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에게 고객을 대하는 적절한 화법과 어투 및 사과 요령 등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서비스 강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공인들의 사과답지 않은 사과를 보면 보통은 화가 나기보다 '아이고, 저런 멘트를 쓰면 사람들 더 화나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합니다.

가장 최근엔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해명이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는 표현은 자기 어머니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는 그 해명이요. 강사들끼리 밥 먹다말고 그 뉴스에 얼마나 어안이 벙벙했는지 모릅니다. 아주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이번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발언은 느낌이 좀 다르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동료들에게 물으니 역시 같은 감정이랍니다. 왜 느낌이 다를까, 스스로 궁금했습니다. 정치인들 사과한답시고 멍청한 소리 하는 건 어지간해서는 웃고 마는데 이 불쾌함은 도대체 무얼까.

종일 고민해보니 문제는 전혀 의외의 곳에 있었습니다. 애초에 김 의원 글의 문제 자체가 단순한 '요령 부족'이나 표현의 부적절성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는 국민을 레밍처럼 생각할 뿐 아니라, '도의원'이라는 사회적 지위에 이르지 못한 이들 모두를 혐오하고 비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저열한 계급의식을, '나도 한때 가난했다'는 사실로 싹 덮어버리고 있어요.

과연 제 해석이 과잉일까요. 그가 페이스북에 사용한 표현 하나 하나를 직접 보겠습니다.

김학철 의원 페이스북 글, 내용 살펴봤더니...

김학철 전 자유한국당 충북도의원 페이스북 글의 일부. '레밍'발언 이상의 문제발언들로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김학철 전 자유한국당 충북도의원 페이스북 글의 일부. '레밍'발언 이상의 문제발언들로 큰 비난을 받고 있다
ⓒ 김학철 전의원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서울 암사동에 10평도 안 되는 보증금 3천만 원짜리 반지하주택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한두 기수 선배들과 달리 IMF로 인해 취업난을 겪게 되면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알린 문장입니다. 저 '10평도 안 되는 보증금'이라는 표현은 글의 전문에서 백수, 무능력, '(딸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싫은 환경' 등과 동치됩니다.

10평 반지하 신혼집은 물론 넉넉한 형편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도시형생활주택'이란 이름으로 유행을 타고 지어진 10평 내외의 원룸, 혹은 1.5룸은 학자금 대출을 미처 다 갚지 못한 청춘들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마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신혼집'입니다.

김 의원은 같은 글의 다른 문장에서, IMF직전을 'SKY만 나오면 취업이 보장됐던 시대'였다고 회상합니다. 세월은 20년이 흘렀고 국가는 청년에게 희생을 강요했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 한켠에 IMF가 자리한 이들은 이제 그 '10평도 안 되는 보증금 3천만 원짜리' 신혼집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김학철 의원은 글의 목적을 '이 사단이 일어난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본인의 삶이 얼마나 수척했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청년들의 절대 다수가 처한 '오늘'의 경제적 사회적 현실을 비극으로 표현하는 것은 삼갔어야 옳습니다. 애초에 국민을 설치류에 비유해놓고 자기 인생 힘들었던 얘길 왜 늘어놓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만 .

"여러분들이 유혈낭자하게 난도질하신 여학생 리더십 캠프의 축사에서..."

앞서 밝혔듯 그는 글의 성격을 '사과문'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경위를 '설명'하겠다고 했지요. 그는 억울해 미칠 지경입니다. 언론을 향해 '서운하다'는 표현도 직접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을 향한 정당한 비난 여론을 이런식으로 은근히 조롱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위 문장에서, 그는 국민들이 '여학생 리더십 캠프'를 난도질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비난한 것은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그 천박함이지, 여학생들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여학생 리더십 캠프에 자신이 축사를 했다는 사실과 레밍 발언의 문제점을 뒤섞어 논점을 흐리고 있음은 물론, 자신의 레밍 발언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마치 '여학생 리더십'을 비판하는 국민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난도질', '유혈낭자' 등의 표현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비록 말이 거칠었을지언정 누구에게도 칼을 쓴 적은 없습니다. 본인이 국민의 말을 칼로 느꼈다면 국민을 쥐새끼로 취급한 본인의 입을 먼저 탓할 일입니다.

"우리 충북도의원 연봉이 5,400만원입니다. 6급 공무원 평균에도 못 미칩니다."

이 문장도 김학철 의원의 '해명글' 안에 있는 문장이 맞냐고요? 예,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전후 맥락이 있지 않겠느냐 싶으신 분들은 지금도 번듯이 올라와 있는 김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읽어보십시오. 맥락에 따라 달리 읽힐 여지가 없는, 보이는 뜻 그대로의 문장입니다. 도의원이라고 하는 자리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이 발언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작 연봉이 5400만 원이라서 레밍 발언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인지, 그럼 그 연봉의 3분의 1 수준을 받으며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혀로 사람 죽여도 좋다는 소리인지 말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이렇게까지 욕 먹기엔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라는 말, 하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10평', '5400만 원' 같은 구체적인 수치가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거기엔 사람을 재산이나 소득 등 계랑화가능한 것으로 계급화하는 김 의원의 저열한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이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에겐 레밍 발언 이상의 상처를 주게 되고요.

더 기가 막힌 건 바로 뒤이어 나온 6급 공무원 관련 발언입니다. 6급 공무원 되기 쉬운 줄 아시나봅니다. 김학철 의원은 7급 공무원 경쟁률 한 번 보시고, 7급 공무원 응시생들이 노량진에서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신 뒤, 다시 그렇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분들이 한 등급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하는지 알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글에서 6급공무원에 대한 언급은 한 번 더 나옵니다. '6급공무원보다 못한 애꿎은 도의원'이란 표현이 글의 후반부에 등장해요. 예, 가만히 있던 6급 공무원 끌어다 하고 싶으셨던 말은 결국 '도의원이 대단하지 않다'는 건 말씀이겠죠. 하지만 도의원이 별거 아닐는 지 몰라도 6급 공무원은 그렇게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음주단속 걸려 망신당하는 게 두려워 대리운전기사님께 1~2만원씩 드립니다."

계급 비하적 발언을 쏟아내던 김 의원은 이어서 연봉 5400만 원조차 큰 돈이 아니라며 대리운전 기사에게 1만~2만 원씩을 지불했다고 언급합니다. 이런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돈들이 또 있다 보니 '실수령액'은 더 형편없다는 얘길 하다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우린 김 의원의 법에 대한 인식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술을 마신 후 대리운전노동자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이들에게, '왜 직접 운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여러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대개는 '술 마셨으니까 위험해서', '불법이니까 당연히' 정도의 대답이 나올 겁니다. '단속 걸려 망신당할까 봐'라는 말에는 타인의 무사와 준법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습니다.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레밍이란 말에 상처받으셨다면 레밍이 되지 마십시오."

그가 남긴 '해명문'의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입니다. 내 말에 상처받았다면 그런 사람이 되지 마라. 글쎄요. 이건 상처를 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10평 신혼집'에서 시작해', '5400만원밖에 못 벌며', '망신당할까 봐 음주운전도 못 하는' '6급 공무원만도 못한' 어느 도의원은 끝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 '레밍 발언'마저 '그런 소릴 들은 당신이 반성하라'는 말로 자신의 책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왜 멋대로 단정짓고 판단하는가

물난리가 발생한 가운데 유럽 연수에 나서고, 비난하는 여론에 대해 국민을 집단행동하는 ’레밍’(쥐의 일종)에 비유해 파문을 일으킨 김학철 충북도의원(충주1, 자유한국당에서 제명)이 지난 2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 의원은 ‘본의 아니게 국민들께 상처가 되는 오해가 될 수 있는 표현을 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의 함정질문에 빠졌으며 교묘하게 편집되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자들이 주차장까지 따라가려 질문을 이어가자 ‘언론이 레밍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 김학철 의원 귀국 '언론이 교묘하게 편집, 언론이 레밍같다' 물난리가 발생한 가운데 유럽 연수에 나서고, 비난하는 여론에 대해 국민을 집단행동하는 ’레밍’(쥐의 일종)에 비유해 파문을 일으킨 김학철 충북도의원(충주1, 자유한국당에서 제명)이 지난 2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 의원은 ‘본의 아니게 국민들께 상처가 되는 오해가 될 수 있는 표현을 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의 함정질문에 빠졌으며 교묘하게 편집되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자들이 주차장까지 따라가려 질문을 이어가자 ‘언론이 레밍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생각이 깊어집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보통 연봉 1800만 원을 받습니다. 마침 김 의원이 자신의 연봉이라 밝힌 5400만 원의 딱 삼 분의 일 정도 되는 돈이군요.

콜센터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저도 10평 신혼집에서 시작했습니다' 같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제 연봉도 2천이 안 되는걸요'하는 식의 말도 신중해야 합니다. 고객이 기업의 위법 여부를 물을 시 '어휴, 그렇게 영업하면 금감원에 신고 들어가는데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같은 말로 응대해선 안 됩니다. 자기 직업에 겸손을 떠는 고객에 '저희 아이도 6급 공무원 일 하는걸요' 같은 말도 조심하도록 교육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 하나 하나 어떻게 다 신경써?" 하지만 콜센터 오래 다니신 분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해야할 말과 할 수 있는 말,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압니다. 해서는 안 될 말들은 대개 '상대를 함부로 단정짓거나 평가하지 않는 태도'로 정리가 되죠.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들은, 레밍 발언 이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었습니다. 거기엔 어느 독립적인 청춘들이 자기 힘으로 일군 열 평 신혼 공간을, 어느 경력단절 여성이 비록 적은 연봉이지만 다시 취직해 마련한 자립의 기반을, 아무리 술에 취해도 사람 다칠까 두려워 대리운전에 몇 만원씩 쓰는 지극히 평범한 한 직장인을, 열심히 공부해 공직에 종사하는 어느 공무원의 신실한 일자리를 함부로 단정짓고, 평가하는 태도가 서려 있습니다.

레밍 발언은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지만, '레밍'이 '그냥 밥하는 아줌마'를 넘어 '개돼지'가 되기 전에 미리 발견해낸 것은 그나마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디 모두를 위하여, 한국 국민을 레밍이 아닌 그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는 자리에 계셔 주시기를, 김 의원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태그:#레밍, #레밍발언, #김학철, #자유한국당, #충북도의원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