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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봄은 심신이 여러 가지로 분주했다. 아내의 중환자실 입원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페인트를 칠하고 여름장마를 준비하는 등 집 단장을 하는데 육신이 힘들었다. 집 안팎 대청소, 페인트칠, 정원 가꾸기 등. 시골 집은 남이 보기엔 낭만처럼 보이지만 이를 가꾸고 사는 사람에겐 때로는 노동의 현장이 된다. 아, 나는 일상의 쉼표를 찍고 보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나를 감추고 재충전을 할 필요가 있다.

오대산 월정사 천년 전나무 숲길
 오대산 월정사 천년 전나무 숲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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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해서, 아내에게 홀로 오대산 천년의 숲을 1박 2일로 좀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두 말하지 않고, 속옷을 준비해 준다. 젊은 날에는 참 많이도 갔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 아내는 무릎관절이 문제가 생겨 가파른 산길을 걷지 못해 갈 수가 없다. 아내여, 고맙소!

오후 1시 50분. 홀로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 행 동해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강을 따라 강북도로를 타고 암사대교를 건너갔다. 좌석은 널찍하다. 하늘도 모처럼 청명하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내 마음도 점점 홀가분해진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동서울터미널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동서울터미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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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갈 때는 과거의 큰 스승들이 명상을 하던 곳으로 가서 홀로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예컨대, 불교의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고장인 인도 붓다가야는 모든 붓다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고, 앞으로도 그럴 곳이라고 한다.

그런 장소의 힘은 참으로 강해서 세속적인 사람마저도 그곳에 가면 영적인 느낌이 커져 사원을 순례하고 명상을 하려는 생각이 나게 된다. 오래전 붓다가야를 방문한 나는 그곳의 신성한 기운에 압도되었다.

마음은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거리상으로 너무 멀다. 그래서 붓다가야 대신 내가 가끔 찾는 곳이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에 이르는 전나무 숲과 중대사에서 적멸보궁, 비로봉까지 오르는 숲길이다. 그곳에 가면 고승대덕들이 수행을 했던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이 있고, 선재길에서 오대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천년의 숲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타고 가끔 오대산을 찾는다.

버스가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도로 양쪽으로 녹음이 짙어진 산야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푸른 산을 바라보자 마음도 눈도 파랗게 시원해진다. 몸과 마음이 쉬어지는 시간이다. 버스는 쉬지 않고 줄 곳 달려 강원도 평창군 장평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오후 4시에 진부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적한 진부시외버스터미널
 한적한 진부시외버스터미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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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시외버스터미널은 매우 한적하다. 북적거리는 동서울터미널과는 퍽 대조적이다. 한적한 버스터미널을 보니 내 마음도 한적해 진다. 나는 이곳에서 월정사로 가는 공영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나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는 오후 4시 40분이 되어야 탈 수 있다. 40분을 기다려야한다.

어떤 두 부부가 나무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부부의 옆 낡은 빈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이럴 때 읽는 독서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아서인지 내용이 솔솔 잘 들어온다. 집을 나올 때 도농역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란 책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여니 이런 말이 나온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마음 잠시 내려놓으면 해결이 될 터인데 그 내려놓는 마음을 내기가 참 어렵다.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 코끼리에 끌려 다니지 말고 코끼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삶은 자유롭고 그 자유로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승려 아잔 브라흐마가 태국의 고승 <아잔 차> 밑에서 8년 간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과 통찰을 얻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책 속에는 그가 아잔 차 밑에서 수행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알기 쉽게 실려 있다. 코끼리라는 상징을 통해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 분노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행복과 불행 같은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방법을 108가지의 일화들로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진부시외버스터미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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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 40분이 다 되어갔다. '시내버스 타는 곳'이란 팻말 앞으로 상원사로 가는 공영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책을 덮고 상원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 지역에 사는 아주머니 몇 분이 타서 화기애애하게 정담을 나누고 있다.

진부를 벗어나자 도로마다 공사가 한창이다. 길을 넓히고 포장을 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그 오롯한 시골 신작로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강원도 평창 일대는 온 국토가 여기저기 도로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8년도에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느라 도로는 물론 산야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상처를 입고 있다. 올림픽도 좋지만 상처 난 산야가 신음을 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도로는 자꾸만 넓어지고, 푸른 산야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간 온 국토가 모두 도로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필요없는 도로도 넓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복과잉 투자는 되고 있지 않은지 검토하고 심사숙고하여 도로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 녹색연합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면적당 도로연장은 1008.8m(m/㎢, 2004년)로 선진국인 미국(647.1), 영국(686.1) 등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차량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지역도 필요 이상으로 도로를 넓히는 것은 막아야 한다.

2018동계올림픽을 위한 도로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원도 평창
 2018동계올림픽을 위한 도로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원도 평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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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곧 전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그래도 다행히 이 길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수많은 고승대덕들과 수행자들이 걸어서 간 길이다. 나는 월정사 입구 산채마을에서 내렸다. 신성한 전나무 숲길을 걷기 위해서다.

오후 5시. 나는 산채마을에서 산채비빔밥을 시켜 요기를 했다. 오대산에 나는 산나물과 된장국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월정사 숲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울울창창한 천년의 숲길이 가슴 시리게 나타났다! 허지만 점점 자동차의 바퀴와 기름냄새로 오대산 천년의 숲도 점점 위협을 받고 있다.


태그:#오대산 천년 숲길, #월정사, #홀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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