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 시축에 나선 가수 치타와 경기장을 메운 23,913명의 관중

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 시축에 나선 가수 치타와 경기장을 메운 23,913명의 관중 ⓒ 이근승


지난 23일 오후 7시, 2만3913명이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3주 전 맞대결에서 박주영의 극적인 결승골로 승리(2-1)를 거머쥔 FC 서울. 올 시즌 첫 맞대결 승리(1-0)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울분을 삼켜야 했던 전북 현대. 슈퍼 매치 못지않게 K리그 최고의 더비로 떠오르고 있는 '전설 매치'를 보기 위해서였다.

2만여 팬들의 눈길은 양 팀의 최전방으로 향했다. 데얀을 밀어내고 선발 자리를 차지한 박주영과 프리킥 능력을 뽐내며 팬들을 놀라게 한 김신욱이 다시 한번 맞대결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를 구원할 스트라이커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박주영과 김신욱, 이 둘은 3주 전 만남에서도 득점을 주고받았던 터라 팬들의 기대는 더 올라가 있었다.

치열함을 넘어서 거칠었던 전반전

김신욱을 앞세운 전북이 기선을 제압했다. 김신욱은 이동국의 패스를 받아 헤더를 시도하며 상대 골문을 위협했고, 서울의 중원을 책임진 고요한과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며 경기장을 후끈 달아 올렸다. 전반 8분에는 상대 수비가 우물쭈물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슈팅을 시도해 서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4분 뒤에도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며, 득점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박주영은 신인이라 볼 수 없는 '괴물' 김민재에게 완전히 묶였다. 김민재는 189cm의 높은 신장을 앞세워 공중볼을 장악했고, 빠른 발을 이용해 박주영의 움직임을 사전 차단했다. 서울의 공격 과정이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고 길게 연결하는 볼이 많았던 만큼, 박주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주세종의 퇴장 판정에 강한 불만을 표현하는 서울 벤치

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주세종의 퇴장 판정에 강한 불만을 표현하는 서울 벤치 ⓒ 이근승


김신욱과 박주영에게 쏠린 시선은 주세종이 돌렸다. 경기 초반 김신욱과 고요한의 신경전, 전반 17분 정혁과 윤일록의 충돌 등 두 팀은 치열함을 넘어 거칠게 부딪혔다. 절제가 필요해 보였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그라운드는 통제할 수 없었다. 결국,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이 터졌다.

전반 24분, 정혁과 주세종이 볼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이며 충돌했다. 서울의 역습을 저지하려던 정혁이 팔꿈치를 사용해 주세종을 밀쳤고, 화가 난 주세종은 빙그르 돌며 정혁의 얼굴을 손으로 가격했다. 심판은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 확인 없이 주세종에게는 퇴장을, 정혁에게는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줬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전북은 서울을 몰아붙였다. 이승기의 크로스가 이동국의 전매특허인 발리슛을 만들어냈고, 이재성의 순간적인 헤더를 이끌어냈다.

서울은 전반 막판 박주영의 프리킥 슈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격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유효 슈팅은 0개였고, 긴 패스에만 의존한 공격 전개 과정은 답답했다. 주세종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는 황선홍 감독뿐 아니라 2만여 서울 팬들의 마음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아시아 챔피언의 '닥공'입니까

후반전이 시작되자, 이재성의 드리블이 서울 수비진을 흔들었다. 새벽과 오전에 내린 비로 미끄러워진 잔디 상태가 아니었다면, 번뜩이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후반 5분에는 김진수의 크로스가 김신욱의 발을 거쳐 이동국의 슈팅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후반 9분, 우측면에서 볼을 잡은 김진수가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가는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김신욱이 헤딩슛으로 연결했으나 골문을 살짝 벗어났다. 전반전과 달리 공격에 치중하기 시작한 김진수, 전반전 발리슛에 이어 크로스바를 강타하며 영점을 조준한 이동국, 위력을 더해가는 김신욱 등 분위기는 전북의 '닥공'이었다.

곧바로 선제골이 터졌다. 후반 13분, 김신욱이 측면으로 빠져들어 가던 이동국을 향해 패스를 연결했고, 이동국은 질주와 함께 크로스를 올려줬다. 서울의 골문을 지나치던 볼이 교체 투입된 에델의 머리에 맞았고, 이를 달려들어 온 이재성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와 FC서울의 경기. 후반전 전북 이동국이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와 FC서울의 경기. 후반전 전북 이동국이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전북은 윤일록의 예리한 슈팅과 오스마르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막아낸 뒤, 또다시 득점 사냥에 나섰다. 후반 24분, 김신욱과 볼을 주고받은 에델이 스피드를 뽐내며 질주했고, 김진수의 크로스와 이승기의 패스를 거치며 에델의 슈팅까지 이어졌다.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빼앗아온 전북. 두 번째 득점 사냥은 시간문제였다.

후반 32분, 김진수가 같은 라인에 있던 이동국을 향해 낮고 빠르게 볼을 연결했고, 이동국은 에델에게 볼을 내준 뒤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에델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동국에게 재차 볼을 내줬고, 이동국은 양한빈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완벽한 득점으로 마무리했다.

전북은 경기 막판 데얀에게 만회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3주 전 결과에 대한 복수에 성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이동국

2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3라운드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이동국 ⓒ 이근승


상암벌을 수놓은 두 '전설', 이동국·데얀

경기 직전까지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당겼던 김신욱과 박주영이었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K리그의 살아있는 두 전설, 이동국과 데얀이었다.

사실 이동국의 선발 출전에는 약간의 행운이 따랐다. '에이스' 로페즈가 직전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며 '전설 매치'에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은 기존의 원톱이 아닌 투톱 카드를 꺼내 들었고, 김신욱과 함께할 선수로는 에두가 아닌 이동국을 선택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와 FC서울의 경기. 후반전 서울 데얀이 팀 첫번째 골을 넣고 빠르게 중앙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와 FC서울의 경기. 후반전 서울 데얀이 팀 첫번째 골을 넣고 빠르게 중앙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으로 38세, 대한민국에서는 선수보다 코치가 더 어울릴법한 나이. 하지만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데얀과 K리그의 역사를 써나가던 시절이나 현재나 변함이 없다. 전성기를 구가하는 김신욱과 올 시즌이 선수 인생의 마지막이라 천명한 에두에 비해 출전 시간은 훨씬 짧지만, 강렬함은 여전하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동국은 절묘한 위치 선정과 한 박자 빠른 발리슛으로 감각을 확인했고, 날카로운 슈팅으로 크로스바를 때리며 영점을 조준했다. 노련한 공간 침투에 이은 크로스는 이재성의 선제골에 힘을 보탰다. 서울 수비 4명이 둘러쌌던 공간을 패스와 움직임으로 뚫어냈고, 득점까지 터뜨렸다. 그가 왜 K리그의 전설이며, 불혹을 앞두고도 국가대표팀 발탁이 거론되는지, 이 한 장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끝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데얀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끝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데얀 ⓒ 이근승


이동국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데얀이다. 오는 27일이면, 만으로 36세가 되는 데얀도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시즌 14호골을 터뜨리며, 득점 순위 2위로도 올라섰다. 19일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해트트릭까지 작성하며, 자신이 주전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증명했었다.

이동국이 날아오른 날, 데얀도 자존심을 세웠다. 후반 21분에서야 박주영 대신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데얀의 능력을 확인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데얀은 페널티박스 부근뿐 아니라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와 연계에 신경 썼고, 측면의 윤일록과 이상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실제로 서울의 공격은 데얀의 투입 이후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멋진 헤딩골로 서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 것도 데얀이었다.

전설이라 불리는 두 사나이, 이동국과 데얀을 보면 안다. 인간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지만, 클래스는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FC서울VS전북현대 이동국 데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