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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가지산 보림사, 어둠이 밝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세상 이치입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어둠이 밝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세상 이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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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거나?"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또 '떠남'을 생각합니다. 손오공도 제 아무리 날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생각을 거둬들입니다.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가면 그만인 것을.

그러면서도 한 절집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며칠 전 사진 한 장과 시 한 편을 보내 온 스님입니다. 그 스님이라면 다 내려놔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음은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 일선 스님께서 보내 온 선시(禪詩)입니다.

새벽녘 꿈에 나타나 웃으시던 고승이 혹 일선 스님?

 일선 스님께서 보내온 장흥 보림사 차밭에 핀 하늘나리 사진입니다. 이걸 보고 선시를 떠올리신 겁니다.
 일선 스님께서 보내온 장흥 보림사 차밭에 핀 하늘나리 사진입니다. 이걸 보고 선시를 떠올리신 겁니다.
ⓒ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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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에
외로이 하늘나리
장마가 주춤한 사이
구름타고 내려 왔네
천상 인간 세계
선심으로 하나 되네

일선 스님께선 차밭에 핀 하늘나리 꽃을 보면서 천상세계와 인간세계가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드나듦이 자유로운 해탈자(관조자)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내지 못할 그런 선시로 읽혔습니다. 하여, 그랬습니다.

 일선 스님, 참선 삼매경입니다.
 일선 스님, 참선 삼매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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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꿈에 고승이 나타나 웃으시더니 그 스님이 일선 스님이셨나?"
"저는 소승이옵네당. 오늘은 길상사, 낼 조계사 선 강의 매주 가는 날입니다."

그가 보내 온 "소승"이란 문자 속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빙그레 웃음 날렸습니다. 이게 강렬한 유혹이었을까? 부름이었을까? 결국 참지 못하고 장흥 가지산 보림사로 일선 스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절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 소리, 하염없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부푼 희망 안고서.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 '화두'를 툭툭 내던지는 모양새

 장흥 가지산 보림사 경내,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납니다. 해탈처럼 여겨집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경내,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납니다. 해탈처럼 여겨집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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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선 스님, 죽비를 치고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입니다.
 일선 스님, 죽비를 치고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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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비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비 소리 듣는 것만으로 해탈을 꿈꿨는데, 꿈은 저만치 사라졌습니다. 하늘이 마음 닫은 줄 알았습니다.

암튼, 절집의 고요 때문일까,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합니다. 몇 시쯤 됐을까? 몸 뒤척이던 차, 적막한 허공을 뚫고 튀어나온 소리 하나.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도량석, 어색한 목탁소립니다.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가만히 귀 기울입니다.

"똑 · 똑 … … 똑 · 똑 … … … … 똑 · 똑……"

보통 목탁소리는 "똑 · 똑 · 똑 · 똑~" 등 일정합니다. 여기에 목탁 치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맑고 깨끗해 상큼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여기 이 목탁소리는 부드러움과 달랐습니다. 권투선수가 쉭쉭 소리 내며 허공에 내지르는 주먹 같달까. 이런 목탁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잽싸게 문을 나섰습니다.

 장흥 보림사 새벽예불 직전의 도량석에서 본 긴 그림자의 주인은 일선 스님이었습니다.
 장흥 보림사 새벽예불 직전의 도량석에서 본 긴 그림자의 주인은 일선 스님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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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서 일선 스님 선체조 중입니다.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서 일선 스님 선체조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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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어둠 속을 걷고 있습니다. 절 마당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림자 주인을 찾았습니다. 일선 스님. 그는 왼손에 목탁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두 손을 움직여 몸통 가운데 지점에서 손을 부딪쳐 박수치는 것처럼, 툭 · 툭 목탁을 쳤습니다. 어쩌면 귀찮은 듯, 목탁을 툭툭 쳐댔습니다. 또한 들리는 소리마저 둔하고 탁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일정 규칙과 운율이 잔뜩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목탁소리가 아주 새롭게 들렸습니다. 이건 필시 '화두'를 끊임없이 툭툭 내던지는 모양새였습니다. 마치 고승이 득도를 염원하는 인간에게 죽비를 내리쳐 '해탈, 여기 있다!'하고 선물하는 폼이었습니다. 숨죽여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목탁소리와 발아래 밟히는 모래소리가 어울려 절묘한 화음이 되었습니다.

범종이 울렸습니다. 대적광전 앞. 그가 춤추고 있었습니다. 손을 올렸다 내리고, 다리를 들었다 내리고, 허리를 숙여 앉는 등 희한한 춤사위, 선 체조였습니다. 그가 대적광전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좌정하고 앉았습니다. 죽비를 3회 내리쳤습니다. 참선에 돌입했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화답했습니다. 만물이 하나 둘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새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벽예불, "구산선문에서는 참선으로 염불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 - 베품, 인내, 행복

 장흥 보림사입니다.
 장흥 보림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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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찰 보림사 앞산에 예정된 풍력발전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보림사 앞산에 예정된 풍력발전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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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보림사 경내를 돕니다. 빛이 아스라한 새벽 절집 구경은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대웅전에서는 두 보살이 목탁, 염불, 기도 중입니다. 저만치서 동이 터옵니다. 천왕문에 듭니다. 예상 못한 강한 기운이 머리를 감싸더니 온몸으로 전율처럼 퍼집니다. 놀라운 순간입니다. 보통 기운은 땅으로부터 느끼는데, 이번에는 공중에서 받습니다. 은연 중, 전쟁 통에도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은 천삼백여 년 된 보림사의 기운임을 직감합니다.

"천년고찰 보림사 파괴하는 풍력발전 웬말이냐!"

스님과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절 입구, 펼침막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살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죠. 문구를 보자, 선계에서 인간계로 돌아왔음을 실감합니다. 스님 왈, "저 앞산에 풍력발전을 한다. 신도들이 수행에 방해된다며 반대 중입니다"고 소개합니다. 행여, 지금껏 지극정성 들인 기도 수행이 도로(徒勞) 아미타불(阿彌陀佛), 즉 헛수고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보림사 마당에 핀 꽃에서 무릉도원을 떠올립니다.
 보림사 마당에 핀 꽃에서 무릉도원을 떠올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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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에 들렀습니다. 서서 쏴, 자세에서 눈앞에 글귀를 읽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

첫째,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로 산 사람이나 죽을 때가 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인색하게 살았구나!"

둘째,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사바세계에서 오나가나 부딪치는 일이 널려있기 때문에 성질을 죽이고 살기는 어렵다. 허나 그때마다 화를 벌컥 내고 살아온 자신이 후회스럽다.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화를 냈을까?"

셋째,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빼앗기고 바쁘게 살아온 자신이 어리석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는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는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보람 있고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일선 스님, 이에 대한 해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책 <행복한 간화선(클리어마인드)>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새벽 어둠을 뚫고 법당에서 참선 중인 일선 스님의 뒷 모습을 '해탈'이라 읽었습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새벽 어둠을 뚫고 법당에서 참선 중인 일선 스님의 뒷 모습을 '해탈'이라 읽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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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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