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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 동이 튼다 순례자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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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이층침대에 뉘어져 있는 내 몸뚱어리가 낯설었다. 침대 아래에선 순례자들이 가방을 싸고 있었다.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켰다. 새벽 다섯 시였다. '내 코골이 때문에 깬 건가?' 끼익,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 안이 고요해졌다.

화들짝 깼다.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들었나 보다. 침대에서 내려와 휴대폰을 보니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세 명은 떠났고, 두 명은 자고 있었다. '순례자가 많아지고 있으니 일찍 출발하라'는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자의 귀띔이 떠올랐다. 늦으면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퍼뜩 짐을 챙겨서 위층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주방 입구의 나무 문틈 사이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방 문을 열었더니 천국의 문이 열리듯 빛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눈을 비비고 있는 내게 주인 할머니가 다가왔다.

"커피 마실 거야? 카페오레? 우유 넣을 거야?"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 모든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가 가득 담긴 국그릇이 내 앞에 왔다. 흠칫 놀라며 할머니를 슬쩍 보니 '빵, 저기 있으니까 가서 먹어'라는 얼굴로 식탁을 가리켰다. 이미 식탁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헤헤. 슬쩍 웃어 보이고는 식탁으로 갔다.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잘 구워진 빵에 잼을 잘 펴 발랐다.

"잠은 잘 잤어요?"
"아, 네!"

어제저녁을 함께 먹었던 영하 형님이었다. 큰 형님도 옆에 있었다.

"다 먹으면 저기로 나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같이 가잔 말인가? 1초, 멈칫했다. 걱정됐다. 한국인이고, 남자고,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한국 룰'을 따르게 된다. 다른 말로 '예의'라고 하는데, 그것은 '한국식 정'을 느끼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벗어던지고 싶은 무언가다.

"네, 좋죠!"

1초 상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대답만큼은 시원하게 했다. 뭐 안 될 거 있나? 까미노에 온 만큼 이것저것 재지 않기로 했다. 흘러가는 대로 맡겨보자!

일상의 아름다움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출발이다!
▲ 야고보의 문 이제 출발이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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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의 문은 내가 걷기로 한 프랑스길의 시작점이었다. 순례자 70%가 프랑스길을 선택한다고 했다. 사람 많은 곳은 싫었지만, 계획을 짠다고 골치 아프기는 더 싫었다. 북쪽길을 갈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프랑스길은 사람이 많은 만큼 순례자를 위해 잘 갖추어진 길이다. 나처럼 홧김에 산티아고를 온 사람에게 딱 맞다.

"다들 이런 거 하더라? 너도 해봐."

영하 형님이 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형님은 서른아홉, 내 나이 때에는 일만 하다가 유럽 여행은 처음 나왔다고 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며 걱정을 태산같이 하던 형님이 설레하는 모습을 보니까 웃음이 났다. 큰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갖다 대며 사진을 찍어댔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미소는커녕 서로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것조차 보기 힘들었겠지? 여행의 시작은 누구나 설레게 만든다.

출발 전 설렘은 모두가 같다
▲ 다들 이런 거 하더라? 출발 전 설렘은 모두가 같다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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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많이 걷기로 했다. 내 몸을 혹사해야 잡생각이 얼른 달아날 것 같았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았다. 하루에 30~40km씩 27일 안에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보통 32~34일로 일정을 잡는다.

마을 끝에 있는 스페인의 문을 통과하니 시작부터 오르막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스팔트 길이었다. 두 손에 든 스틱을 앞뒤로 저으며 큰 형님이 속도를 냈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하나, 둘, 하나, 둘, 후, 하, 후, 하'하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잠시 후 영하 형님 마저 속도를 냈다. 설레는 마음에 힘이 나는 걸까,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질일까. 내 걸음은 이미 다른 순례자들보다 빨랐음에도 형님들을 쫓아갈 수 없었다. 16kg짜리 가방이 벌써 나를 짓눌렀다.

'이 가방을 메고 완주할 수 있을까?'

자만에 가까웠던 자신감은 시작과 동시에 수그러졌다.

그동안 해를 볼 시간이, 여유가 없었다
▲ 해가 이렇게 이뻤나? 그동안 해를 볼 시간이, 여유가 없었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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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해 뜨는 거 봐라"

뒤를 돌아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집 뒷산 정도 되는 높이에서 보이는 해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를 일이었다.

"해가 원래 저렇게 아름다웠나?"

뒷걸음질 치며 해를 한참 바라봤다.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해가 원래 아름다웠냐는 질문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내가 해를 이렇게 바라본 적이 언제였나?'라고 묻는 게 마땅했다.

지금처럼 자리에 딱 멈춰 서서 눈썹을 치켜뜨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뚫어지라고 해를 감상한다면 어떤 날의 해든 멋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천천히 가시오
▲ 까미노를 지키는 수호신 천천히 가시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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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내 발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천천히 가'

이 달팽이가 까미노를 지키는 수호신은 아닐까? 마음 급한 순례자들을 달래주는! 고개를 드니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랑거렸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흘러 들었다. 일상의 아름다움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유, 그것은 까미노가 내게 준 첫 선물이었다. 그래, 내 주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자.

전봇대 마저 아름답다는 사실
▲ 주위를 둘러보면 전봇대 마저 아름답다는 사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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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다보면,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 부옌 까미노!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다보면,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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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답은 없다

"올라! 부옌 까미노"

헉헉대다가도 인사 한 방이면 힘이 났다. '안녕! 좋은 길 되세요' 이 길 위에서는 누구나,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를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았고, 물 받다가 그 누군가와 다시 마주치면 또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겨울 법도 한데 누구 하나 귀찮은 표정 짓는 순례자는 없었다. 인사가 지나간 뒤엔 얼굴에 웃음이 머물렀다. 그것은 격려였고, 응원이었고, 혼자가 아니라는 재확인이었다. 내 얼굴에 웃음이 머물러 있는 게 어색했다.

피레네는 예술이었다. 양옆이 탁 트여서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졌다. 긴 산맥을 한눈에 굽어보다 보면 가슴이 뻥 뚫렸다. 넓은 초원이 산 전체에 깔려 있어 중간중간 소나 말, 양 떼가 그림처럼 걸려있었다.

피레네에서 굽어다보면 보이는 물안개는 장관이다
▲ 아침에 끼는 물안개 피레네에서 굽어다보면 보이는 물안개는 장관이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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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뿐만 아니라 말과 양 떼가 보이면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 소가 산 중턱에 걸려있네 소 뿐만 아니라 말과 양 떼가 보이면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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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걷는 방향 반대로 불어 걷기가 어려웠지만 그 덕에 선선했다. 기분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가방의 무게를 잊고 걸었다. 가방이 무거워질 때쯤 시세 언덕이 나왔다.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피레네를 무사히 넘을 수 있게 해주세요" 시세 언덕에서 만난 성모자상, 종교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기도를 하게 된다.
▲ 비아꼬레 성모자상 "피레네를 무사히 넘을 수 있게 해주세요" 시세 언덕에서 만난 성모자상, 종교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기도를 하게 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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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답답해서 왔는데, 나이가 더 들어도 답은 없나 봐."

어느새 영하 형님이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아까 헉헉거리면서 쉬고 있는 걸 앞질러 왔었다.

"오는 길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혼자 걷고 계시더라고, 나이가 있으시니까 엄청 천천히 걸으시는 거야, 왜 걸을까 왜 걸을까, 할머니 뒤를 따라서 걸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

영하형님
 영하형님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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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답이 없다? 이 말이 마음에 다가와 꽂혔다. 머리가 희끗한 순례자들이 언덕을 지나 쉬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까미노를 걷기 전에는, 이 길 위엔 나처럼 방황하는 20대가 많을 거로 생각했다.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길이니까, 물론 고민도 많을 테니까.

좀 놀랐다. 30, 40대 물론이고 50, 60대 순례자가 더 많았다. 나이가 들어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그렇게 많은 걸까? 걷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도 않을 텐데 왜 이 길을 찾았을까? 그들의 사연을 다 알진 못했지만, 그들이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위안이 됐다.

걷고 있는 뒷모습을 보다보면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 순례자의 뒷모습 걷고 있는 뒷모습을 보다보면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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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까?' 항상 조급하고 불안했던 날들, 나만 아무런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기분, 실체조차 뚜렷하지 않은 걱정들… 답은 없다.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짐은 욕심의 무게였다

"부옌 까미노!"

북유럽인 특유의 허스키함이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벤자민과 소피아는 핀란드에서 온 커플이었다. 그들은 유쾌했다.

"핀란드에는 산이 없어, 트레킹은 이번이 처음이야."
"뭐? 첫 등산이 피레네라고?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걸어?"
"사실 나 죽을 거 같아, 그냥 걷는 거야."

둘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벤자민은 서른 살, 소피아는 스물 네 살이었다.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뭐야?"
"걱정? 음… 어… 딱히 없는데?"
"뭐? 어떻게 걱정이 없을 수 있어?"
"아냐, 미래에 대해 걱정은 해,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 너네 북유럽에서 왔지."

북유럽이 행복도가 높다는 말, 익히 들어 알았지만 직접 '걱정이 뭐야?'라는 반응을 접하고 나니 괜한 소외감이 들었다.

"그럼 여긴 뭐하러 왔어?"
"2주 정도 휴가가 생겨서 왔어, 모험하는 것도 좋아하고, 역사적인 곳도 좋아해서 여길 왔지."

부러움도 잠시, 둘의 속도에 맞춰 걷다 보니 발가락이 아팠다. 신발이 옥죄었다. 멍이 들면 큰일이었다. 결국, 둘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오르막이 점점 가팔라졌다. 가방이 점점 날 뒤로 잡아당겼다. 허리를 숙여 꼬부랑한 자세로 걷다 보니 체력이 훅하고 떨어졌다. 오르막이 꾸준해 체력 회복이 안 됐다.

숨이 차고 어깨가 아팠다. 땅만 보고 걸었다. 땀에 흠뻑 젖으니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잡생각이 싹 달아났다. 똥 같은 생각을 비워버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목적을 달성할 줄은 몰랐다. 걷기 시작한 지 5시간이 째였다. 기분 좋아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도착하면 짐부터 버려야겠다'

짐의 무게는 욕심의 무게라고 했던가, 내 욕심이 너무 많았다. 16kg짜리 배낭을 메고 800km를 걸을 엄두가 안 났다.

마침내 수풀 사이로 오늘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마을이 보였다. 예스! 론세스바, 예스! 기쁜 마음에 실없는 소리가 나왔다. 옆에 걷고 있던 헤더가 싱긋 웃었다. 미국에서 온 헤더는 할아버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 마이크가 맞장구를 쳤다.

"하하, 그렇지, 론세스바, 예스! 피레네를 넘고 난 기쁨이여!"

첫날부터 발톱에 든 멍

산을 타고 내려와 보이는 마을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 드디어 론세스바예스! 산을 타고 내려와 보이는 마을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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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지만 200명을 수용하는 공립 알베르게였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자리가 넉넉했다. 침대를 배정받자마자 짐을 싹 다 꺼냈다.

필요 없는 걸 쭉 훑었다. 여분의 옷과 양말 그리고 여행하면서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버렸다. 1kg이 줄었다. 더 줄이고 싶었지만 요가 매트와 매일 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져온 삼각대는 아직 욕심이 났다. 물론 노트북과 카메라는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산티아고를 오기로 하고선 한국으로 짐을 좀 보냈고, 생장에 도착해서 산티아고로 짐을 보냈는데 아직 15kg이라니 조금 억울했다. 짐이 많지도 않아 보였다. 도저히 줄일게 보이지 않았다.

악! 씻으려고 양말을 벗는 데 신음이 났다. 새끼발톱이 아팠다. 결국, 멍이 들어있었다. 양쪽 모두다.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겁이 덜컥 났다. 체력이 떨어지면 쉬었다 가면 되지만, 발톱이 빠지면 중도 포기해야 할 지도 몰랐다. 자존심이 상했다.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발톱에 멍이 들다니!

'내일이면 괜찮아 질 거야'

론세스바예스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얼른 돌아가서 쉬자...
▲ 성령의 소성당 론세스바예스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얼른 돌아가서 쉬자...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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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보이기 싫어서 모른 체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신발을 다시 신는데 발톱이 본격적으로 아팠다. 의식해서 그런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더 발을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순례자를 위한 저녁 미사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지금이라도 갈까?' 싶었다. 앞으로 얼마나 힘들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27km 걸었는데도 힘들었다. 앞으로는 더 많이 걸어야 하는데 걱정이 됐다.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2017년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걸어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론세스바예스, #피레네, #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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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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