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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 김지하 시, 김민기 곡 '금관의 예수' 중에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70년대 민주화운동을 세 글자로 요약한다면, '김지하'라고 말한 바 있다. 그 김지하가 쓰고,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작곡했다. 이렇게 거장의 손을 거쳐 탄생한 '금관의 예수'는 암울한 독재 시절, 가톨릭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어 불렸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원주다. 동명의 김지하 연극을 원주 가톨릭회관에서 초연했는데, 그때 연극을 위해 이 곡이 만들어졌다. 김지하와 김민기는 70년대 당시 원주에 머물러 있었다. 둘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고향도 전라도인데 왜 강원도 원주에 온 것일까?

바로 지학순 주교와 '원주 예수'로 불렸던 장일순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원주 가톨릭교단과 그 중심에 원동주교좌성당이 있었다.

1974년, 원동성당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 지학순정의평화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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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민주 헌정 회복하라"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민주 헌정 회복하라"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 지학순정의평화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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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
 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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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가 원주교구 원동성당에 부임한 이래, 원주 가톨릭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내적으로는 가톨릭센터와 원주문화방송을 설립해 지역의 문화운동을 활성화했고, 외적으로는 원주와 가톨릭이 민주화운동의 중심으로 서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들어서, 지학순 주교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가톨릭 노동청년회, 여성연합회, 정의평회위원회를 이끌며 인권운동,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71년 원동성당에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열어, 교단 차원의 사회 규탄을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은 박정희정권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지학순 주교가 지속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부당성을 비판하기에 이르자, 중앙정보부는 지학순 주교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공항에서 체포했다.

석방된 지학순 주교가 곧바로 74년 7월 23일, 원동성당에서 내외신 기자를 불러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니, 바로 '원주선언'이다. 이에 정부는 지학순 주교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하고, 10월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엮어 지학순 주교를 투옥시켰다.  

이에 가톨릭 교단 차원에서 사제 300여 명이 원주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지학순 주교 석방을 요구했는데, 이는 당시 한국 가톨릭 사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이었다. 이때 모인 사제들을 중심으로 그 해 9월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된다.

이후로도 원동성당은 정권에 탄압받는 민주인사들의 은신처로 역할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 미사를 비롯해 박종철 추모 미사, 인권회복 고문반대 미사 등이 원동성당에 거행되기도 했다.

2017년, 원동성당

 원동성당 역사기념실에 게시된 원동성당의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의 역사.
 원동성당 역사기념실에 게시된 원동성당의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의 역사.
ⓒ 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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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는 원동성당. 과거 이곳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 미사, 박종철 추모 미사, 인권회복 고문반대 미사가 열렸다.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는 원동성당. 과거 이곳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 미사, 박종철 추모 미사, 인권회복 고문반대 미사가 열렸다.
ⓒ 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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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과 신자들이 마당에 모여 수박과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과 신자들이 마당에 모여 수박과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 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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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70년대 지학순 주교와 원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원동성당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그때의 정신과 활동이 이어져오고 있을까. 궁금했다.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우리는 일요일 미사 시간에 맞춰 원동성당에 도착했다. 30분 일찍 도착한 우리는 성당 내의 역사기념실을 둘러보았다. 70년대 활발했던 원동성당과 지학순 주교의 사회운동이 연보와 사진들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원동성당의 역사를 모르는 이도 한눈에 성당의 역사를 파악이 가능했다.

성당 입구에는 가톨릭농민회의 쌀을 판매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가톨릭농민회는 과거에는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에 앞장섰고 지금은 유기농, 친환경운동에 매진하는 단체다. 성당 건물 게시판에는 세월호와 인문학을 주제로 한 강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원주가톨릭이 주관하는 행사였다.

미사 시간이 다가오자 신자들이 하나 둘 성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원동성당은 미사도 조금 달랐다. 신부님이 가톨릭농민회에 대해서 홍보를 했다. 농민회의 쌀을 구입하는 것이, 친환경 생명 운동을 돕는 길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신부님의 '센스있는' 설교에 신자들의 웃음이 넘쳤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성당 마당에 모여서 다함께 수박을 비롯한 다과를 먹었다. 그 때 신부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지학순 주교와 원동성당의 역사를 알고자 서울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반갑게 맞아주셨다.

원동성당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관련된 자료가 제천 배론성지에 많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세월호 참사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원주가톨릭 주최로 원주 시내에서 세월호 미사가 매주 이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톨릭농민회와 세월호, 친환경 생명운동과 진상규명운동. 2017년 원동성당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1974년의 원동성당과 2017년의 원동성당은 정신으로, 또 활동으로 잇대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한 민주화운동 대학생 탐방에 선정돼, 친구들과 함께 2박3일간 민주화운동 관련 현장을 탐방했습니다. 그중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철학과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보다 나은 삶과 더 정의로운 나라를 꿈꿉니다. 녹색당ㆍ이재명캠프에서 일했습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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