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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국정원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가장 나쁜 선례’였다.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만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그 9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적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국정원 개혁을 얘기할 수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국정원개혁발전위(13개)과 국정원감시네트워크(15개)가 선정한 국정원 적폐사건 목록 가운데 총 9개를 추려서 ‘어떤 사건’인지, ‘무엇’을 재조사해야 하는지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말]
퇴임하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의혹'으로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검찰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채동욱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검찰 직원들로부터 환송을 받으며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채 총장은 "최고의 가장은 아니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신의 혼외아들 의혹이 거짓임을 거듭 강조했다.
▲ 퇴임하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의혹'으로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검찰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채동욱 검찰총장이 2013년 9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검찰 직원들로부터 환송을 받으며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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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국정원 댓글사건' 논란은 '박근혜 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임기 첫 해(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의 진상 규명을 놓고 서울광장에서 수만 명의 촛불시위가 이어질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사건이었다. 특히 국정원 댓글사건의 최종 수사책임자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 13일 전격 사퇴할 정도로 국정원 댓글사건의 처벌 방향을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은 격렬하게 진행됐다.

'국정원 댓글'도 큰 사건이었지만, 채 총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사건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에 대한 박근혜 권력의 의중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채동욱 뒷조사사건의 발단은 사퇴 1주일 전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 기사였지만, 진짜 뿌리가 국정원 댓글사건이었음이 머지않아 드러났다.

'원세훈 구속' 방침 보고에 청와대 "채동욱이 검찰 통제 못해"

 채동욱 사건의 핵심인물관계도
 채동욱 사건의 핵심인물관계도
ⓒ 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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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윤석열 수사팀은 그해 6월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식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8대 대선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닷새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처벌하려는 수사팀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윤석열팀이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대선에 개입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보고한 5월 23일 이후부터는 청와대 주변에서 "박근혜 정부의 임명장을 받은 검찰총장이 조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6월 11일에는 "원세훈의 선거 개입이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장관이 (선거법 적용을 하지말라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윤석열 팀장의 폭로가 터져 나왔다. 발언 당사자와 검찰 수뇌부 모두 "발언 취지가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이 상황에서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황교안 장관의 '외압'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여론은 '원세훈 선거법 기소'로 흘러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가 나온다는 것은 곧 박근혜 정부가 권력의 불법적인 개입으로 선거에 이겼다는 의미가 된다. 검찰 기소를 막지 못한 것에 청와대와 법무부 모두 난감해졌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남은 것은 재판 그리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검찰 수장의 '처리'였다. 권력 핵심부의 뜻을 거슬러 원세훈으로부터 유죄를 받아내려는 윤석열팀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라도 외압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 채동욱 총장의 퇴진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많은 이들이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 보도에 "왜 하필 지금..."이라고 느낀 이유였다. 채 총장은 처음에는 부인하고 진위 공방을 벌이다가 법무부의 감찰 지시가 떨어지자 결국 사표를 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조선일보>의 첫 보도 경위에 관심이 쏠렸다. 고위공직자의 사생활은 민사소송으로 비화되거나 가족사를 잘 아는 취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사로 쓰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조선> 혼외자 보도 석달 전, 청와대-국정원 채동욱 혼외자 정보 수집

검찰 수사 결과, <조선일보> 기사가 나오기 석 달 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채동욱 혼외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의 장본인은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전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 송주원 국정원 서초구 정보관(아래 호칭 생략).

'채동욱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1심과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조이제 국장은 6월 11일 오후 송주원(국정원) 정보관과 조오영(청와대) 행정관에게 각각 채동욱 총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초등학생의 개인정보를 확인해줬다.

송주원 정보관은 이미 6월 7일 오후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유아무개 교육장에게 모 초등학교 5학년 채군의 개인정보 조회를 요청한 상태였다.

유 교육장의 부탁을 받은 해당학교 교장은 6월 10일 오전 채군을 교장실로 불러 아버지가 집에 자주 오는지, 신상카드에 적힌 대로 아버지 직업이 과학자가 맞는지 등을 캐물은 뒤 면담 결과를 유 교육장에게 알려줬다.

유 교육장은 송주원 정보관에게 "채군의 아버지가 과학자라고 하고 이름은 검찰총장과 같은데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다"고 알려줬다. 교장은 하교 무렵 채군을 교장실로 다시 불러 "내가 아빠에 대해 물어본 것을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채군은 어머니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알려줬다.

송주원 정보관은 유 교육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음날 조이제 전 국장에게 '확인' 작업을 의뢰고, 조 전 국장은 행정지원국 산하의 OK민원센터 가족관계등록팀장을 시켜 채군이 혼외자임을 재확인했다.

서초구청 간부가 국정원·청와대 '불법' 요구에 선선히 응한 이유

서초구청 간부였던 조이제 국장은 같은 날(6월 11일) 오후 같은 정보를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조오영 행정관에게도 넘겼다. 청와대 시설을 주로 관리하는 총무비서관실 직원이 검찰총장 뒷조사를 한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됐지만, 그는 행안부 국장이나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등을 배후로 지목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무관함이 드러나며 조오영이 '진짜 배후'를 감출 시간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조이제 서초구 국장 영장실질심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서 초등학생 채모군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1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조이제 서초구 국장 영장실질심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서 초등학생 채모군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2013년 12월 1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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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사건에서 서초구청 간부 조이제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은 "국정원이 요구하면 공무원들은 불법이라도 정보 수집에 협력하느냐?"고 의아해했다. 일부는 세 사람의 고향(송주원-대구, 조오영-안동, 조이제-포항)을 들어 이들의 관계를 '지연'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이제 전 국장의 경력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관계였다. <오마이뉴스>가 재판에 넘겨진 세 사람의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조이제 국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을 옮겨 다닐 때마다 그의 '수족' 역할을 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서울시 기획관리실장을 맡았을 때 산하 조직담당관실 사무관으로, 행정1부시장일 때는 비서관, 행정안전부 장관일 때는 비서관, 국정원장 시절에 비서실 의전관으로 각각 근무했다.

조이제 전 국장은 그해 5월 3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장 시절 횡령 혐의와 관련해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상태였다. 자신의 과거 상관을 수사하는 검찰 조직의 수장과 관련된 개인정보를 국정원에 전달하는 것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인지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이제 전 국장이 청와대와 국정원 직원들의 '채동욱 혼외자' 관련 정보 요구에 적극 협력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1심 재판부는 "송주원은 조이제가 서초구청에 근무하는 유일한 국정원 출신 직원으로, 원세훈의 최측근임을 알고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서초지역 기관장협의회에서 항상 바로 옆자리에 앉는 등 평소 안면이 있었다"며 "이런 사정에 비추어 송주원으로서도 조이제를 통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자연스럽게 부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정원 직원의 황당 해명 "식당 화장실에서 혼외자 정보 들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의 배후를 캐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점이다.

송주원 정보관은 검찰 수사 단계부터 '채동욱 혼외자' 정보의 단서를 얻은 경위에 대해 전혀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2013년 6월 초순경 서울 양재동 또는 서초동의 식당 화장실에서 신원 미상의 사람들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가 모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라고 말을 듣고 국정원 직원으로서 이런 소문은 국가안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진위 확인을 위해 채군의 개인정보를 교육지원청과 서초구청에 요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법원 판사도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세훈의 선거법 혐의 적용을 놓고 국정원과 검찰의 갈등이 연일 보도되는 상황에서 송주원이 식당 화장실에서 '채동욱 혼외자' 소문을 들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매우 절묘하다. 성명 미상의 인물들이 국정원 직원도 모르는 혼외자 이름, 다니던 학교와 학년 정보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예민한 정보를 확인하고도 송주원이 "그 결과를 국정원 상부에 보고하거나 검찰·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고 한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었다. 오히려 원세훈의 처벌을 놓고 국정원과 검찰이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송주원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검찰 수장에게 타격을 줄 만한 임무를 수행중이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채동욱 뒷조사사건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6월 11일 국정원 직원에게 흘러들어간 '채동욱 혼외자' 정보와 9월 6일 <조선일보> 보도의 관련성이다.

 2013년 9월 6일 <조선일보> 1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을 처음 보도했다.
 2013년 9월 6일 <조선일보> 1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을 처음 보도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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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영 전 행정관 외에도 6월 하순경 당시 채동욱 전 총장의 처를 자칭하는 여성과 관련된 비리 첩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가 경찰과 민정·교육문화·고용복지수석실을 통해 관련자 인적사항을 확인한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조선일보>의 침묵 또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을 사퇴로 몰고 간 보도의 진원지가 권력기관이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2016년 1월 7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 재판부는 송주원·조오영·조이제 3인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 각각 유죄(벌금형)를 선고했다. 앞서 2014년 11월 17일 서울지법 재판부는 조이제 전 국장과 송주원 정보관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서울고법이 이들의 형량을 벌금형으로 깎아준 이유가 특이했다.

"피고 송주원의 범행이 비록 비난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결국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검증하는 등의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모종의 음모에 따라 국정원의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졌을 것임이 능히 짐작되는데, 위와 같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아동의 개인정보 조회 및 수집을 지시한 국정원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이에 대한 책임을 이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송주원 개인에게만 모두 돌리는 것은 처벌의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

법원은 범행의 '진짜 몸통'을 놔두고 하수인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것이 사건의 배후를 캐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 집중분석- 국정원 9대 적폐사건 특별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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