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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길거리에서 전단지 나눠 주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서울 중랑구 중화역 출입구에서 고교 1학년 학생이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헬스장 전단지알바(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웃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전단지를 받아 주는 행인에게 하는 인사이다. 그걸 받더라도 읽어 보는 사람은 드물다. 받아서 처리하기 귀찮아 받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전단지를 받아 쥐고 알바생이 한가한 틈을 기다려 말을 걸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응해 준다. 그 태도가 너무 진지하여 뜻밖이다. 대화는커녕 대부분 받기 싫어 피해 가거나 피하지 않더라도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무표정한 얼굴로라도 받아 주기만 하면 고마운데, 자기에게 말을 걸어 주니 무척 고마운 모양이다. 그는 시급 6천500원, 하루 3시간, 주 3일 일한단다. 기껏해야 한 달이면 23만4천 원이다.

그 다음날이다. 은행 홍보용 부채 나눠 주는 대학생 또래를 만났다. 하루 9시간 점심값 포함 일당 6만 원, 한 달에 25일 일한단다. 요즘 월 150만 원 벌이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헬스장 전단지 알바생에 비하면 대단히 좋은 조건이다.

어제는 허리가 굽으신 팔순 할머니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열심히 나눠 주신다. 받아 들고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수고하시네요. 알바하세요?"
"예!"
"한 시간에 얼마나 받으시는데요?"
"우리 딸이 저기 약국 옆에 손톱 이쁘게 해 주고, 마사지도 해 주는 가게 냈어요."

알바라는 말을 모르시거나 수고하신다는 말만 들으셨나 보다. 딸이 개업한 네일아트 숍을 홍보하시느라 땀을 흘리시며 애쓰신다.

전단지 배포는 홍보하려는 업소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배포 전문업체가 있어 그곳에 의뢰해서 배포하기도 한다. 알바생이 받는 급료가 천차만별이다. 금년 최저임금인 시급 6470원부터 소위 '아주머니 알바생'은 두 시간에 2만5천 원을 받기도 한다. 아주머니 알바생이란 경험이 많아 나눠주는 실력이 뛰어난 아주머니들로 전단지업체에서는 그 분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것도 암행감독자가 있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마저 잘린단다.

평소 생각보다 전단지나 명함을 이용하는 업소가 많다. 중국집, 돈가스, 피자, 치킨 등 식당, 슈퍼마켓, 건물 분양, 의류, 인터넷가입, 대리운전, 대출, 떼인 돈 회수, 유흥업소, 마사지 등.

홍보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눠주기, 붙이기, 건물 안에 넣기, 전봇대나 벽에 붙이기 등이 있는데, 성매매광고물의 경우 길거리에 뿌린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또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위험하게 한손은 핸들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광고 명함을 뿌린다고 해야 할지 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기술자(?)도 있다. 붙이거나 투입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법이 허용된 장소 이외에 전단지를 부착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자체에 따라 액수는 다르지만 과태료를 물거나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을 수도 있다. 특히 성매매 같은 성인광고물이 그렇다. 또 아파트단지 세대 우편함에 몰래 넣다가 경비원한테 들키면 크게 꾸지람을 들을 수 있다. 들키지 않더라도 대신 경비원이 주민들로부터 불성실하게 근무했다고 꾸지람을 듣게 되니 유의해야 한다.

나는 주로 전단지를 받아 준다. 받는 이유가 있다. 돈을 누구한테서 받고 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경험해 본 일이기 때문이다. 성동구 금호동 신금호역 근처에서 초중고생을 상대하는 학원을 2009년까지 10여 년간 운영한 적이 있다. 전단지를 제작해서 신문 보급소에 의뢰했더니 학원생이 길 가 쓰레기통에 전단지 상당량을 주어 온 일을 겪은 뒤로 다시는 신문 간지 광고를 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서 투입한다. 새벽 일찍 신금호역 부근과 금남시장, 금호역을 거쳐 옥수동까지, 행당역과 행당시장, 왕십리 일대까지 매일 2~3시간 동안 전단지를 돌리고 나면 아무리 눈 덮인 엄동설한에라도 비 오듯 땀을 흘리게 된다. 열심히 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 전단지 돌리는 원장 모습을 원생이나 학부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모자를 눌러 쓰고 완전무장을 하기 때문에 더 땀을 많이 흘린다.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을 떠 올리며 열심히 운동을 겸했던 생각이 난다.

광고 명함을 만들어 전철역 출입구에서 행인들에게 나눠 줄 때 받아가는 사람보다 안받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받아서 읽어 보지도 않고 버릴지라도 그걸 받아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 그 명함을 자동차 유리에 끼워 놓기도 하고 집집마다 대문 밑에 끼워 넣기도 한다.

불법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때가 있었던 것을 고백한다. 전단지나 명함이 아닌 현수막은 좋은 자리를 물색해 두었다가 금요일 오후가 되면 원장, 강사 할 것 없이 매다는 작업을 했다가 그 다음 주 월요일 오전에 철거한다. 평일에는 달자마자 구청 '빨리처리반'(전화번호도 8272)에서 거둬 가면 제작비만 날리게 된다. 금요일 오후에 거는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 꼬박 이틀 동안 홍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청에서 그걸 알고 주말에 걷어가기도 해 청계천8가 어딘가에 가서 통사정을 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전단지를 만들어 전봇대, 게시판이나 벽 등 반반한 곳이면 어디에나 갖다 붙인다. '오징어다리'라는 게 있다. 전단지 아랫부분에 세로로 8~10개 정도의 전화번호를 넣어 인쇄한 뒤 칼질을 해서 전봇대 등에 붙여놓는다. 필요한 사람은 그 전화번호 부분만 떼어 가도록 하는 것인데 생김새가 꼭 오징어다리를 연상케 한다고 붙여진 그 세계 사람들만 아는 이름이다.

지방의회 의원에 출마한 후배 명함을 돌려 보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지인 명함도 돌려 보았다. 역지사지라 했던가. 내가 겪어 보았기 때문에 전단지 알바생 입장이 되어 본다. 전에는 전단지를 안 받은 때도 더러 있었는데 이제 모두 받아야겠다.ㅎㅎ

전단지 주는 사람 때문에 길 가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받아서 버릴 곳도 마땅치 않지만 그래도 받자. 자기에게 유용한 정보라면 더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을 받아 주면 주는 사람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알바를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 사람에게, 그 젊은이에게 힘을 북돋아 주자!


태그:#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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