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 김윤정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의 죽음 소식에 애통하던 시간이 채 얼마나 흘렀을까.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케이블TV의 야심 찬 깃발은 그 아래 가려진 수많은 외주 인력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름밥으로 돌려야만 가능한 아픈 펄럭임인 것을 나는 20년 가까이 방송작가로 살아오면서 절실하게 체험했다.

제작비는 터무니없이 깎이는데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는 현실. 그 까마득한 괴리감을 견디기 위해 제작사들은 적자 경영을 감수해야 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PD와 작가들에게 분담됐다.

아무리 제작비를 아껴도 적자가 나는 현실. 그런데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소중한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을 비추기 위해 열악한 제작환경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내가 20년간 만났던 대부분의 독립 PD와 작가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다양한 세상 속 현장을 찾아가 누군가를 만나 울고 웃으며 삶을 기록하는 것에 가슴 뜨거워했고, 부족한 주머니를 털어 밤새 술잔을 기울이면서 각자가 느끼고 발견한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나누었다.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씨가 기자간담회에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CJ E&M을 규탄했다.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씨가 기자간담회에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CJ E&M을 규탄했다. ⓒ 김윤정


그들 대부분은 4대 보험, 퇴직금, 저작권료 등과 무관한 삶이지만 오늘도 세상 속 누군가와 통화 중이거나 촬영 중이다.

지난 20여 년 간 내가 만난 교양·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 PD와 작가들은 브랜드를 가진 창작자도, 인권이 보장된 노동자도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수는 투명인간이다. 프로그램이 잘 되면 방송사가 웃고 프로그램이 잘 안 되면 외주제작사가 운다. 그러다 방송사고가 나면 그들이 보인다. 비난을 감수하고, 잘못을 책임지며, 그 과정에서 폭언과 모욕을 감당하기도 하고, 종종 '강퇴'당하기도 한다. 

이런 외주 제작의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송작가라고 하면 '오~ 멋져요'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제작 현실을 조금 이야기하면 '헉! 왜 그걸 해요?'라고 반문한다.

동경과 동정.

두 단어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씁쓸하고 처절한 것이 외주제작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방송사와 외주제작시스템이다. 외주제작이 본격화된 시점으로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동안 독립 PD들과 방송작가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눈물을 닦아준 정책은 없었다. 오히려 교양·다큐멘터리마저 재미와 인기로 편승시키고 이윤과 경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방송 현실이다.

독립 PD들 대부분 4대 보험, 퇴직금, 저작권료 등과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삶의 어떤 위태로움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 연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희망이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라는 방송사의 갑질로 무참히 짓밟히지 않길 바란다.

 사단법인 한국독립PD협회는,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이들의 귀환을 돕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독립PD협회는, 고 박환성·김광일 다큐멘터리 PD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이들의 귀환을 돕고 있다. ⓒ 한국독립PD협회


프리랜서 방송 PD와 작가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방송제작의 최전방에서 출연자와 직접 만나고, 울고 웃으면서 우리 사회가 행여 놓치거나 지나칠 수 있는 다양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프고 슬프고 기다려야 이 처절하고 비참한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해지는 저녁 창에 기대어 먼 하늘 바라보니
나 어릴 적에 꿈을 꾸었던 내 모습은 어디에
가슴 가득 아쉬움으로 세월 속에 묻어 두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더 눈물 흘러야 그 많은 날들을 잊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가 선 이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안치환, '얼마나 더' 중에서

더 이상 박환성 PD, 김광일 PD와 같은 서러운 죽음, 애통한 이별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떤 변명으로도 그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고, 어떤 보상으로도 그들의 웃음은 다시 볼 수 없다.

불의의 사고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고(故) 박환성, 김광일 PD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에 깊이 애도하고,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취재기사가 아니라 방송작가로서, 동료PD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쓴 기사입니다.
박환성PD 김광일PD 독립피디 외주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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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비평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디지털과 인문학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강의와 연구, 비평을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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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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