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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점 하나만 새로 찍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도시 전체가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요? 세상은 깜짝 놀라겠죠. 작년 올림픽 개최지였던 브라질의 리우데자이네루, 그곳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설치된 '예수 조명상'이 그렇죠.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예수 조명상은 리우데자네이루의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소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브라질의 꾸리찌바 '아라메 오페라 극장'도 마찬가지겠죠. 폐광 상태였던 채석장에 철파이프 구조체에 투명 폴리카보네이트로 지붕을 덮어 2400석의 객석을 갖춘 예술 문화 공연장을 세웠으니, 그야말로 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었겠죠.

도시를 새롭게 하는 일, 달리 말하면 '도시재생사업' 또는 '도시계획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우데자이네루의 예수상이나 꾸리찌바의 아라메 오페라 극장 같은 경우는 '도시침술'이란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책 제목을 도시침술이라고 정한 것은, 침술이 몸에 최소한의 자극을 주어 건강을 회복시키듯 도시에도 최소한의 개입으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를 계획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침술은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변화는 작은 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7쪽)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
▲ 책겉표지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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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쓴 레르네르는 공동체를 살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을 입안하는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로서, 브라질의 꾸리찌바를 '꿈의 생태도시'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세계 많은 이들이 그곳 꾸리찌바를 견학하여 배우고 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가 왜 '도시침술'이란 주제를 꺼내들고 나온 걸까요? 도시계획사업이나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큰 틀을 바꾸는 일이라 그 기간과 비용도 엄청나게 소요되지만, 도시침술은 작은 변화만 줘도 도시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까닭이겠죠. 더욱이 도시침술은 도시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기에 훨씬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해 하루 종일 축제가 펼쳐지는 람블라는 이상적인 만남의 장소다. 사람들은 바르셀로나라는 무대의 배우이자 관객이 된다. 다른 도시의 거리에도 음악가와 마임 공연가, 마술사가 있지만 바르셀로나처럼 자주 야외극이 펼쳐지는 도시는 없다."(104쪽)

'람블라 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의 하나이자 도시 환경에 카탈루냐인의 기질과 역사 그리고 지중해가 스며있는 바르셀로나. 그 도심 광장과 유서 깊은 항구를 연결하는 거리가 바로 그 '람블라 거리'라고 하는데, 저자는 그 거리 자체가 매혹적인 갤러리로 다가온다고 소개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기 도시를 알지도 못하고 한 번 그려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이를 개선할 수 있겠냐는 점이다. 우리는 몇 몇 거리와 장소를 기준 삼아 도시를 파악한다. 하지만 어차피 몇 몇 사람만 아는 시내 지도는 격자 위에 그린 선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쿠리치바 도시계획 부서 건축가로 일하면서부터 비로소 도시에 있는 강을 익혀나갔다."(155쪽)

도시침술이란 자기 도시를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어렵거나 딱딱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저 자신이 사는 도시를 아는 만큼 '나의 도시'를 그려보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 그림 하나 하나를 통해 도시침술이 시작될 수 있다면서요.

"약 25년 전 나는 파벨라라는 산동네 빈민가에 기반 시설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빈민가에 흔한 꼬불꼬불 경사진 길과 계단 난간을 수도관과 케이블의 전선 도관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추가 공사를 하지 않아도 지붕이나 창으로 관을 보내 집집마다 물과 전기를 쓸 수 있었다. 하수관은 계단 아랫부분을 따라 내려 보냈다."(188쪽)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최대 빈민촌인 '파벨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의 우리나라 청계천의 판자촌에 빗댈 수 있을까요? 물론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죠. 아마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목포의 '온금동' 모습과 흡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목포의 온금동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있어서 도시개발사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아직 늦지 않았다면 도시침술로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침술. 그것은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침 한 대 한 대를 정성껏 놓는 일이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그림으로 먼저 그려보고, 뭔가 답답한 부분은 뚫어주고, 오물로 더렵혀진 천변은 깔끔하게 다듬어보고, 도시의 수많은 빈 공간은 그 필요한 것에 맞게 채워 넣는, 그런 멋진 그림이 먼저 필요하겠죠.

그래서 무턱대고 도시 전체를 바꾸는 사업에만 열을 내기보다, 몇 십 년 뒤에는 옛날의 기억조차 다 잊어버리게 만드는 도시계획사업보다, 전통문화도 살리고 자연환경도 보존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갱생을 펼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정한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침술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죠. 그 비결이 이 책 곳곳에 가득 차 있으니 깊게 들여다 보면 무척이나 유익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침술 - 최소한의 개입으로 도시를 살리는 도시침술 39

자이미 레르네르 지음, 황주영 옮김, 조경진 감수, 푸른숲(2017)


태그:#도시갱생, #도시재생 도시침술, #파벨라, #목포 온금동, #리우데자이네루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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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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