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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용 캐리어에 잔뜩 실어 온 책들
 여행용 캐리어에 잔뜩 실어 온 책들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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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주유소

B형에게 빌린 구형 세단의 뒷좌석엔 평소 보고 싶었던, 그러나 안 읽었던 책 서른 권이 실려 있었다. 버너, 그라운드 매트, 침낭, 신발 두 켤레, 슬리퍼, 갖가지 옷들 등도 실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저 사람 이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에서 가져온 짐들로 가득했다.

전날 춘천에서 S형을 만났다. 러시아를 같이 다녀왔던 그의 집에서 지난날 실패한 사업에 대해 결자해지를 할 겸. 사실상 정.리.가 목적이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회상과 앞으로 각자의 삶에 대한 응원으로 마무리를 마쳤다. 실컷 술을 퍼마셨지만 아주 일찍 일어났다. 편지 한 통을 그의 집에 놔두고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S형에게

어찌 지나간 일이라고 쉽게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자신 있게 호언장담을 했던 터라 반드시 일의 성공을 기원하며 형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에 다녀왔지만, 결국 스스로의 덫에 빠져 유리창 깨지듯 깨져버렸습니다.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드릴 말밖에 없습니다. 그깟 작은 희망이 결국 아무런 결실도 보지도 못한 오호츠크해의 바람에 떠밀리듯 결국 우리는 표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형님과 형수님 모두 저에게 잘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말뿐인 것처럼, 저 또한 나중에 은혜를 갚겠다는 둥 어떤 식으로든지 보상을 해드리겠다는 말을 쉽게는 할 수 있지만, 어젯밤 저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모르겠고, 앞으로 형님의 인생에 번영과 사랑만이 충만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훗날 좋은 기류에 타 기분 좋게 형님을 초대해서 다시 한번 멍청한 상상을 안줏거리로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부풀릴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히 계세요. 저는 떠납니다.

이제 미시령 터널만 지나면 속초가 나오고 그곳에서 좌회전을 하면 고성이 나온다.

나의 목적지는 애당초 고성이었다. 고성이 목적지인 이유는 따로 없었으나 사람이 없는 어느 경치 좋은 곳에 박혀서 주야장천 책만 읽으려 할 목적이었다. 동네에서 어기적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동네가 나타나면 민박집에서 최소 며칠에서 최대 한 달까지 하숙을 할 대략적인 계획만 있었고, 자세한 건 색만 칠하면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 따위는 없었다.

미시령 터널을 지나기 10여km 전, 가스를 채우러 어느 주유소에 들렀다.

"가득 채워주세요."

"네. 근데 손님 기름칸 좀 열어주세요."

"잠시만요. 어디더라…."

차를 빌렸을 때 가스 버튼이 무엇인지 등 차에 대한 대략적인 질문을 안 물어봤기 때문에
이것저것 누르다가 트렁크 버튼을 누르는 등 허둥대고 있었다.

"손님, 이거 손님 차 아니에요? 여기 있잖아요."

넉살 좋아 보이는 주유원 아저씨는 어딜 가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목적지가 고성이라는 얘기를 했다. 가스를 채워 넣는 중 주유원 아저씨는 차를 살펴보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 이쪽으로 이사 가시나요? 짐이 엄청나게 많네요."

"아 그건 아니고요. 머리 아파서 바람 쐬러 갑니다. 아마 고성 갈 것 같아요."

"보아하니 고민이 많으신가 보네요. 잘 오셨습니다. 이곳은 머리 식히기 참 좋은 곳이에요. 이왕 고성으로 가실 거면 미시령 터널로 가지 마시고 미시령 옛길이라는 곳을 통해 가세요. 경치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곳 강원도에는 크고 작은 사찰이 많으니깐 암자 가서 며칠 푹 쉬시다 가셔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손님."

'오지랖이 넓은 아저씨네'라며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 아저씨가 나에게 조언해준 미시령 옛길과 사찰 암자에 대한 이야기를 정확히 머릿속에 되새기며 미시령 옛길을 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며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며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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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전투는 끝났다. 나는 패잔병이 되었다.'

크게 돈을 벌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제대 후 3년 동안 시도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실패에서 잠깐 벗어나 새로운 땅에서 기운이라도 바꿔볼 심사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조그마한 아지트를 시작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삶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들은 역시나 매정한 해륙풍에 의해 이렇도록 쉽게 좌절되었다.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이 좌.절.되.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와 사건이 있었지만 인제 와서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세상만사 모든 일은 작은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 스스로 패배감과 좌절감에 크게 사로잡혀 그 지옥 같은 서울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기 창문을 깨부수고 동해에 투신하고 싶을 정도로 나의 몸과 마음은 검게 타들었다.

 2017년 5월 9일 광화문 광장에서
 2017년 5월 9일 광화문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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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서울 광화문

대통령이 바뀌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 서있는 이 광화문광장은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에 대한 희망찬 꿈, 부푼 기대와 터질 것 같은 함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그곳에 서 있었다.

광화문 뒤편으로 살짝 삐져나온 청와대의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다시 시선을 뒤로 돌려 기쁨과 승리의 환희로 가득 찬 얼굴로 서로를 끌어안는 사람들과 춤을 추는 사람들의 기쁜 얼굴을 보았다.

내가 뽑은 사람이 처음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새 시대에 대한 부푼 꿈이 오히려 화살로 되돌아와 나의 기대를 크게 저버릴까 하는 공포.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사람들과 달리 허무와 공허의 느낌이 내 속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도망치듯 광화문을 빠져 나왔다.

2017년 5월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나에게 있어 연남동이라는 공간은 여려가지 의미를 가진 곳이다. 전역 후 지금까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을 정도로.

변화에 의한 진통을 넘어 마치 똑같은 쌍둥이들만으로 이루어진 공장과 같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느리게' '적당히' '예쁘게' '예술가' '힙' '핫 플레이스'

처음 이 동네는 대만 화교가 자리 잡고 백반집이나 해장국집으로 유명했다. 이후 천문학적 금액인 홍대의 임대료로부터 벗어난 가난한 예술가들, 혹은 실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자영업자들이 몰렸다.

'연트럴 파크'라는 별명의 '경의선 숲길'을 중심으로 옛날 슈퍼, 주먹고깃집 등의 기존의 터줏대감들이 밀려나면서 지극히 트렌디하고 '경리단길'스러운 곳곳의 술집, 카페, 음식점 등이 유입됐다.

집집 골목이 다 허물어지면서 옛 다세대 주택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회색 벽의 노란 무드 조명 그리고 핑크색의 LED 간판으로 재탄생됨으로써 지극히 공장 형태의 동네가 되어 모든 것들이 식상해지고 물려지고 지긋지긋해진 동네로 바뀌었다.

집 앞 골목은 관광지로 변했으며 밤에는 사람들의 주정으로 오염되어가고 낭만을 표방한 뻔함과 뻔뻔함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얼마 가지 못해 떠밀려 나갔으며 사라져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나는 무인도에 표류한 난파된 배처럼 우두커니 조난을 기다리고 있었다.

1년, 2년, 3년이 지나자 나의 공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모해갔으며 공기마저 핑크빛 네온사인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 살기 좋은 연남동에서 미친 듯이 탈출하고 싶었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술 한 잔 얻어먹어가며 위로 따위를 듣는 것이 더 싫었다. 때때론 그런 위로들이 나를 더욱더 괴롭게 만들었다.

텅 비워진 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두커니 침대에 찌그러져 하릴없이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음했다. SNS 속 사람들은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전혀 나랑 관계없는 인간들로 인해 박탈감과 패배감 그리고 자괴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 충동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목구멍까지 가득 채워 뿜어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 내용물은 무엇인지는 나도 뭐라 설명할 수가 없으나 온갖 세상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있을 거리라 충분히 생각된다.

그런데 문뜩 예전처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닌 '여행'이 하고 싶었으며, 더불어 하나의 '아이템'을 채워나가고 싶었다.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지? 돈? 안정된 직업? 사업? 외제차? 한강 보이는 아파트? 식스팩 복근? 비싼 시계와 향수? 이상형의 여인?

하나씩 다 가지는 상상을 해봤으나 과연 행복할까? 당장은 편리하고 즐겁겠지만 쉽게 질릴 것 같았다.

그럼 다시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무얼 먼저 채워놓고 싶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 써버린 휴지처럼 구겨져 버린 내 자존감이었다.

삶에서 갖고 싶은 것, 보여 주고 싶은 것, 자랑하고 싶은 것 따위를 소망하고 갈망하였으나
제대로 손에 집어 본 적도 혹은 실행조차도 하지 못하고 떠들다가 끝났다.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을 쳤다.

그럼 자존감을 채우는 게 무엇일까? 자존감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자존감이라는 것은 주머니에 있거나 혹은 손에 쥐어진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이 채워져 있든 비어있든 간에 '자존감'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정신적인 측면을 가장 쉽게 채워질 수 있는 것은 폭풍 속에서 뿌리째 뽑혀나가지 않는 단단한 나무와 같은 '개인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디 명상원이나 혹은 절간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또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백날 주고받는다고 자존감 혹은 개인 철학이 생겨날 리는 만무했다.

2016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지적 허세를 보여주려고 실제로 읽지도 않았던 책들을 SNS에 올렸었다
▲ 2016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지적 허세를 보여주려고 실제로 읽지도 않았던 책들을 SNS에 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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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머릿속에서 '책'이라는 단어가 지나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살면서 독서라는 것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몇십 권, 몇백 권의 책을 읽었을 수도 있었으나, 입시를 위한 다이제스트식의 독서와 머리가 커지고 나서 여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 여러 작가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작품 제목 그리고 내용을 정리한 위키트리 같은 것들만 채워 넣었다. 온전한 의미의, 내 마음속을 채워 놓은 독서를 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 자랑 따위를 하기 위해 실제로 보지는 않았지만 떠들어 댔던 책들, 읽고 싶었지만 읽지 않았던 책들 위주로 골랐으며 이왕에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고전 위주로의 책을 골랐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 <데미안>, <입속의 검은 잎>, <싯다르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논어>, <육사시집>, <불안>, <미움받을 용기>, <그리스인 조르바>, <라면을 끓이며>, <주름>, <어둠의 저편>, <사피엔스>, <잠>, <젊은 날의 초상>, <무소유>, <1984>, <외 등>, <섬>, <무진기행>, <카탈로니아 찬가>, <호밀밭의 파수꾼>,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설국>, <베째르부르크 이야기>, <파리대왕>, <그 후>, <마음>, <신곡>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의 허위와 구라의 여행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하자고, 머리에 포마드를 떡칠하고 미간에 힘을 주며 센 '척' 따위를 하는 그러한 짓거리들을 하지 않기로, 아니 자제하자고 다짐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스스로 '셀프 유배'라고 지칭했다. SNS를 끊음으로써 의미 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고, 쓸데없는 검색질로 정보의 바다를 헤매는 에너지를 감소하고, 자칫 관음으로까지 이어졌던 상대적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남의 사생활을 보지 않음으로써 오로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것이라는 다짐. 지옥 같은 젊은 날의 한철에서 상처받은 내 몸과 마음에게 치열한 독서로 완전한 휴식을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관종의 예(본인) 보여주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극단적인 예. 본인인 필자가 봐도 부끄럽다.
▲ 관종의 예(본인) 보여주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극단적인 예. 본인인 필자가 봐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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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유배의 목표

- 개인주의를 떠나 이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삶을 연습할 것
- 좀 더 담백하고 구수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
-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인간이 되지 말 것
- 의미 없는 인터넷질로 인한 필요 없는 정보를 접하지 말 것
- SNS를 삭제해 세상의 '똥'들과 벽을 칠 것
- 발악할 것
- 많이 걸을 것
- 사색할 것
- 조금만 먹을 것
- 술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 진실로 자유로워질 것
- 척하지 않을 것
-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것

마지막으로
-치열하게 책을 읽을 것

그렇게 떠났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anti1960s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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