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승승장구'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 박진철


한국 배구협회가 국가대표 경기를 위해 외국에 가는 남자배구 대표팀에게 전원 비즈니스석 항공편을 제공하는 반면, 여자배구 대표팀에게는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지원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배구 국가대표팀의 항공편 좌석 업그레이드는 오랜 숙원 과제였다. 키가 2m 안팎에 이르는 배구 선수들이 이코노미석을 타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자체가 고역이기 때문이다. 자칫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구 국가대표팀이 해외 경기를 위해 출국할 때는 비즈니스석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배구회관 건물 매입 등으로 예산 부족 문제에 시달려 온 배구협회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는 건 사실상 '언감생심'이었다.

보다 못한 한국배구연맹(KOVO)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프로배구를 관장하는 KOVO는 지난 6월 30일 국가대표팀을 관리·운영하는 배구협회에 1억 원을 추가 지원했다. 대표팀 선수들의 복지 향상과 항공기 비즈니스석 예약 등에 사용하라는 뜻이었다.

배구협회는 해당 지원금을 남자배구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8.10~14, 이란)과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결선 라운드(7.29~30, 체코) 출전을 위한 항공기 비즈니스석 예약에 사용키로 했다.

같은 대표팀 선수인데... 프로구단 "세계적인 코미디"

문제는 오는 26일 체코로 떠나는 여자배구 대표팀 12명 가운데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나머지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14명 전원에게 비즈니스석이 제공된다. 자칫 남녀배구 차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배구협회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남자배구팀 14명과 여자배구팀 6명의 비즈니스석 항공 요금을 지불하고 나면 KOVO 지원금 1억 원이 전부 소진되기 때문이다. 선수 1인당 비즈니스석 왕복 항공료는 대략 5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배구협회의 방침에 따라, 홍성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키가 크고 부상이 있는 선수 6명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도록 정했다. 배구협회 사무국 고위 관계자는 지난 23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KOVO의 비즈니스석 지원금 1억 원은 국제대회 한두 번 나가면 금방 소진되는 규모"라며 "여자배구 대표팀은 불가피하게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윤희 여자배구 대표팀 코치도 "안타깝지만 협회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장 코치는 "원래는 배구협회가 8월 아시아선수권 때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도록 약속했다"라며 "홍성진 감독이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가까운 필리핀에서 하니까 체코로 가는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비즈니스석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해 겨우 얻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비행기 좌석 등급이 차등 지급됨에 따라, 2그룹 우승을 가리는 중요한 결선 라운드를 앞두고 여자배구 선수단의 화합과 분위기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코노미석을 배정받은 선수는 상처를 입게 되고,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는 선수들도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다.

이번 여자배구 대표팀의 체코행은 중간 경유지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비행 시간만 10시간이 넘게 걸릴 예정이다.

이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여자 프로배구 A구단의 사무국장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대표팀 선수를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게 한다는 것은 세계적 코미디"라며 "살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가대표 선수들은 각 구단 입장에서는 모두 핵심 선수이고 귀중한 선수들"이라며 "국가대표팀에서 그런 식으로 (차별 대우) 하는 건 구단의 자존심까지 훼손하는 행위"라고 발끈했다.

그는 "차라리 돈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선수들 전부 똑같이 이코노미석을 태우든지 할 것이지, 국가대표 선수들 데리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살인 일정' 여자배구 대표팀, 체력 저하·부상 우려

가장 큰 우려는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의 극심한 체력 저하와 부상이다. 특히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불가리아와 폴란드에서 원정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21일부터 국내에 들어와서 또다시 3연전을 뛰었다.

2그룹 1위를 기록하며 결선 라운드에 진출한 한국 여자배구팀은 26일 다시 체코로 출국해 29일 밤(한국시간) 독일과 4강전, 그리고 30일 결승전 또는 3·4위전을 치르게 된다. 2그룹 우승 팀은 내년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1그룹으로 승격한다. 그 이후에도 중요한 국제대회에 잇달아 출전한다.

일주일 간격으로 유럽-한국-유럽를 오가며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3연전을 연달아 펼치는 강행군이다. 비몽사몽간에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살인적인 일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표팀 선수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도록 한 조치는 여러 면에서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남자배구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대표팀에게 제공하기로 한 비즈니스석 비용 중 일부를 우선 월드그랑프리 결선 라운드에 출전하는 여자배구 대표팀에게 제공하고, 남자배구 대표팀 비즈니스석은 배구협회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추후에 보충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현재로선 이후 다른 국제대회들부터 다시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남자배구 아시아선수권(7.24~8.1, 인도네이시아),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8.9~17, 필리핀),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9.20~24, 태국), 여자배구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9.5~10, 일본) 대회는 모두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야 한다.

배구협회나 KOVO가 이들 대회에 비즈니스석을 지원할 계획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배구협회와 KOVO는 지난 6월 일부 언론을 통해 앞으로 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비즈니스석을 타고 해외 원정 경기를 갈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일회성에 불과한 조치였던 셈이다.

오한남 현 배구협회 회장은 지난 6월 30일 제39대 배구협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신임 회장이다. 오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본인의 사재 출연을 통해 배구협회 재정 확충과 국가대표팀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그 약속이 사실이라면, 지금이야말로 회장의 역할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오한남 신임 회장과 배구협회는 2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제39대 임원 구성을 위한 대의원총회와 오 회장 취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배구협회 고위 인사들, 그들만의 '옥황상제석'

 대한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수원 실내체육관 귀빈석 단상에서 2017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회를 관전하고 있다. 반면, 일부 배구 팬들은 자리가 없어 통로와 계단에 서 있거나 주저앉아 관람하기도 했다.

대한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수원 실내체육관 귀빈석 단상에서 2017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회를 관전하고 있다. 반면, 일부 배구 팬들은 자리가 없어 통로와 계단에 서 있거나 주저앉아 관람하기도 했다. ⓒ 박진철


지난 21일~23일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회가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은 과거 여자배구 르네상스 시기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4300석 규모의 수원 실내체육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관중들로 가득했다. 매진을 넘어 입석표까지 동이 났다. 팬들은 경기장 곳곳의 통로가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서서 관전했다. 계단까지 꽉 차 사람이 지나다닐 수도 없었다.

관중들은 여러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여자배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모습이었다. 특히 세계 최고 여자배구 선수인 김연경(30세·192cm)의 인기는 아이돌 그룹을 방불케 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기 위해 일부 연예인들까지 경기장을 직접 찾아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이번 대회를 생중계한 스포츠 전문 케이블TV의 시청률 역시 여자배구 사상 역대급 기록을 달성했다. 강준형 KBSN SPORTS 기획팀장과 이재형 SBS Sports 캐스터는 24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회의) 한국 팀 경기 중계방송은 두 방송사 합계 시청률이 2%를 훨씬 넘었다", "프로야구 최고 인기 팀의 시청률과 맞먹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제대회 때마다 '김치찌개 회식' 등의 지원부족 문제로 팬들의 질타를 받아 온 배구협회가 이번에는 해외 항공기 좌석 문제로 인기가 치솟는 여자배구의 발목을 붙잡은 셈이다.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보인 모습을 두고도 배구 팬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회가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여자배구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팬들은 계단과 통로까지 서 있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관람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오 회장을 비롯한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경기 장면이 가장 잘 보이는 대형 귀빈석 단상에 비치된 고급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경기를 관람했다.

일부 배구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당시 배구협회 관계자들의 '귀빈석'을 두고 '옥황상제석'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귀빈석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팬들에게 제공하는 프로 스포츠계의 최근 추세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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