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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암포라 파편이 쌓여져 만들어진 로마 근교의 몬테 테스타치오(Monte Testaccio), 삼한 시대 사람들의 조개껍데기가 모여 만들어진 김해 패총(사적 제 2호)를 거쳐 현대의 쓰레기 매립장에 이르기까지. 쓰레기는 '도시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의존적 존재이다. 살아있는 생물과 그들의 노폐물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듯, 살아있는 도시와 그들의 쓰레기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농학 기사, 카트린 드 실기(Catherine De Silguy)는 그의 저서에서 쓰레기를 문명의 그림자에 비유했다. 밝은 양지가 아닌 어둠의 음지로 묘사되는 쓰레기.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우리 몸이 그림자를 버리고 달아날 수 없듯, 살아있는 도시에서 쓰레기는 더 이상 외면해야 할 존재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대구시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는 모두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모여들게 된다.
▲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 매립지 전경 대구시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는 모두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모여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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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는 모두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모여들게 된다. 모든 쓰레기는 주인으로부터 잊혀진 존재이자 버려진 대상이다. 이곳은 잊혀진 물건, 수명을 다한 제품, 버려진 종잇조각 따위들이 흘러드는 공간이다. 그 존재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더 이상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는 존재들로 가득찬 공간이다. 누군가는 이 공간을 혐오한다고 했다.

쓰레기장의 조성과 확장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반대 시위들이 이 공간과 쓰레기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를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해 쓰레기를 품게 되었던 와룡산의 기구한 운명 또한 이를 방증하고 있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었던 쓰레기의 존재에서 쓰레기는 문명의 그림자라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도 쓰레기는 더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가 현재와 같이 '쓸모없는' 대상으로서 낮은 위상을 가지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존재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대상들이 모여 쓰레기를 이루지만, 그 쓰레기 역시 사회에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의 한 장면은 쓰레기가 쓸모 있는 '거름'으로 재탄생하여 사용되었던 전통 사회의 한 특성을 보여준다. 놀부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때 뒤가 마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볼일을 해결하지 않고 굳이 집까지 돌아오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장면은 보잘것없는 분변까지도 집착하는 놀부의 욕심과 탐욕을 희화화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전통 사회에서 분변을 비롯한 쓰레기가 누군가의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농업이 국가의 산업기반이 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유기물로 이루어진 쓰레기는 대부분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대부분이 탄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쓰레기가 자연스레 분해되고 다시 작물에 흡수되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연스러운 탄소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 현대 사회에서 쓰레기는 과거와 같은 역할을 상실해버렸다. 농업은 경제 담론의 변방으로 밀려나버렸으며, 이전과 같은 거름 수요는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이 화학 비료의 등장은 농업에서 전통적 거름을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 거름을 통한 쓰레기의 처리가 플라스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쓰레기에서는 적용될 수 없었다는 것도 쓰레기의 무용화에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쓸모가 없어진 쓰레기는 한 곳에 모여 버려졌고, 사람들은 그곳을 '쓰레기 매립장'이라 불렀다. 자연스러운 탄소의 순환이 아닌, 정체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제품인 플라스틱, 스티로폼이 500년 이상의 분해 기간을 거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매립장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의 정체가 일어나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맨홀 타입의 가스포집공(왼쪽)과 가스홀더(오른쪽). 켜켜이 쌓인 매립지 위로 나는 땅 위로 돌출된 수많은 가스 포집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거대한 매립가스 홀더를 볼 수 있었다.
 맨홀 타입의 가스포집공(왼쪽)과 가스홀더(오른쪽). 켜켜이 쌓인 매립지 위로 나는 땅 위로 돌출된 수많은 가스 포집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거대한 매립가스 홀더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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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매립장의 매립가스 에너지화와 난방 공급, 에너지 정책의 좋은 사례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은 1990년부터 대구시에서 발생한 생활쓰레기가 모여드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탄소의 이동과 쓰레기의 활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켜켜이 쌓인 매립지 위로 돌출된 수많은 가스 포집공과 거대한 매립 가스 홀더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쓰레기가 분해되며 발생하는 가스를 포집하는 장치들이었다.

매립가스 자원화 시설의 내부에서는 세부적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시설은 이곳에서 원격으로 조정된다.
 매립가스 자원화 시설의 내부에서는 세부적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시설은 이곳에서 원격으로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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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가스 자원화 시설의 내부에서는 세부적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땅 속에 시루떡처럼 쌓여가고 있는 쓰레기더미에서는 혐기성 미생물에 의한 분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매립 가스(LFG : Land Fill Gas)가 발생하게 된다. 매립 가스는 메탄(CH4)이 50%, 이산화탄소(CO2)이 45%, 그리고 산소, 질소, 암모니아 등이 나머지 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케이싱 타입과 맨홀 타입의 가스 포집공으로 모여들게 된다. 모여든 매립 가스는 습식세정탑, 필터, 블로워 등을 거쳐 중질 가스로 정제되며 가스 홀더로 모여들며, 이들은 다시 지역난방공사로 보내져 주변 서재지역의 난방 일부에 이용된다.

가스홀더(왼쪽)과 매립가스 정제 시설(오른쪽). 모여든 매립 가스는 습식세정탑, 필터, 블로워 등을 거쳐 중질 가스로 정제되며 가스 홀더로 모여들며, 이들은 다시 지역난방공사로 보내져 주변 서재지역의 난방 일부에 이용된다.
 가스홀더(왼쪽)과 매립가스 정제 시설(오른쪽). 모여든 매립 가스는 습식세정탑, 필터, 블로워 등을 거쳐 중질 가스로 정제되며 가스 홀더로 모여들며, 이들은 다시 지역난방공사로 보내져 주변 서재지역의 난방 일부에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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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쓰레기의 에너지화 사업은 직접적으로도 지역 난방공급이라는 에너지 확보에 기여하지만, 그 외의 부수적 효과 역시 다양하다. 매립 가스의 50%를 차지하는 메탄가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로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이산화탄소의 25배에 달하는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로 배출될 메탄가스를 연소시켜 발생되는 열을 난방으로 활용한 후 이산화탄소로 배출하는 방식을 통해 온실 효과의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최근의 탈(脫)원전 담론에서도 원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신재생에너지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쓰레기 에너지화의 역할이 다시금 생각될 것이다. 매립가스를 이용한 에너지로 기존의 원전 발전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매립가스를 이용한 에너지와 다른 여러 신재생에너지가 함께 이용될 때 비로소 친환경 에너지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가 대부분 로컬 에너지(local energy)의 특성을 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의 매립가스 에너지화와 주변 지역 난방공급이 차후의 에너지 정책에 있어 하나의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2006년 10월 첫 운전을 시작한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의 매립가스 자원화시설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버려진 쓰레기에서 에너지를 만들어왔으며, 앞으로 예상되는 30여 년의 매립기간동안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부 가연성 폐기물을 이용하여 고형 연료로 활용하는 폐기물 에너지화 시설 역시 건설되어 쓰레기를 새로운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다. 방천리 매립장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각 지자체별로 운영되는 생활폐기물 매립장 250여 개 중 17개소에서 방천리와 같은 매립가스 자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 방천리에서는 쓰레기에서 에너지로의 탈바꿈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통 사회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거름으로 활용되었듯, 쓰레기의 탄소가 끊임없이 자연스러운 순환을 계속했듯 이곳에서 쓰레기는 끊임없이 오늘과 내일의 에너지로 활용되며 그 순환을 이어가고 있었다.

쓰레기를 문명의 그림자에 비유한 카트린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쓰레기는 더 이상 문명의 그림자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도시의 필연적인 결과인 쓰레기는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아닌 오늘과 내일의 에너지원으로써의 역할이 재고될 것이다. 문명의 그림자로만 인식되었던 쓰레기가 다시 문명을 비추는 그날을 기대한다.


태그:#방천리 쓰레기 매립장, #대구시 환경자원사업소, #신재생에너지, #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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