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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홍산면 사)저산팔읍상무사 보존회에서는 지난 22일 홍산 장날, 주민과 상인이 함께 하는 '보부상 찾아가는 문화 행사'를 열었다. 저산팔읍상무사 보존회 회원들의 장터 길놀이, 비나리, 풍물놀이, 보부상 장타령, 판굿 등의 볼거리와 홍산면 부녀회원들의 잔치국수와 다과 제공으로 넉넉한 장터 인심을 선보였다.

홍산 보부상 회원들이 홍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저산팔읍 상무사 보부상 홍산 보부상 회원들이 홍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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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산팔읍 보부상들은 1년에 한 번씩 고인이 된 보부상들의 제사와 보부상 우두머리를 선출하는 공문제를 지내고 '신차 영감 연락 잔치'라는 이름으로 잔치를 열었다. 1박 2일 간 계속되었던 공문제 동안 주민들에게는 국수와 떡, 술 등을 제공하고 함께 여흥을 즐겼다.

교회 역사 112년이 된 홍산 중앙 교회 당회록에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보부상 연락 잔치에 구경을 갔던 교인을 징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보부상 연락 잔치는 지역의 관심을 끌었다.

보부상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공문제와 유흥 잔치는 그들의 자긍심을 걸고 지켜온 행사였다. 보부상들의 실세인 장무원을 새로 선출하는 날이기도 했고 등짐과 봇짐을 메고 저산팔읍(홍산, 부여, 은산, 임천,정산, 한산, 비인, 남포)장날을 찾아다니던 길 위의 인생들인 그들의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는 날이기도 했다. 저산팔읍의 보부상들은 물론 홍산 인근의 장돌뱅이들과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기도 하고 보부상들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다.

홍산의 파워 블로거인 꼬마 사진가들의 취재 경쟁이 치열하다.
▲ 홍산 보부상 거리 행진 홍산의 파워 블로거인 꼬마 사진가들의 취재 경쟁이 치열하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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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부상 공문제와 영감잔치는 다른 지역보다 홍산면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명맥이 유지되었다. 부여군 홍산면이 3개 군(부여, 서천, 보령)과 8개 면(홍산, 내산, 남면, 충화, 옥산, 마산, 보령, 미산)을 아우르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했던 지리적인 장점도 있었지만 홍산 보부상들의 조직력이 탄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홍산 일대의 보부상들은 모시 유통으로 다져놓은 경제적 기반이 있었고 보부상의 정신과 조직력을 계승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던 인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도의원을 지냈고 홍산 장날이면 올바른 상거래 질서를 외치며 장터에서 연설을 하고 다녔던 김재련 옹을 비롯한 권중성, 장창용, 오팔동, 이상열 같은 저산팔읍 보부상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한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홍산에 사는 방대현 씨의 조부께서 제공한 사진
▲ 신차영감 연락 잔치 후 찍은 기념 사진 홍산에 사는 방대현 씨의 조부께서 제공한 사진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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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씩 치르는 공문제와 신차 영감 연락 잔치에서 '신차 영감'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력이 있어야 했다. 어느 조직이든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쉽과 재력이 있어야 권위가 서기 마련이다. 보부상 조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근대에 접어들면서 홍산에서는 보부상의 실세인 신차 영감을 지내고 나면 재산이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논을 팔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사)저산팔읍상무사 보존회 이정구(62) 회장은 저산팔읍보부상의 옛 명성과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저산팔읍보부상에 대한 자료를 보존하고 자손들을 찾아서 인터뷰를 하고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홍산면이 고향이긴 하지만 일찌감치 도시로 떠났다가 귀향한 이정구 회장은 노령화되고 쇠락해가는 고향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홍산 장날이면 저산팔읍의 사람들이 다 몰려와 시끌벅적하고 질펀했던 어린 시절의 홍산 장날의 모습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홍산 장날, 보부상 보존회 회원들의 길거리 공연을 마련한 취지를 말하고 있다.
▲ 저산팔읍 상무사 보존회 이 정구 회장 홍산 장날, 보부상 보존회 회원들의 길거리 공연을 마련한 취지를 말하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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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이야기 거리가 넘쳤던 옛 홍산 장날의 명맥을 이어나갈 방법을 고심하다가 보부상 조직과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규합해서 저산팔읍 상무사 보존회를 조직했다.

올해로 2년째 보부상 공문제와 신차영감 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이런 축제를 통해 홍산 면민들이 홍산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보부상의 상도를 계승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하고, 지역민들이 보부상문화를 매개로 한 지역공동체로서 일체감을 갖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홍산면에는 아버지가 보부상 조직에서 활동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자손들이 많다. 청금록에 기록된 이름으로 추적해서 자손들을 찾아가 아버지가 보부상과 관련된 직위를 역임했을 당시의 인터뷰를 요청하면 거부감과 반감을 일으키던 자녀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전통 문화를 잘 계승하는 조직들에게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주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순전히 신차 영감의 재력에 의존한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신차 영감을 하고 나면 재산을 있는 대로 다 없앴어"

부여군 옥산면 신안리 이병우(85세)님은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어르신(구 연길 2015. 12. 31 사망)의 신차 영감 잔치를 구경하러 갔었으며 훗날 어른들이 이렇게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서 보부상 공문제와 신차 영감 행사에 쾌척했던 보부상은 장날의 영웅이 되었으나 자손들에게는 기를 못 펴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저산팔읍상무사 보존회에서는 보부상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앞장섰던 보부상들에게 감사하고 평생 아버지를 원망했을 자손들과 화해하는 차원에서 지난 4월 보부상 축제에서는 그 분들의 신위를 모시고 자손들을 초청해 공문제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정구 저산팔읍상무사 보존회 회장은 귀향을 한 이후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부상의 흔적을 좇아서 자료를 찾아다니고 전국의 재래시장을 벤치마킹하며 홍산 장날의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에 골몰해 있다. 마치 옛 보부상의 신차영감 중에 한 분이 빙의한 듯한 착각에 빠져서 홍산 장터를 돌아다닌 날도 있다고 한다. 효율적으로 보부상 보존회 활동을 하기 위해 공연 연출을 따로 공부하고 있다.

엿장수로 분한 윤 태순의 만담과 흥겨운 춤사위
▲ 홍산 주민 윤태순 씨의 엿장수 공연 엿장수로 분한 윤 태순의 만담과 흥겨운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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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산팔읍 상무사 보존회 이사들 중에는 옛 장날의 분위기를 주름잡던 엿장수 역할을 하는 윤태순씨와 각설이 타령을 잘하는 이순용씨 등 재주꾼들이 있다. 이정구 회장은 이들을 발굴해 자체적으로 공연도 이끌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개그 프로에서도 볼 수 없는 엿장수 윤태순씨의 만담에 홍산의 장꾼들은 오래 전 웃음을 되찾았다. 이순용씨의 각설이 타령은 얼마나 구수한지 현대판 각설이들의 상업적이고 외설적인 몸짓에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이 순용 씨의 각설이 타령은 외설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우리의 가락이다. 장날의 분위기 메이커인 각설이 타령은 구수하고 질박해서 질리지 않는 가락이다.
▲ 홍산면 주민 이 순용 씨의 각설이 타령 이 순용 씨의 각설이 타령은 외설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우리의 가락이다. 장날의 분위기 메이커인 각설이 타령은 구수하고 질박해서 질리지 않는 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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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날의 깜짝 이벤트로 마련한 홍산 장날의 보부상 길놀이 행사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과도 함께 했던 잔치였다. 지역민들에게는 흥겹고 질펀한 장날의 향수를, 전통 5일장을 찾아다니는 행상들에게는 보부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홍산면에서는 자긍심을 갖고 상업 활동을 하게하려는 뜻도 있다.

이정구 회장은 논과 재산을 팔아서라도 보존하려고 했던 보부상 영감들의 정신을 '홍산의 문화 유산'으로 발전시키고, 홍산면에서 보존하고 있는 보부상 민속 문화를 지역상권 활성화에 동력으로 활용하는데 남은 생을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태그:#저산팔읍 , #보부상, #홍산장날, #신차영감 , #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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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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