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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0대 국정 과제를 이행하려면 모두 647건의 법령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자치경찰 관련 법률을 제·개정하고,"
"모니터링을 통한 도민 불편사항 제보와 자치입법의 제·개정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이번 제·개정에 따라 오는 9월부터…"

20일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들이다. '제·개정'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특히 언론과 국가 공공기관에서 많이 쓴다.

'가운데 점(·)'의 문법적 의미에 따라 해석하면 '제·개정'이라는 용어는 '제정 및 개정'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제정'과 '개정'은 한글로는 '정'자가 같지만, 어원적으로는 한자가 전혀 다르다. '제정(制定)'의 정은 '定'과 '개정(改正)'의 정은 '正'이다. 그러므로 '제정(制定)'과 '개정(改正)'은 절대 줄임말로 사용될 수 없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한자로 표기된 국회법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第84條(豫算案·決算의 회부 및 審査) ⑧委員會는 稅目 또는 稅率과 관계있는 法律의 制定 또는 改正을 전제로 하여…

第98條의2(大統領令등의 제출등) ①中央行政機關의 長은 法律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法律을 執行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規定한 大統領令·總理令·部令·訓令·例規·告示등이 制定·改正 또는 廢止된 때에는…

第112條(表決方法) ④憲法改正案은 記名投票로 表決한다.

위와 같이 헌법과 법률을 수정할 경우에는 '改正'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그 표기방식은 '制定 또는 改正'이나 '制定·改正'이라고 해야 한다.

단지 '제정'과 '개정'이라는 용어의 발음이  '-정'으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제·개정'이라는 용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편의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제·개정'이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커다란 웃음거리고 창피한 이야기다.

필자는 몇 년 전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제·개정 구분'이라는 기준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토록 한 바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대법원규칙 등의 제·개정 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여기에서도 '제·개정'이라고 사용되고 있다. 규칙 내용 중에도 '제·개정'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본래 법률 명칭이나 법률 본문에 '제·개정'과 같은 줄임말은 사용될 수 없도록 규정됐다. 이러한 일이 법률을 관장하는 대법원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필자는 전에 이 문제를 법원행정처에 연락해 지적했지만 여전히 수정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국회사무처를 비롯해 모든 공공기관 홈페이지마다 '제·개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언론사 기자들이 이 표현이 정확하다는 믿음으로, 더구나 줄임말을 쓰는 최근 추세를 타고 더욱 왕성하게 쓰고 있는 게 우려스럽다.

그간 필자는 여러 기관과 기자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지적하고 수정을 요청해왔지만, '제·개정'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워낙 일반화돼 있고 대세인지라 일일이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해 이 용어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개정'이라는 잘못된 말, 틀린 말, 제발 그만 사용하자.


태그:#제·개정, #법원행정처, #언론, #법제처, #가운데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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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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