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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희망연대는 지난 12일 서울 명동향린교회와 21일 경기도 안산 피움카페에서 '평양시민' 김련희씨를 초청해 '평양 아줌마의 이북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는 두 번의 강연 모두를 들었다.

김련희씨의 명함을 보면 주소지가 2개다.

김련희씨 명함 앞뒷면
 김련희씨 명함 앞뒷면
ⓒ 라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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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서울 연락처이고 또 하나는 평양 연락처다. '평양시 모란본구역 긴마을 1동 17반 7층 3호'.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평양시민'이다. 김련희씨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 양쪽에 주소를 두고 있다.

영문으로 된 뒷면에는 서울 주소만 있다. 이 김련희씨는 남한보다는 세계가 더 주목하는 평양 아줌마다. 김씨처럼 평양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이제까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북한 소식에 목말라 하는 남한과 세계 언론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얼마나 못 살고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먼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련희씨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한마디로 '신선'하다.

김씨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만들어야 한다. 당국의 가이드 라인대로라면 연예인 못지 않은 방송인이 되어 고정 출연을 하며 부와 명예를 쌓는다. 그러나 김씨에게는 그런 신기루 같은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 비용(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돈)을 제하면 빚쟁이가 되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자본주의 구렁창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김씨는 북한 인민들의 생활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북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벌거벗고 떠는 을씨년스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사연과 정으로 얽힌 사람들과 이웃과 마을들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잘못하는 것까지 잘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저 사람이 북한에 다시 가면 혼나지 않을까 싶은 말도 서슴없이 한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통화도 한다고 한다. 김씨는 잘못해서 남한에 왔고 다시 평양으로 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이 알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김련희씨의 강연 모습
 김련희씨의 강연 모습
ⓒ 라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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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씨는 196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49세다. 6년 전 신병 문제로 중국에 나갔다 탈북 브로커들의 속임수에 걸려 원치 않았던 남한 행을 하게 된다. 남한에 도착한 후 북한으로 다시 돌려 보내 달라고 애원했으나 국정원은 수개월간 감금으로 답하고 남한 시민권을 갖게 한다.

남한 사정을 미처 알지 못해 여권을 내고 중국을 통해 평양으로 가려고 시도했으나, 여권 발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밀항을 준비한다. 물론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게 북한의 가족 생각에 가슴만 태우던 김씨는 통일단체들과 닿게 돼 자신을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게 된다.

국내외 언론도 김씨의 사연에 흥미를 보이며 널리 보도해 이제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김씨의 안타까운 상황은 가슴 아프지만, 인터뷰 때마다 북한 생활에 대한 질문은 빈번해졌고 김씨는 그런 면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제 김씨는 따끈따끈한 북한 이야기를 하는 인기 강사가 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안산강연을 마치고 모두 통일을 외치며 김련희 씨와기념촬영
 안산강연을 마치고 모두 통일을 외치며 김련희 씨와기념촬영
ⓒ 라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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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알테스 슈타트하우스에서 '신 베를린 선언'을 했다. 사실상 조건 없는 평화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한편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 등의 전제조건으로 '집탈북 북한식당 여성종업원 12명'과 김련희씨의 송환을 내걸어 왔다.

쉽지는 않겠지만,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고집쟁이 평양 아줌마 김련희씨의 소원 성취에도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김련희씨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에 청중 한 분이 질문을 했다.

"김련희씨는 남한자본주의사회에서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제 평양으로 돌아가시면서, 그래도 남한에서 가져갈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었일까요?"

김씨의 대답이 이랬다.

"남녘 동포들의 동포애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려운 처지에도 나를 일으켜 세우고 앞길을 헤치고 나가게 한 것은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북에 가게 된다면 그 따뜻함을 가슴에 안고 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련희씨에게 좋은 앞길이 열리기 바랍니다



태그:#김련희, #평양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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