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로 온 사장님과 마음을 맞춰 매일 전쟁을 치르듯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롭게 나의 사장님이 된 그녀는 나보다 5살 많은,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 손님들이 없을 때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녀의 살아온 생을 자연스레 듣게 된다.
 새로 온 사장님과 마음을 맞춰 매일 전쟁을 치르듯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롭게 나의 사장님이 된 그녀는 나보다 5살 많은,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 손님들이 없을 때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녀의 살아온 생을 자연스레 듣게 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전 기사] 악착 같던 알바 사장, 헤어질 때 이해하게 됐다

단체 손님 7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앗, 단체 손님이다.'

순간 긴장했다. 테이블 2개를 붙이고 주문을 받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한 남성이 또 가게로 들어온다.

"저희 20명 정도인데, 자리 있나요?"

아뿔싸. 오늘 무슨 날이긴 날이구나. '제발~ 생맥주만 시키지 말아다오' 마음 속으로 외치며 메뉴판을 들고 갔는데 다행히 병맥주를 시킨다. '휴~십년 감수했다' 여기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주방에 계신 사장님 표정은 나보다 더 넋이 나간 표정이다. 그래, 오늘은 새로 온 사장님의 두 번째 영업일이었던 게다.

"언니, 한치 반 북어포 반이요" 메뉴를 외쳤더니 갑자기 한치 한 접시, 북어포 한 접시가 만들어지고, 생맥주를 따르는 데 거품이 70%. 서로 무슨 일일까 하다가 생맥주 기계를 찍어 사장님 지인에게 보냈더니, 가스가 떨어진 거라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길 들었다. 테이블을 종종거리며 오가고, 주방에서 키위를 깎다가 주문 벨소리 나면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우리가 뭘 했나' 싶을 즈음, 손님들이 다 빠져나갔다.

"아이고, 오늘이 신고식이었나봐."
"그러게요, 초보들만 있는 걸 어찌 알고. 그래도 언니, 안주 늦다고 손님들이 화내지도 않았으니 오늘은 완전 성공적이었어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렇게 3주일 된 초보 알바생과 10여년 전 작은 프랜차이즈 술집을 운영해본 경험 밖에 없는 초보 사장의 좌충우돌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도 북어포를 그냥 구우려는 그녀에게 "언니, 마요네즈, 마요네즈", 생맥주를 그냥 따르려는 그녀에게 "언니, 가스통 열고요"라고 외친다. 나름 3주 먼저 일해보았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알바생. 초보 사장님은 그런 나의 말에 선뜻 "맞다, 내 정신. 자주 이야기해줘, 안 까먹게"라고 당부한다.

"그래도 화장실은 깨끗했어"... 그녀의 공장 생활

단체 손님 7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단체 손님 7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 flickr

관련사진보기


새로 온 사장님과 마음을 맞춰 매일 전쟁을 치루듯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롭게 나의 사장님이 된 그녀는 나보다 5살 많은,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 손님들이 없을 때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녀의 살아온 생을 자연스레 듣게 된다.

반도체 공장, 유명 맛집의 카운터 알바, 마트 화장품 매장 판매원...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잠깐 작은 술집을 운영했고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결혼하고 아들, 딸을 연년생을 낳아 키우던 중 갑작스레 남편이 하던 일이 어려워져 3년 전에 라면 제조 공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12시간 주·야 맞 교대로 일했던 공장 생활.

그녀가 이야기해준 공장 생활은 이러했다. 야간 조로 일하는 날, 새벽 3, 4시가 되면 머리가 멍해지고 자신을 포함해 동료들이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라인을 책임지는 간부들과 기사들의 폭언과 고함이 이어진다. 불량 제품이라도 생겨 고객의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그 제품의 공정 과정에 있었던 사람을 끝내 찾아냈고, 그 공정을 담당한 사람은 온갖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 그렇기에 그 공간에서 그녀들은 '사람' 아닌 그저 '기계'였다고 했다.

13시간을 공장에서 머물며 그녀들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휴식은 점심시간 1시간. 계속 라인은 돌아가기에 잠시의 휴식시간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주어지는 건 오직 화장실 가는 시간이었다. 작업복 속에 커피 봉지를 담아 화장실에 갔단다. 잠이라도 깰 참으로 커피를 마시곤 했다는 거다.

"화장실은 깨끗했어. 그래도 화장실은 화장실이었는데..."

그녀는 이 말을 하며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담당자가 알게 되면서 "화장실에서 커피 마시지 마요" 라는 말을 조회시간에 들었단다.

그녀들에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오직 화장실 가는 시간이었다. 작업복 속에 커피 봉지를 담아 화장실에 갔단다. 잠이라도 깰 참으로 커피를 마시곤 했다는 거다.
 그녀들에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오직 화장실 가는 시간이었다. 작업복 속에 커피 봉지를 담아 화장실에 갔단다. 잠이라도 깰 참으로 커피를 마시곤 했다는 거다.
ⓒ 김예지

관련사진보기


라면 면이 튀겨지는 라인은 40도가 넘는 공간. 그 라인에 청소하러 들어가면 땀에 흠뻑 젖어 나왔고, 시큼한 땀 냄새를 넘어 썩은내가 났단다. 그 라인에 투입된 이들은 두 달을 채 못 버텼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 불량이라도 나올까 싶어 밑바닥까지 몰아붙이는 남성 관리자들 사이에서 그녀들은 사소한 일에도 서로를 공격했다. 웬만한 일은 다 해보았다고 생각했던 그녀도 그 공장에서는 많이 울었다고. 주변 여성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울면서 공장 생활을 버텨냈다.

"미리야(그녀는 나를 '미리야'라고 부른다. 그렇게 친근하게 나를 부르면 그녀는 사장님이 아니라 꼭 친언니 같다.) 그 공장에서 2년을 버티면 사람들이 다 인정했어. 저 여자 정말 독하다. 생활력 하나는 믿을만 하다고.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때는 정말 매일 매일이 지옥 같았어. 둘째가 4, 5살때 감기라도 걸린 날이면 새벽 내내 시간 맞춰 해열제 먹이고, 안아서 재우고... 그런 날 출근하면 정말 죽겠는 거야.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그냥 일하는 거지. 잠깐 졸기라도 하면 나보다 나이 어린 기사들이 욕을 바가지로 하고..

그래도 나는 버텼다. 목표가 있었거든.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가게를 얻어야지. 그러면서 이 악물고 버텼어. 어제도 공장에서 일하는 00가 전화해서는 울더라. '이 년아. 독하게 맘 먹고 버텨. 그리고 돈 모아.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전화 끊는데 그 년이 너무 짠한 거야."

그녀가 말했다.

'언니, 2017년인데 정말 그래요? 오늘도 어디에선가 내 또래의 그녀들은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2017년이잖아요. 2017년...'

하고픈 말을 삼킨다. 그녀의 이야길 듣는 내내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다. 특히나 작업복에 커피 봉지를 숨겨 화장실에서 그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머릿 속에서 훤히 그려졌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조마조마했을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했다. 아마도 그 순간 나를 스치고 간 건 미안함, 죄스러움...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었을게다.

나와 그녀의 세계는 왜 이토록 떨어져 있었을까

지난 3월,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행사가 열렸다.
이날 이들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남성이 받는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여성이 받는 임금은 64수준으로 OECD 가입국 중 성별임금격차 1위이다”며 “이를 1일 근로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능력을 평가절하 당하고 싸구려 노동력 취급을 받고 있다”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잘못이라는 것이 상식인 나라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 세계 여성의날 조기퇴근 시위 벌인 여성노동자 지난 3월,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행사가 열렸다. 이날 이들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남성이 받는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여성이 받는 임금은 64수준으로 OECD 가입국 중 성별임금격차 1위이다”며 “이를 1일 근로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능력을 평가절하 당하고 싸구려 노동력 취급을 받고 있다”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잘못이라는 것이 상식인 나라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나는 여성들의 삶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올해 3월, 3.8여성의 날에도 난 동료들과 성별 임금격차 100:64인 우리 사회 현실을 꼬집는 캠페인을 하며 즐겁게 춤을 췄고, 그날 아침엔 백화점 노동자들에게 쿠키를 전해줬다. 다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연대하고 있으며, 그녀들을 위해 싸우고 있어'라는 뿌듯한 마음에 그 소식을 SNS에 전했다. 이제 주 8시간 노동은 기본 권리이고, 휴게시간 보장은 당연히 그녀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와 그녀, 그리고 이름 모를 그녀의 친구들의 세계는 왜 이다지도 먼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살고 있는 건가.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던 1908년 미국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과 2017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 곁의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다를 거라고, 나는 왜 그렇게 쉽게 확신했던 걸까.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고 부끄러웠다.

그녀는 새벽 3, 4시까지 들어올지도 모를 손님을 기다리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 그 때의 일에 비하면 지금의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 공간에서 자신은 적어도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힘들지 않다고.

"언니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괜찮아요?"라고 묻자, 그녀는 "난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런 그녀의 꿈과 소망을 듣노라면 내가 시작한 이 아르바이트에 붙인 생존이란 말이 한 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이 가게에 깃든 그녀의 꿈과 소망을, 이젠 나도 함께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에고고, 난 서빙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그렇게 쉬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그랬다고...!


태그:#호프집, #공장, #노동자, #여성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