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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기도 어렵고, 재밌게 살긴 더 어려운 요즘.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의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고 있는지,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앞으로 기획 <인터뷰 100>을 통해 행복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자전거문화살롱의 대표 리싼(하은혜)
 자전거문화살롱의 대표 리싼(하은혜)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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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리산에서 나고 자랐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지리산 자락에서 다녔다. 나중에 별명이 된 '리싼'도 친구들이 지리산에서 따와서 지어줬다.

고등학생이던 18살 어느 여름날, 리싼은 부산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오후까지 예정돼 있던 토요일 자율학습은 땡땡이쳤다. 부산 락 페스티벌이 너무 보고 싶어 감행한 '일탈'이었다. 그렇게 지리산에서 부산까지 150km를 내달렸다.

산에서 바다로 넘어온 지리산 소녀는, 무대가 세워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로큰롤"을 외치며 신나게 놀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뛰었다. 술 한잔 걸치고 그 옆을 지나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네 진짜 잘 논다"며 생수 몇 병을 사다 줬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그 생수를 사람들과 나눠 마셨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 같이 그 생수 한 통을 나눠 마시는데, 경계가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나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게 축제의 매력인가 싶었죠. 뭔지 모르지만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축제일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열여덟 마음에 품었던 꿈은 서른에 꽃을 피웠다.

2013년 서른 살에 리싼은 '자전거문화살롱'의 대표가 됐다. 자전거에서 요리를 하며 관객들과 여행지의 추억을 나누고(자전거식당), 폐자전거를 이용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도 한다(자전거놀이터). 자전거로 이동식 공연도 펼친다(자전거음악배달부). 본인이 대표이자 직원인 1인 예술가이다. 어느덧 자전거문화살롱은 4년 차를 맞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창업기업의 3년 생존율은 38%에 불과하다.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꽃길'만 걸은 건 아니다. 오히려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리싼은 "주머니에 단돈 만 원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불안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희망이 더 컸다.

9월, 마포석유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자전거 음악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리싼(34, 하은혜)을 24일 연남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떻게 자전거 예술가가 됐는지,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떤지 들어봤다.

25살 '통장 털어' 처음 떠난 해외여행, 인생을 바꾸다

25살, 리싼은 일본으로 떠났다.
 25살, 리싼은 일본으로 떠났다.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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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떠난 일본에서 리싼은 인생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일본 축제 광경.
 25살 떠난 일본에서 리싼은 인생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일본 축제 광경.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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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을 나와서 주변 친구들도 다 그쪽 직업을 가졌어요. 저한테도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사실 이쪽 일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공연 예술 쪽이 너무 박봉이기도 하고, 고용구조가 굉장히 불안정했거든요. 페스티벌은 단기 스태프를 많이 쓰는데 그 일을 해보니 굉장히 허하더라고요. 올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축제가 끝나서 난 나와야 하고... 이런 게 축제인가 싶었죠."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3년가량을 축제 단기 스태프로 일했던 리싼은 회의감을 느꼈다. 다 그만두고 지리산에 내려가자고 생각했다. 고향에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여행이나 가자며 통장에 남은 돈 100만 원을 탈탈 털어 도쿄로 떠났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접이식 자전거도 한 대 가져갔다. 25살, 처음으로 한 해외여행이었고, 그게 인생 계획을 바꿔놨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 골목을 돌았다. "사람들은 누가 봐도 행색이 초라한 가방 하나 멘 여행자"를 환대하고 도와줬다. 그러다 우연히 길을 잃은 신주쿠 뒷골목에서 동네 축제를 만났다. 넉살 좋게 동네 사람들과 같이 우동을 먹고 술을 마시던 그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단다. 18살 지리산 소녀가 좋아하던 축제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일본에서의 그 순간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좋은 에너지를 받고 돌아온 리싼은 고향에 가는 대신 극단에 들어갔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어 대학로를 택했다. 수험생 시절 "연극과에 가볼까" 고민했을 만큼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 법한 유명한 극단에서 2년 동안 홍보 마케팅 일을 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연극을 하고 대학로에 있는 곳이지만, 생각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동시에 "내가 브랜드가 되어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을 나왔고, 파트타임 잡을 오가는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한편으론 "직장 시스템이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든 순간순간마다 자전거는 큰 위로가 됐다.

"사회생활에 자꾸 두려움이 쌓였어요. 자신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홍대 앞에 살아도 '좋은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이런 게 안 되는 거죠. 집 안에만 있고, 만날 친구들도 없고... 갑갑하니까 안 좋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럴 때 유일하게 밖으로 나갔던 시간이 밤에 자전거 타고 한강에 가는 거였어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 있다 왔는데, 그 시간이 되게 좋았어요. 위로가 됐거든요. 자전거는 돈이 있든 없든 같이 나갈 수 있는 친구 같은 유일한 존재였어요."

자전거 한 대, 30살 인생을 통째로 바꾸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자전거 음악축제. 자전거 페달을 굴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동력을 생산한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자전거 음악축제. 자전거 페달을 굴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동력을 생산한다.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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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싼은 1년 반을 준비해 다시 캐나다로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했고, 이때에도 자전거와 함께했다. 다시 돌아온 그는 '자전거문화살롱'을 세웠다. 그의 나이 서른 살, '자전거로 먹고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자전거 음악축제에서 봤던 '이동식 무대'가 생각나 사진을 뽑아 들고 문래동 철공소를 뒤지고 다녔다. 철공소 아저씨들 얘기를 들어보니 철로 똑같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들고 싶어 용접 기술을 알아봤지만, 용접 카페에 가입하려고 보니 여자는 가입할 수 없게 막아놨다.

"화가 나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철은 하나도 안 쓰고 나무로만 할 거야!'라고 다짐했죠. 바로 목공소에 수업료를 내고 90% 나무로 만들어진 이동식 무대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무대와 자전거로 '문화살롱' 활동인 자전거음악배달부를 하고 자전거식당을 했다.

본업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초반엔 아무도 몰라줬다. 초창기엔 지원 사업을 받기엔 애매한 경력이었고 "돈을 들여서 뭔가를 계속 만들긴 해야 하는데, 수입은 그만큼 들어오지 않았다". 주머니에 현금 만 원 한 장이 없는 날도 생겼다. 불안할 법하지만, "불안한 느낌보단 더 좋은 작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해야지 그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대기업을 다녀도 불안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불안하잖아요. 울기도 많이 울고, 자존심 상해가며 부탁할 일도 많았죠. 그런데 그렇게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경험들이 층층이 쌓여서 오히려 불안이 비집고 못 들어갔던 것 같아요."

자전거식당이 열리고 있는 모습. 리싼은 자전거 안 작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관객들과 나눈다.
 자전거식당이 열리고 있는 모습. 리싼은 자전거 안 작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관객들과 나눈다.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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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을 겪으며, 다행히 '자전거문화살롱'은 4년 차를 맞이했다. 이 정도 지나고 보니 "콘텐츠가 괜찮으면 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단다. 수익적으로 큰 그림도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예술가라고 하면 "애잔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경제적으로도 안정기를 맞았다.

"가끔 저를 애잔하게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 잘 벌 거든요(웃음). 그분들은 예술 계통 친구들을 다 애잔하게 보시는 거죠. 보편적으론 그렇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여러 갈래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요. 축제 스태프 활동과 극단 생활을 하면서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배운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유니크한 부분도 있어서 이런 쪽의 시장성을 확인하고 있어요."

'통장 입출금 내역'으로 보면 "6개월 정도는 일하고 6개월 정도는 쉰다"는 그는 "수익이 정기적이진 않지만 또래보다 좀 더 버는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과 삶의 구분이 없는 예술가의 특성상 '쉬는 기간'에도 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획안을 낸다. 그는 현재 자전거 예술 활동과 강연, 기획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항간엔 "자전거문화살롱이 서부 개척 시대 버금가는 '문화 개간 전문 단체'냐"는 얘기도 들었단다. 국내 유일의 자전거 퍼포먼스 예술가인 만큼 자전거문화살롱이 '처음'인 경우가 많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첫 야외 프로젝트를 하는 팀이었고, 경기상상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모집한 파일럿 팀으로도 참가했다. 자전거문화살롱은 올해 9월 열리는 마포석유비축기지 '자전거 음악축제' 운영단체로 선정됐다. 이 역시 '문화 비축기지'가 된 뒤 여는 '첫 행사'이다. 리싼은 인터뷰 전날에도 음악축제에 참가할 해외 아티스트를 초대하기 위해 홍콩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 DNA에 '남들이 했던 거 싫어' 하는 게 있겠지만, 요즘은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걸 체감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런 공간과 사업이 있으면 앞으로도 찾아가겠죠."

"모두 다 불안하니, 치열하게 좋아하는 걸 해야죠"

자전거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
 자전거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
ⓒ 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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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싼은 올해 '자전거놀이터' 작업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전거식당' 활동을 많이 했지만, '자전거놀이터'가 갖고 있는 확장 가능성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는 오래된 자전거 부품, 바퀴, 폐타이어 등을 이용해 서울숲, 북서울 꿈의 숲 등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자전거식당은 고유한 틀이 있지만, 놀이터는 확장 범위가 넓어요. 하나하나 새롭게 만들 수 있거든요. 이런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또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울컥한 순간도 있고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해요. 나는 이걸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그걸 뒤집어서 본인들이 창작해 놀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되게 신기하고 좋아요. 이 작업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리싼은 자전거식당이나 자전거놀이터, 자전거음악배달부 등의 활동을 할 때마다 필요한 스태프들과 협력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이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1인 예술가이다 보니 사람을 모으고 스케쥴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예술 스태프 인력풀을 양성할 수 있는 플랫폼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자전거놀이터 같은 경우 '놀이터 디자이너 학교' 같은 걸 만드는 거죠. 그 안에서 인력풀을 양성해 공구 사용법과 디자인 등을 알려주고 서로 시행 착오도 공유하면 나중에 그 사람들도 '자전거놀이터'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겠죠.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는 오는 9월 열리는 마포석유비축기지 '자전거 음악축제'에서 3년간 작업했던 걸 다 모아볼 생각이다. 국내외 뮤지션 5팀이 출연하는 이 축제에서는 자전거 동력을 이용해 음악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관객들이 자전거 페달을 굴려야 마이크가 나오는 방식이다. 뮤지션들은 일일 요리사가 되어 팝업 레스토랑도 연다. 자전거를 이용한 이동식 상점들을 선보이는 '자전거 마켓'도 이날 열릴 계획이다. 내년부터 연 5회 정도 '자전거 마켓'을 해볼 생각이지만, 이게 리싼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저도 고민해본 적 있어요, 자전거식당이나 마켓 이런 게 나의 최종 목표일까. 근데 그건 그냥 하나의 매개체인 것 같아요. 제가 자전거 여행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좋은 에너지를 받은 것처럼 저도 자전거식당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자전거놀이터에서 모르는 아이들끼리 뛰어놀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을 이어주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리싼은 '오래된 자전거 한 대'로 자전거문화살롱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기적적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또래 청년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상하게 '이게 돈이 될까? 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빨리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어요. 상상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벌리고 사업으로 확장됐어요.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현재 상황과 비교하고 저울질해서인데, 그런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은 그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짜 좋아하는 일이면 그런 계산이 안 되거든요. 오지도 않을 미래의 불안함을 안고 망설일 시간에 이기적이고 치열하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몰두해야 해요."


태그:#인터뷰 100, #리싼, #자전거문화살롱, #하은혜, #청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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