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문화재단이 개최하려던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거창한 여름연극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창문화재단이 개최하려던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거창한 여름연극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 거창문화재단


같은 시기 같은 이름으로 비슷한 장소에서 개최 예정인 두 연극제가 결국 법원의 판단으로 한쪽의 이름이 바뀌게 됐다. 기존 민간연극제가 했던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첫 연극제를 하려던 '관변연극제'는 개막을 코앞에 두고 큰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일부 극단들은 민간연극제를 강탈했다는 주장에 호응하는 듯 관변연극제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29회를 맞는 민간연극제와 올해 첫 막을 올리는 관변연극제의 충돌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관련기사 : 29년 역사의 연극제, 왜 두 동강이 났나)

법원, 거창군과 문화재단은 거창국제연극제 이름 쓰면 안 돼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0민사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거창국제연극제'를 주관하는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가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를 주최하는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서 민간연극제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이름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은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20일 '기존 결정을 인가한다'며 앞서 내린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거창국제연극제' 부분이 공통돼 외관, 호칭, 관념이 동일하거나 유사하고, 같은 기간에 동일 지역인 경남 거창군에서 개최하는 같은 성격의 연극제라는 점에서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정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거창군에서 주최하는 연극제는 제29회 연극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29주년을 맞는 거창국제연극제'라는 취지로 공고하기도 했다"며 민간연극제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는 신문, 인터넷, 우편물, 플래카드, 티켓, 시설물 등에 이름을 쓸 수 없게 됐고, 결국 행사를 1주일 남겨 놓고 '거창한 여름연극제'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관변연극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참가하는 극단들도 부담을 갖는 모양새다. 한 연극인은 "거창군에서 하는 연극제가 예산이 많다보니 형편이 어려운 극단 입장에서는 참가는 해도 마음이 편치는 않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결정이 난 만큼 관변연극제가 개최를 포기하고 민간연극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마땅한데, 강행을 선택해 연극인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학로 연극계 인사들에 따르면 한국 대표 연극인인 이윤택 연출가의 연희단거리패나 극단 산울림 임영웅 연출가 등은 애초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불참으로 방향을 바꿨다. 박정자, 윤석화 배우 등도 두 개로 쪼개진 연극제에는 참석할 수 없다며 관변연극제 공연을 취소했다.  

민간행사 뺏어도 된다는 군청의 발상
 
 거창군의 관변연극제로 인해 기존 개최장소를 더나  인근에 마련된 극장에서 열리는 29회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군의 관변연극제로 인해 기존 개최장소를 더나 인근에 마련된 극장에서 열리는 29회 거창국제연극제 ⓒ 거창국제연극제


거창연극제를 놓고 갈라진 민간연극제와 관변연극제의 대립은 민간의 행사를 관에서 직접 운영하겠다는 거창군의 발상에서 비롯됐다. 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의 보조금 집행 등 문제와 운영 불투명성 및 군의회 요구 등을 직접 주관하게 된 이유로 들고 있지만 각종 감사 및 고소고발에 대해 사법적인 제재가 이뤄진 구체적 사례가 없는 데다, 투명성을 관리 감독해야할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책임은 쏙 빠져있다.

특히 지난 29년간 불모의 지역에서 연극인이 이뤄온 업적을 거창군이 문화재단을 앞세워 가로채도 된다는 발상 자체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행태로 '반문화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가 있다면 행정지도를 통해 개선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무리한 방법을 밀어붙인 탓이다.

연극인들이 수습대책위를 구성해 거창군에 호소하고 거창국제연극제도 공동개최를 제안했으나 거창군이 일축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같은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두 개의 연극제가 동시에 개최되는 상황이 되면서 혼란만 커지고 있다. 특히 거창군은 법원 판결로 인해 연극제의 이름을 바꾸면서 기존 준비해 놓은 시설물과 홍보물을 폐기해야 돼, 예산과 행정력 낭비에 따른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놓고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이겼으나 민간이 주최하는 거창국제연극제와 거창군이 주최하는 '거창한 여름연극제'가 두 개로 쪼개지면서 두 연극제 모두 부실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변연극제인 '거창한 여름연극제'는 거창국제연극제가 매년 열려왔던 휴양지 수승대를 차지했으나 연극인들의 기피로 프로그램이 빈약해졌다. 7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가장 큰 야외극장은 애초 공연을 예정했던 연희단거리패의 불참으로 첫 주말부터 공연이 없이 비는 날이 생겼고, 일부는 해외극단과 대학연극이 차지했다.

민간연극제인 거창국제연극제는 기존 장소에서 밀려나며 공간이 협소해졌고, 예산 지원을 못받게 되면서 전체적인 규모와 기간이 축소됐다. 수준급 높은 작품들을 엄선했지만, 연극제를 뺏기지 않고 자존심을 지킨 정도에 만족해야할 형편이다. 의리를 지킨 연극단체들은 열악한 환경이 더욱 어렵게 됐다.
 
 휴양지 수승대 야외극장에서 열리던 예전 거창국제연극제 모습

휴양지 수승대 야외극장에서 열리던 예전 거창국제연극제 모습 ⓒ 거창국제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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