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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금)~23일(일) 국내외 트레킹 전문 '로드 디자이너(road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고광용 선배와 함께 일본 '쓰시마(対馬島)'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단출하게 두 사람 뿐이다.

부산항에서 21일(금) 아침 8시에 만나 수속을 마친 다음 9시 20분 배를 타고는 쓰시마의 중심인 남섬에 있는 '이즈하라(厳原)'항구로 향했다. 새벽에 서울 집에서 나와 KTX로 부산역까지 2시간 30분, 다시 배를 타고 2시간 10분을 이동하는 내내 잠을 잤다.

겨우 눈을 뜨고 보니 오전 11시 30분이다. 이제 배에서 내린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는 항구로 나오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오늘은 전날 미리 쓰시마 '히타카츠(比田勝)'에 와 있던 고 선배 둘째 아들의 친구인 이재승과 한다발이 마중을 와 주었다.

초밥집에서
▲ 일본 쓰시마 초밥집에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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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점심식사부터 간단하게 하고 숙소가 있는 히타카츠로 향하기로 한다. 식사는 이즈하라 뿐 아니라 쓰시마에 유일하게 있는 회전초밥집으로 갔다.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다행스럽게도 조금 일찍 갔고, 4명이라 쉽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초밥을 30개 넘게 주문한 것 같다.

그런데 나와 고 선배만 계속 먹는다. 아직 20대 후반인 재승이와 다발이가 잘 먹지 안 는다. "왜, 안 먹어"라고 했더니, "4시간 전에 히타카츠에서 출발하면서 눈에 보이는 곳마다 방문하여 쉬고 먹고 해서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이런 답답한 노릇이 있나. 젊은 친구들을 위해 초밥집에 왔는데, 어른들만 신나게 먹고 나온 것 같아서 조금 씁쓸했다.

재승이와 다발이는 "친구의 부모(고 선배 부부)가 히타카츠에서 식당과 함께 민박집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는 "잠시 쉬고 관광도 하고 놀면서 며칠 봉사도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친구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말 착한 청년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계단 아래 8월 5일~6일(토~일)열리는 '쓰시마 이즈하라항구 축제(対馬厳原港祭り,이즈하라 미나토 마츠리)'벽보가 보인다.

이즈하라미나토마츠리 벽보
▲ 일본 쓰시마 이즈하라미나토마츠리 벽보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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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까지는 '쓰시마 아리랑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리던 전통 있는 축제였다. 하지만 이 무렵 발생한 어느 사찰의 국보급 문화제 도난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반한 감정에 불이 붙어 이름을 바꾸게 된다.

조선통신사와 아리랑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문화제 도난사건으로 당분간은 원상회복이 힘든 상황이 되어버려 아쉬울 뿐이다. 이제 '하치만구(八幡宮)신사' 건너편에 있는 요즘은 주로 젊은이들의 유카타 체험장 등으로 사용되는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관'으로 갔다.

소설가의 집 안내문
▲ 일본 쓰시마 소설가의 집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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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라이 도스이관은 쓰시마 이즈하라 태생의 소설가이자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1860∼1926)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2층 규모의 기념관이다. 그는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닌 작가' '메이지(明治) 문단의 천재'라고 불리는 여성 작가이자 일본 5000엔 화폐 속 주인공인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문학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그는 8세 때 쓰시마 도주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였던 아버지 '나카라이 탄시로우(半井湛四良)'를 따라 부산에서 3년 동안 살았다. 이로 인하여 그는 조선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조선 풍물에 상당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아사히신문>의 1호 특파원으로 한양에 파견되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첫 외국인 상주 특파원이었다. 1881년에 부산에 통신원 신분으로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한양으로 가서 일본 언론 역사상 첫 해외 특파원이 된다.

소설가의 집 입구
▲ 일본 쓰시마 소설가의 집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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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일하면서 소설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해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구운몽> <징비록> 등을 일본에 소개했다. 이후 소설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을 신문에 연재하여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창작 소설은 군국주의 근대 일본의 논리를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다.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은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배경으로 용감한 일본 남성이 조선 여인을 구출한다는 이야기와 청, 러 등 열강의 각축전에서 일본이 조선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조선의 일그러진 단면도 부각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적대적이며 편향적인 시선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불편하지만 당시 일본이 어떤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봤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책을 쓴 인물이다.

유카타를 입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
▲ 일본 쓰시마 유카타를 입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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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작가이며 소설가의 집 귀퉁이에 문학관이 있기는 하지만, 유카타 체험장에 휴게실과 회의실 정도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한국인 방문객은 상당히 많은지 1시간에 1천엔을 주고 더운 날임에도 유카타를 입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방문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어 섬의 동쪽 길을 따라 히타카츠로 길을 잡았다. 고 선배는 "지난 3일 정식으로 식당의 영업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준비할 것이 많아 본격적인 영업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는 길에 2층 식당과 3층 휴게실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다.

에어컨을 사기 위해 전자상점 방문
▲ 일본 쓰시마 에어컨을 사기 위해 전자상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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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전자상품 판매점. 이곳에서는 에어컨을 알아본다. 6~8조 크기의 다다미(畳)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 배달 및 설치비를 포함하여 5만~6만 엔 정도였다. 비싸지는 않았다. 점원이 "미끼상품으로 나온 것으로 잘 팔린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성수기라서 한 달은 기다려야 설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양한 전자제품은 물론 보온병 등도 팔고 있다
▲ 일본 쓰시마 다양한 전자제품은 물론 보온병 등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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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운 여름에 바로 장사를 시작해야하는데, 2층 식당에는 에어컨 3대에 선풍기도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하지만 3층 휴게실과 이웃한 민박집은 당장 영업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에어컨과 선풍기를 왕창 구매해야 한다. 일단 이곳 제품은 설치만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관계로 패스했다.

나오는 길에 보니 가게의 아르바이트 및 사원 모집 광고문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최근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타결되었다. 이곳은 얼마나 할까 살펴보았더니, 준사원, 파트타임의 경우에는 시급 900엔, 고교생 주부의 아르바이트는 시급 760엔부터라고 되어있다.

쓰시마의 직원 및 파트, 아르바이트 모집 안내문, 시급이 적혀있다
▲ 일본 쓰시마 쓰시마의 직원 및 파트, 아르바이트 모집 안내문, 시급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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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사원은 월급에 1만5000엔의 수당이 더 있고, 준사원과 아르바이트, 파트타임의 경우 총합계로 월급을 조금 더 준다는 글이 있다. 당연히 야간근무에는 시급을 더 준다는 것도 있다. 예전 20년 전에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시급이 800~900엔 정도로 시작했다.

일본인의 경우에는 900~1000엔 정도를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 도쿄의 경우에는 100~200엔 정도 더 오른 것 같다. 하지만 이곳 쓰시마를 포함하여 규슈, 오키나와 지역은 시급이 일본에서도 가장 낮은 곳 중에 하나다.

쓰시마의 아르바이트 모집 안내문
▲ 일본 쓰시마 쓰시마의 아르바이트 모집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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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에서 이곳은 가장 저렴한 인건비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호텔이나 대형 식품점에 일하는 직원의 경우 통상 16만 엔 정도의 월급으로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태그:#나카라이 도스이, #일본 , #쓰시마 , #아르바이트 시급, #유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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