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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말 하나하나에... 군대 악습,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배치 받았던 부대는 공군 전투기에 들어갈 항공 부품을 전문으로 보급하는 곳이었다. 한 주가 지날 무렵, 2015년 7월 17일 팀에 배속됐다. 업무는 들어온 부품을 검수하는 것. 하루에도 수십, 수백여 개의 부품이 들어왔고 부품의 개수는 정확한지, 외관상 하자는 없는지 살펴야 했다. 작은 링으로 들어오는 부품은 적게는 천 개, 많게는 수천 개가 들어와 일일이 세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됐다.

신병은 곧 막내였기에 필자는 배속 받은 팀에서 막내에게만 하달되는 일을 맡아 해야 했다. 다른 이가 8시에 출근하면 막내는 7시 30분에 창고로 나와 문을 열었다. 이어 불을 켜고 바닥을 빗자루와 걸레로 닦고 선임과 간부의 책상을 정리하며 화장실의 소·대변기를 닦고 간부가 마실 물을 갈아줘야했다. 또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장의 쓰레기를 정리하며 간부를 만나러 온 손님에게 커피를 응대하는 등, 일의 연속이었다.

까마득한 '막내'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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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일들은 막내라면 으레 모두 해야 할 통과 의례였다. 일이 과중한 걸 크게 개의치 않은 나로선 감당해야 할 걸로 여기고 일을 계속해나갔다. 선임들은 막내의 동태를 보고, 열심히 안 한다 싶으면 온갖 얘기를 뒤에서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일이 설령 많더라도 내뺀다던가, 무시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궂은 일이 생기면 막내가 가장 먼저 달려가 처리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맞선임이 따로 불러내 한마디씩 할 참이었다.

보통 한두 달이 지나면 후임이 들어와 '막내'를 탈출하곤 한다. 그런데 팀에 막내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다섯 달이 지나도 '막내' 소식은 없었다. '기수'가 꼬여버리고 만 것이다. 잘 풀린 기수는 한 달 만에 후임이 들어와 막내 일에서 벗어났고, 꼬인 기수는 일 년이 지나도 후임이 없어 그 기간 내내 많은 양의 업무를 오직 막내라는 이유로 해야 했다.

이것은 계급 사회의 '불합리'이기도 했다. 막내 기간이 길어지자 선임들이 안 됐다 싶었는지 몇몇 일은 가위바위보로 빼주기도 했지만, 업무의 과중함은 잘 줄지 않았다. 오죽하면 팀의 업무 중 50%를 혼자 처리 했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임무 분담제'... 팀에서도 해나가길

한 부대의 '임무 분담제'를 다룬 내용 갈무리. 생활관에서 일부나마 '임무 분담제'가 행해진다고 하지만, 정작 하루에 반절 가까이를 지내는 근무지에선 아직까진 택도 없는 소리다.
 한 부대의 '임무 분담제'를 다룬 내용 갈무리. 생활관에서 일부나마 '임무 분담제'가 행해진다고 하지만, 정작 하루에 반절 가까이를 지내는 근무지에선 아직까진 택도 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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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은 있었다. 생활관은 '임무 분담제'란 걸 했다. 예컨대, 청소 시간, 선임이라는 이유로 노는 게 아니라 각자 맡은 구역에 가서 전원이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기수가 잘 풀리고, 꼬인 걸 떠나서 누구나 고르게 일을 하는 거였다. 나 혼자만의 생활관이 아닌 만큼, 책임성을 전원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솔선수범의 정신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정책이었다.

허나 이런 방식은 정작 팀에선 통용되지 못했다. 막내 일은 여전히 많았고, 어떤 이는 후임이 안 들어와 일 년 반 동안 아침 일찍 가서 문 따고, 컵 씻고 하는 등의 숱한 일들을 감내해야 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막내를 한 두 달 만에 받은 어느 선임은 일을 간략하게 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진다던가, 아니면 컴퓨터 인트라넷에 올라온 각종 '썰'들을 보기에 바빴다. 허탈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허탈감에 짓눌릴 순 없었다. 일은 많아도 어떻게든 자기 시간은 확보해야 했다. 일이 줄지 않은 만큼, 정확성과 속도를 동시에 높이는 방법을 구사해야 했다. 결국 일을 숙달하는 게 급선무였고 그리하여 남는 시간은 책 읽거나 공부하는 데 써 일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상명하복? 안락함의 수단이 되어선 안 돼

지금도 많은 부대의 '막내'들이 말 못할 사연을 숨기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에 나서고 있을 테다. 기수를 기준으로 특정인에게 일을 과중하게 주는 건 누군가는 운에 따라 편히 지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상명하복이 중요하다고 해도, 하급 병사의 희생 위에 세워진 권위는 모래에 불과하다. 특히 전원이 단결하여 솔선수범해야 하는 군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군에게 상명하복은 위기 상황시 승리를 위한 명령과 복종이어야 하지, 자신의 안락함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이것을 혼동해선 안 될 일이다. 생활관의 '임무 분담제'가 팀에서도 통용되게끔 군의 관심이 절실한 배경이다. 그렇지 않고선 누군가의 희생 위에 누구는 편의를 누리는 봉건제와 다를 바 없는 구습이 계속될 것이다.

언제 막내를 받았냐고? 상병(공군은 입대 기준 10개월에 진급)이 된 뒤 한 달이 지나 막내를 받았다. 자대를 배치 받은 지 9개월이 넘은 뒤였다. 그렇다고 막내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후임이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막내 일을 챙겨주고 맡아해야 했다. 거의 일년이 지나서야 막내 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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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대, #공군, #막내, #상명하복,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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