유한국당을 혁신한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저 '홍준표당'으로의 탈바꿈이 문제가 아니다. '극우'와 '친일'에 경도된 뉴라이트 사관의 대표 학자가 진두지휘하는 자유한국당의 혁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야말로 '일베'와 같은 멘탈과 철학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류 위원장 본인이 이를 대놓고 홍보하는 꼴이 어제의 발언들인 셈이다.

류석춘 위원장의 '일베 사랑', 당장 멈추시라

"최대한 안 나게 막아보려고 하는데 근본적으로 일베는 어떻게 좀 하면 좋겠어요. 저것은 혐오범죄 차원에서 범죄로 다뤄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여성 혐오, 사회적 약자 혐오 등 온갖 혐오 범죄의 뿌리가 있잖아요.

일베라는 사이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 정부가 수사하면 좋겠어요. 저는 일베가 갑자기 커진 것들이 대단히 의심스러워요. 예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일베 링크 걸었잖아요. 일베라는 사이트가 급성장해서 우리나라 여론지형을 왜곡시키는 데로 성장한 데에는 어떤 정치적 배경 그리고 정치공작 차원에서 개입이 있지 않았겠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겁니다."

최근 <오마이뉴스>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한 언론노조 SBS본부 윤창현 위원장은 일베에 관해 이렇게 토로했다. SBS는 최근 몇 년간 잇따른 '일베 이미지' 사용으로 사장이 공식 사과를 하며 쇄신에 나선 최대 피해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윤 위원장의 말마따나 일베라는 집단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이나라 '혐오 범죄'의 영역에서 사고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적 개입이나 정치적 배경이 이미 의심돼 왔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5년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신생 청년 보수단체들에 대한 관련 기금 지원을 적극 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현재 국정상황실 공간에서 발견된 문건 504개를 분석했더니 보수 논객 육성 프로그램 활성화와 보수단체 재정 확충 지원 대책,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과 해외 보수세력 육성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문건'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혔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가 특정 이념 확산 방안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가 '일베'와 같은 보수 성향 사이트를 지원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극우단체를 지원했던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인터넷 상에서 세를 불려가던 일베를 가만 놔뒀을 리 없지 않겠는가.

청와대 발표에서 볼 수 있듯, 일베야말로 박근혜 정부 들어 만연해진 '여성 혐오'를 비롯한 각종 혐오 문화의 주범이다. 이들을 적극 옹호하다 못해 이제 권장하고 나선 류 위원장의 행태는 류 위원장 본인이나 자유한국당의 저질화만 가속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류석춘 위원장은 지금 당장 '일베 사랑'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반성은 물론 사과에 나서야 한다. 그나저나,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제1야당의 혁신위원장이 '일베 위원장'이라니 말이다. 안타깝다.


태그:#류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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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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