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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22사단 故 고필주 일병의 친구들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22사단 故 고필주 일병의 친구들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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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주는 그렇게 죽을 애가 아니에요."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모인 고 고필주 일병의 친구들이 입을 모아 외친 말이다.

고 일병의 친구들은 "필주는 한마디로 활발한 사람이었다"라며 "첫 휴가를 나와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 했을 때 동기, 선·후배가 다 같이 모일 정도로 성격이 좋았다"라고 밝혔다.

친구들 말처럼, 고 일병은 홍익대 국어국문과 재학시절 왕성하게 활동한 친구다. 학과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 학회장을 맡기도 했다. 입대 전 터진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게이트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러나 친구들이 입을 모아 "활달했다" 말한 고필주 일병은 지난 19일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대한 지 5개월도 안 된 고 일병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고 일병... 외진 나갔다가 사망

고 일병은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22사단으로 배치됐다. 그러나 "건강하게 다녀와 으스대는 복학생이 되겠다" 말했던 고 일병은 외진을 받기 위해 찾은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일병은 부대 전입 후 3명의 선임병들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 폭행에 시달렸다. 그가 자살 당시 갖고 있던 수첩에는 "부식을 받으러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임들이 '짬 좀 찼냐'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는 말과 함께 "선임들이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 하나 더 뽑히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는 등의 폭언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앞서 고 일병은 자대 배치 전 신병훈련을 받다가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때문에 고 일병은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성남에 있는 병원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고 일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 14일에는 부소대장에게 먼저 면담을 신청해 '선임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이후 부대는 고 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해 전방 GOP근무를 제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 일병은 가해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고 일병이 남긴 지갑에는 "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일 눈을 뜨는데 괴롭고 매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그냥 편히 쉬고싶어"라는 내용의 메모만 발견됐다.

군 당국, 진상규명보다 언론대응 더 신경 써

故 고필주 일병의 대학 친구들이 고 일병을 생각하며 분향하고 있다.
 故 고필주 일병의 대학 친구들이 고 일병을 생각하며 분향하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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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가 24일 오전에 공개한 고 일병 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은 고 일병과 관련된 폭로 이튿날인 21일 정연봉 육군참모차장 주관으로 현안업무 점검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이날 군 당국의 회의는 고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파악이나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내용이 아닌 사건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응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군은) 사건 발생에 대한 반성, 유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발표, 엄정 수사 등에 대한 내용은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았다"며 "육군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건으로 인한 여론 악화에 집중됐다"고 꼬집었다.

군인권센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육군은 바로 반박 자료를 냈다. 육군은 "당시 회의는 육군이 예하부대를 대상으로 지원해야 할 사항에 대해 전체적으로 논의하는 정례적인 회의였다"며 "육군이 사건에 대한 반성과 엄정수사 등에 대해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임 병장 사건 포함 사망사고 연이어 발생한 22사단

고필주 일병의 가족들은 24일 오전 고향인 천안에서 고 일병의 발인식을 했다. 평범했던 22살의 국문학도는 허망하게 가족들 곁을 떠났다. 이 때문일까, 지난 22일 고 일병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 고 일병의 아버지는 "필주를 계속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고 일병의 친구들은 "필주의 죽음이 왜곡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데 힘쓸 것"이라며 기자회견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고 일병의 사망사건이 어떻게 흐를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육군은 "엄정하게 수사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있는 상태다. 지휘계통의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사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육군 22사단은 지난 2014년 임 병장 총기 난사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던 부대다. 또 지난 1월에는 얼굴에 구타당한 흔적이 역력한 한 일병이 휴가 복귀 직후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태그:#22사단, #고필주, #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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