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구기종목은 최근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수난을 겪었다. 남자농구는 프로 출범 이후 올림픽 본선무대에 나가보지 못한 지 20년이 넘었고, 야구는 지난 3월 WBC에서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축구마저도 86년 이후 지켜온 월드컵 연속 본선진출이 중단될 절체절명의 고비에 놓여있다.

위기의 한국 구기를 살려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있는 각 협회는 자국리그가 배출한 전설들을 잇달아 소환했다. 선동열 신임 야구대표팀 감독,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 허재 농구대표팀 감독, 3인방은 모두 한국 프로 리그 각 종목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레전드' 출신 감독들이다.

이들이 현역 시절 해당 종목에서 남긴 업적은 거대하다.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떨친 선동열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시절 11시즌간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으며  규정 이닝을 채우고 평균자책점 0점대를 달성한 시즌만 3차례나 된다. 전설의 타이거즈 왕조 시절 거둔 9번의 우승 중 6번이 선동열이 활약하던 시기에 나왔다.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은 지금도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농구대잔치 시절 7회 우승, 프로농구 2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KBL 8시즌 동안 통산 4524득점, 1148리바운드, 1572어시스트, 508스틸을 기록했고 은퇴후 등번호인 9번은 영구 결번 처리되기도 했다. 농구가 다른 종목에 비하며 비교적 프로화가 늦었던 탓에 전성기가 지난 30대에 프로 경력을 시작했음에도 역대 최초의 준우승팀 MVP(1998년)에 오르는가하면 올해 프로농구 20주년 기념 레전드 12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 감독은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을 기록했으며 사상 최초로 60-60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성남FC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두 번의 3연패를 이끈 주역이었다. K리그 최초의 400경기 출장, 미드필더로는 역대 최다득점 등 그야말로 무수한 '최초' 관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의 행보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일단 현역 시절 이후로 지도자로서도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프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3인방의 공통점이다. 선동열 감독은 사령탑 데뷔와 동시에 삼성 라이온즈를 이끌고 2005-2006년 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를 차지했다. 허재 감독은 2009년과 2011년 전주 KCC를 플레이오프 정상으로 이끌었다. 신태용 감독은 비록 K리그 우승 경력은 없지만 그보다 비중이 더 크다고 할 수있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2010년)를 제패했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FA컵 우승도 차지했다.

다만 세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마지막 마무리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선동열 감독은 친정팀 기아 타이거즈 시절 3년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며 2014년 구단의 재신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발로 쫓겨나듯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신태용 감독도 2012년 성남의 추락과 함께 경질됐다. 두 사람은 자신이 현역 시절 레전드로 활약했던 친정팀으로부터 내쳐지는 설움을 겪어야했다. 허재 감독은 2015년 시즌 도중 3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과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는 모양새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켰다.

국가대표팀은 이들의 지도자 인생에서 재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선동열 감독과 허재 감독은 야구-농구대표팀의 사실상 최초의 전임감독이다. 선동열 감독은 2015 프리미어 12, 2017 WBC 등에서 투수코치로서 김인식 전 감독을 보좌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WBC에서의 부진으로 김인식 감독이 낙마하고 전임감독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선동열 감독이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게 됐다. 기아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 성적부진과 함께 각종 구설수로 이미지가 추락했던 선감독으로서는 명예회복을 위한 중요한 기회다.

허재 감독은 이번에 무려 세 번째 대표팀 감독직 도전이다. 이미 KCC 사령탑 시절이던 2009년과 2011년에도 대표팀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프로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대표팀사령탑을 돌아가며 맡는 상황이라 대표팀에만 전념하기 어려웠고 두 번의 아시아선수권에서 각각 7위-3위에 그쳤고 내용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에는 8년만에 부활한 전임감독제에서 공모를 통하여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게되어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

신감독은 2014년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이끌던 축구대표팀에서 코치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16 리우올림픽대표팀(23세 이하), 2017 U-20 월드컵 사령탑을 거쳐 마침내 A대표팀 사령탑에까지 각급 대표팀에 모두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공교롭게는 현역 시절에는 프로무대에서의 명성과 달리 유난히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던 신감독이기에 더 이색적인 행보다.

세 감독 모두 줄줄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다. 가장 먼저 허재 감독이 이끄는 농구대표팀이 8월 8일부터 20일까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리는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 출전한다. 올해부터 아시아컵이 올림픽-월드컵 예선의 기능을 잃으며 대회 자체의 위상은 다소 떨어졌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2019 중국농구월드컵 본선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농구대표팀으로서는 사실상 허재 감독의 본격적인 첫 시험무대다. 허재 감독의 장남인 허웅도 최종엔트리에 발탁되어 부자 2대가 감독과 선수로 함께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진기록도 세우게 됐다.

허감독은 현역 시절 이 대회에서 준우승만 6번이나 차지하며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처음 도전했던  2011년 텐진 대회에서는 농구대표팀의 아시아선수권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했고, 2013년 우한 대회에서는 준결승 중국전 패배 이후 중국 기자들과의 신경전으로 화제가 되는 등 유난히 이 대회와 악연이 깊다. 최근 한국농구의 인기와 국제경쟁력이 많이 하락한 상황에서 자존심을 지켜야하는 허감독의 어깨는 무겁다.

농구대표팀의 뒤를 이어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8월 31일 이란, 9월 5일 우즈벡과의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치른다. 현재 A조 2위에 올라있는 한국은 자력 본선행을 위하여 남은 2경기에서 어떻게든 승점을 지켜야하는 상황이다. 최종예선 막바지에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은 신감독은 단 2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직과 한국축구의 운명까지 걸린 벼랑끝 승부를  펼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동열 감독은 올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을 통하여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다. 선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세대교체를 실험하면서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이어질 한국대표팀의 기반을 닦아야한다.

세 감독은 한국 스포츠가 배출한 최고의 인재들이자 보호해야할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 사령탑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세 감독이 국가대표팀에서도 '스타 출신 감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개척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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