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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의 문인화 이야기

월전 자화상
 월전 자화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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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미술관은 그동안 52회의 전시회를 열어 월전과 동양화의 미술세계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소원 문은희 화백과 월전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문인화란?'이라는 주제의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월전의 작품을 통해 문인화를 이해시키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전시다. '월전의 작품으로 문인화 읽기'라는 의미 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물을 보니 월전의 작품 외에 월전이 소장했던 겸재, 현재, 단원, 오원의 작품도 있다.

월전은 산수와 인물, 스케치와 채색 모두에 능한 동양화가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월전이 그린 인물과 동식물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대표 화가인 겸재, 현재, 단원, 오원 등의 산수화다. 그 중 우리는 월전의 동물 그림을 먼저 살펴본다. 동물을 어쩜 이렇게 섬세하고 특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늙은 여우
 늙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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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여우, 고양이, 개, 원숭이 같은 포유류부터 학, 까마귀, 부엉이, 거위, 갈매기 같은 조류까지 다양하다. 더 나가 그림의 소재가 잉어, 메기, 가물치 같은 어류와 개구리 같은 양서류에까지 이른다. 이들 그림은 보편적으로 정적이다. 그것은 월전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또 월전의 예술관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예술을 '학문과 교양을 통한 순화된 감성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1968년에 그린 성난 고양이(怒猫)는 순화된 감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화가 난 모습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고양이가 나타나지만 분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비를 희롱하는 모습이나 쥐 잡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는 솟구친 등과 파란 눈을 통해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성난 고양이
 성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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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이 쓴 화제에 보면, 이 그림을 그린 의도를 알 수 있다.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쥐들이 도망가게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명나라 상희는 고양이와 개 그림을 그렸다.
서청등은 잠자는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청나라 팔대산인은 엎드린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신라산인은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심전은 여러 마리 고양이가 장난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나라 변화재는 노는 고양이를 그렸다.
아직 성난 고양이를 그린 이는 별로 없다.
고양이는 원래 맹수처럼 사납고 날쌘 기질을 갖고 있다.
상대방을 쫓아 남의 물건을 뺏는 성질이 있다.
이제 내가 붓을 들어 시험 삼아 성난 고양이를 그렸다."

개싸움
 개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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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그린 개싸움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앞발을 들고 두발로 선 채 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뼈다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뼈다귀를 물고 상대방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쓴다. 이들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스케치에 가깝다. 그래선지 다른 그림에 비해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메기
 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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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그린 메기(澗中魚)는 한가하게 노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메기의 정적인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먹의 농담을 이용해 아주 최소한의 붓질로 대상을 표현했지만, 화가의 의도를 전하기에는 충분하다. 화제를 통해 그 의도를 살펴보자. 한자어 제목 간중어는 시냇물의 물고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되는 난리 통에
폭풍과 파도가 천지를 뒤집네.
고래와 교룡이 물고 뜯고 싸워 피바다가 되지만
깊은 시냇물에 놀고 있는 메기는 즐겁기만 하다오."

생태운동을 벌여도 되겠네

오염지대
 오염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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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학을 그린 오염지대(汚染地帶)는 1979년 작품이다. 생태오염이라는 현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산업화에 중점을 둔 1970년대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월전은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학은 고통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큰 날개를 접고 머리를 숙인 채 입을 벌리고 있다. 다리도 쭉 벋지 못한 채 구부리고 있다.

월전은 그림 오른쪽 화제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죄를 비판하고 있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공해를 일으키고 자연을 오염시켜 사람과 가축을 죽어가게 한다. 이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인간들이 자초한 화인 것을.

"사람들은 근대화를 원한다. 어찌 공해가 무서운 줄 알았으랴?
불바람은 대기를 더럽히고 독한 물은 강과 하천을 오염시키네.
초목은 말라 죽어가고 사람과 가축도 죽어가는구나.
아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름지기 스스로 자초한 화인 것을."

황소개구리
 황소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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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그린 황소개구리(洋蛙) 역시 시서화(詩書畵)에 시대성까지 담은 특별한 작품이다. 뱀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시 황소개구리는 외래종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그림 역시 외래종으로 인한 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월전은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인간에게서 찾고 있다. 인재(人災)라는 얘기다.

"한강물은 본래 맑고 고요해 물고기와 자라들의 천국이었다.
바위 위에 청개구리 울고 여울에는 붕어와 잉어가 뛰어 놀았다.
따뜻한 봄이면 송사리 태어나고 맑은 가을날 쏘가리 살 오른다.
하루아침에 낯선 도적 뛰어들어 못과 늪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뛰어든 자 그 누구냐? 수입해 온 황소개구리 그 놈이다.
몸통은 크고 성질이 포악해서 도처에서 광란을 부리니,
뱀장어는 바위 밑에 숨고 개구리는 풀섶으로 도망친다.
독사도 항거하다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입에 먹히고 만다.

금수강산 삼천리 신음소리 없는 곳이 없도다.
외래종의 화가 가공할 정도로 참혹하니, 실상은 인재로다.
이미 주객이 전도되었으니. 그 화가 어찌 벌레와 물고기에게만 미치겠나?
슬프도다 약한 자의 한, 오호라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구나." 

소원이 감탄한 오원의 그림들

오원 장승업의 묘작도와 화조도
 오원 장승업의 묘작도와 화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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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은 조선 말기 최고의 화가다. 그는 산수화, 문인화, 인물화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1880년대 장승업의 그림은 근대 신품(神品)으로 명성을 누렸고, 세도가와 재력가의 수집대상이 되었다. 그 때문에 오원은 직업화가로 자유분방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래선지 고종의 명으로 궁중에서 그림을 그리던 오원이 속박을 싫어해 도망쳤다고 한다.

이곳 전시실에 있는 오원의 그림은 묘작도(猫雀圖)와 화조도(花鳥圖)다. 이들 그림의 핵심은 고양이와 새다. 묘작도는 고양이와 참새를 그리고 있다. 화조도는 꽃을 찾을 수 없어 쌍작도(雙鵲圖)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부부로 보이는 두 마리 까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 까치는 그림의 가운데 위치하기도 하고, 양쪽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기도 하다.

참새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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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작도는 고양이가 나무 위에서 짹짹거리는 참새를 올려다 보고 있는 모습이다. 고양이의 꼬리, 수염, 눈에서 호기심이 느껴진다. 참새도 나뭇가지에 앉아 고양이를 내려다 본다. 이러한 그림의 기법을 조응(照應)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팔짝 뛰면 닿을 거리에 가을꽃이 피어 있다. 구도, 색감, 주제 등에서 완성도가 높다. 그림의 화제는 오원이 문맹이어서 정학교(鄭學敎: 1832~1914)가 썼다고 하는데, 읽기가 쉽지 않다.

쌍작도는 두 마리의 까치가 나무 위와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림이 두 개로 하나는 버드나무 위의 부부 까치고, 다른 하나는 감나무 위의 부부 까치다. 그러므로 봄날의 까치와 가을날의 까치다. 봄날의 까치 중 한 마리는 버드나무 위에 앉아 내려다보고, 다른 한 마리는 아래쪽 나무 등걸에 앉아 올려다 보고 있다. 가을날의 까치는 두 마리가 함께 감나무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이들 역시 화제가 있는데, 읽을 수 없다.

까치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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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을 보고 문은희 화백이 감탄을 한다. 문 화백은 오원 장승업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대상을 기가 막히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표현기법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력이 좋다고 말한다. 필력이라는 단어가 잘 이해되지 않아 설명을 부탁했더니, 붓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붓은 원래 부드럽지만, 실력을 연마하면 칼날 같아진다는 것이다. 붓이 칼날이 될 때 대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케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 초상화들

문익점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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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표준영정 제도라는 게 있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 역사 속 인물의 초상을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 인물과 가장 가까운 영정으로 나라에서 인정해준 제도다. 1973년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첫 해 표준영정이 두 점 그려졌다. 한 점이 이순신 장군으로 월전 장우성이 그렸고, 또 한 점이 세종대왕으로 운보 김기창이 그렸다.

이후 월전은 1981년까지 모두 7점의 표준영정을 그렸다. 다산 정약용(74), 강감찬(74), 김유신(77), 유관순(78), 윤봉길(78), 정몽주(81)다. 이들 영정은 현충사, 한국은행 본점, 낙성대, 길상사 등에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월전은 더 많은 영정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 영정이 이번 전시에 나온 것이다. 정기룡 장군, 전제(全霽) 장군, 사명대사, 남명 조식, 문익점, 김종직.

문익점 스케치
 문익점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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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인물들보다 역사 속에서 덜 회자되지만, 그들이 갖는 역사성 역시 대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정뿐 아니라 영정의 밑그림까지 함께 있어 초상화가 그려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채색된 영정보다 영정 밑그림이 더 인상적이다. 인물화에 있어서 스케치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치는 그림의 기본이다. 이것은 월전의 스케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오원(吾園) 장승업의 화풍은 근대 동양화 1세대로 알려진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에게 전해진다. 심전 안중식에게 배운 화가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다. 청전이라는 호는 청년 심전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청전의 제자가 소원(小園) 문은희다. 그런 의미에서 소원의 화맥은 오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원이라는 호도 오원의 화풍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태그:#월전미술관, #장우성, #문인화, #동물, #오원 장승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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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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