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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로 일하던 안건모 님은 버스를 몰다가 신호에 걸려서 기다려야 할 적에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 본들 책을 얼마나 읽겠느냐고 여길 분이 있을 텐데, 열 권짜리 <태백산맥>을 오직 버스를 모는 동안 한 달 만에 다 읽었다고 해요.

한 달에 열 권쯤 읽기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버스가 신호에 걸리는 작은 틈을 차곡차곡 모으니 한 달 동안 열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 새로운 길을 연 셈이에요. 우리한테 틈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기보다, 책을 읽는 틈을 스스로 못 내는 하루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짧은지, 게다가 강연과 책이 다시 말해 '말'과 '글'이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해가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44쪽,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읽고)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동료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뉴라이트까지 들어가 자본에 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가들의 이간질과 이념 공세 때문이 아닌가. 노동자들이 참다 참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 공세가 얼마나 심한가. (75쪽,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읽고)

 겉그림
 겉그림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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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 안건모 님은 책읽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벼운 책읽기로 끝내지 않습니다. 버스를 몰면서 생기는 작은 틈에 책을 읽는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로 합니다. 사회에서 바라본다면 아주 작은 버스기사 한 사람입니다만, 이 땅하고 이웃을 책으로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글을 쓰기로 합니다. 작가도 지식인도 문학인도 아니지만, 버스기사로 살아가는 나날을 수수하게 적어 보기로 합니다. 책을 읽으며 넓힌 눈길을 바탕으로 이녁 삶을 이녁 손으로 고스란히 적는 글쓰기로 나아가요.

이러면서 잡지 <작은책>을 펴내는 자리로 일터를 옮겼고, <삐딱한 책읽기>(산지니 펴냄) 같은 책까지 써낼 수 있습니다.

전교조를 탄압하던 박근혜에게 김진숙은 "박근혜 씨, 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하면서 박근혜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 본 적이 있으시오?" 하면서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일갈하고 (107쪽,<소금꽃 나무>를 읽고)

그런 책 한 권을 보면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일 텐데 우리 노동자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같이 일하던 버스 운전사들을 보면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못 본다는 핑계는 나한테 먹히지 않는다. "나는 운전하면서 책 읽었어." (112쪽, <전태일>을 읽고)

책읽기를 둘러싸고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빠서 책 읽을 틈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틈이 많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터이나, 없는 틈을 내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느껴요. 요즈음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매우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요. 여행을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요. 여행을 간 곳에서 다리를 쉬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지요. 여행을 간 곳에서 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틈틈이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있고요.

저는 집에서 살림하는 틈틈이 책을 손에 쥡니다. 밥을 하다가 1분이나 10초쯤 쪽틈이 날 적에 책을 읽어요. 김치를 담그려고 풀을 쑤면서 책을 읽지요. 한 손으로는 주걱을 쥐고 한 손으로는 책을 쥡니다. 낫을 쥐고 풀을 베다가 땀을 식히느라 풀밭에 앉아서 책을 쥐어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책을 쥐고요.

 안건모 님이 일하는 곳에서 나오는 잡지 <작은책>
 안건모 님이 일하는 곳에서 나오는 잡지 <작은책>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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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체 왜 그렇게 다른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을 보유하고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 있는 핵은 무용지물이 되도록 미사일방어체제를 갖추고, 그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까지 배치하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167쪽, <맨발의 겐>을 읽고)

나리타공항을 반대했던 이들은 언론이 보도한 과격파들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왜,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고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176쪽,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고)

안건모 님은 '삐딱한 책읽기'를 말합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삐딱한' 눈길로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바쁜 틈을 쪼개어 읽는 책인 만큼, 시간을 죽이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넓히는 책을 읽자고 말해요.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인가를 꿰뚫어보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이 무엇인가를 깊이 느끼도록 알려주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애써 틈을 내고, 틈 가운데에서도 아주 작은 쪽틈을 내는데, 아무 책이나 손에 쥘 수 없어요.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일깨우는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요.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요. 스스로 새롭게 살림을 짓도록 돕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삐딱한 책읽기란 아직 평등하지 않고 평화롭지 않으며 민주하고 동떨어진 이 나라에서 평등·평화·민주를 찾아내어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나 몸짓일 수 있습니다. 평등·평화·민주하고 엇나가는 나라 흐름을 앞으로는 작은 촛불힘으로 바꾸어 내고 싶은 꿈으로 바지런히 책을 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삐딱한 책읽기>(안건모 글 / 산지니 펴냄 / 2017.6.19. / 15000원)



삐딱한 책읽기 - 안건모 서평집

안건모 지음, 산지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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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