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달밤책장
 달밤책장
ⓒ 달밤책장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달밤책장의 운영자 두 분이 아주 지친 얼굴을 하고선 이후북스를 찾아왔다. 달밤책장은 부여에 있는데 부여와 서울을 수시로 오고 가니 이 더운 여름에 지칠 만도 하다.

각각 아이스 커피와 뜨거운 커피를 시켜놓고 한 모금에 한숨 두 모금에 두 숨을 내뱉으니 나도 덩달아 지칠 뻔 했지만 사실 난 힘을 얻었다. 둘은 남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건 부여의 에너지, 라고 하고 싶지만 아니다. 책방의 에너지, 라고 하고 싶지만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본 에너지는 뭘까?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작기만 한 게 아니라 개성 있는 서점. 서점보다는 책방이란 이름을 걸고 독립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독립책방으로 불린다. 성격에 맞게 큐레이션 된 책과 독립출판물을 취급하기도 한다.

독립책방이라고 특별히 뛰어나거나 앞선 구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주목 받고는 있다. 독립책방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대답하는 말이 하나 있긴 있다. 주인장 제멋대로 운영하는 게 독립책방이야.  

제멋대로 운영하는 게 아무렇게나 대충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정혜윤 작가의 <사생활의 천재들>에는 '어떤 사람으로 죽고 살아야 하는지조차 이미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저항군이 되자'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의 저항군을 나는 독립으로 바꾸고 싶다. 책과 책방, 독자가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게 아닌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독립 말이다. 내가 달밤책장의 운영자들에게서 본 것은 독립의 에너지다. 아주 제멋대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달밤책장 소개 그림
 달밤책장 소개 그림
ⓒ 달밤책장

관련사진보기


이름도 예쁜 '달밤책장'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부여군 백마강 달밤 야시장에 가면 볼 수 있다. 대부분 먹거리를 취급하는 야시장에서 유일하게 독립출판물을 판다. 독립출판물 <자립탐구생활>을 만든 '지혜문고'와 <일상의 살인>을 펴낸 '우세계', 두 독립출판 제작자가 운영하고 있다.

한여름 야시장, 떡볶이와 녹두빈대떡과 불꽃 오징어를 파는 곳에서, 책! 책! 책! 그것도 독립출판물을 판다니! 와 진짜, 안 봐도 쓸쓸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아니 아니 용기가 대단하다. 아니 아니 밥은 먹고 다니냐? (먹긴 잘 먹는 것 같더라)

달밤책장은 책만 파는 게 아니라 회원들을 모집해 독립출판물을 대여해준다. 회원이 되면 계속 독립출판물을 빌려볼 수 있으니 이득이고 달밤책장은 꾸준히 이용하는 독자들이 생기니까 좋다. 독립출판물을 알리려는 취지도 좋고, 수익금을 (아직 미미해서 없지만) 제작자들에게 돌려주는 의도도 무척 훌륭하다(이런 시도는 공공기관에서 보고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달밤책장 프로젝트의 시작과 운영기를 작은 'zine' 형태로 제작해서 판다. 그것도 수제 바인딩으로 손수 만들어서 말이다. 한마디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수시로 서울에 올라와 독립출판물을 구입하는데 제값에 사서 제값에 팔기도 한다(아놔, 돈 벌겠다는 거야?).

많은 책방이 그렇지만 책만 팔아서 수익을 내는 것이 참 힘들다. 달밤책장도 수익을 바라고 야시장에서 불꽃오징어와 같이 있는 게 아니다. 독립출판물이란 문턱 없고 경계 없는 책을 알리고 독립출판제작자로 나름의 길을 개척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수익이 없는 게 당연한 결과는 아니다. 우리는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고양이 밥 주고 전기요금 내고 병원비도 내고 옷도 사 입어야 하니까. 달밤책장이 힘을 내고 유지하기 위해선 백마강 달밤 야시장에서 불꽃오징어만큼 책이 많이 팔려야 한다. 판매왕이 되는 것이다!

달밤책장 모습
 달밤책장 모습
ⓒ 달밤책장

관련사진보기


독립출판물과 독립책방에 '독립'이란 말이 붙었지만 누구도 독립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는 없다. 독립을 외치지만 그게 혼자서 섬처럼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제멋대로 움직여도 다양한 효과는 발생되기 마련이다. 책이 팔리면 책방과 제작자 창작자에게 판매금이 돌아가고, 다시 책을 제작하고, 독자는 새롭고 다양한 책을 또 읽을 수 있다. 책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이렇게 여럿이 얽혀 있다.

독립출판물도 있고 독립책방도 있으니 독립독자가 되어보자. 그게 독립출판물을 읽고 독립책방을 찾아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역시 내 식대로 말하자면 제멋대로 책을 읽는 독자일 텐데, 그렇다면 베스트셀러에만 솔깃하지 않는 것이다.

익명으로 존재하는 독자가 아닌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독자. 불꽃오징어 옆에 있는 작고 이상한 책에 손 내밀 준비가 된 독자. 독립독자가 많아질 때 (슬프지 않고) 멋진 달밤책장도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결론은 백마강 달밤 야시장 가면 달밤책장에 꼭 들리기! 꼭 책 사기! 회원 가입하기!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황부농'이라고 부릅니다.



태그:#달밤책장, #이후북스, #독립책방, #책방일기, #독립출판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