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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 느껴지세요?"

이번에 전국 투어를 진행하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내어준 숙제였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느끼죠, 분명히 변했어요!'라고 대답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증거'를 찾겠다며 주변을 한참동안 두리번거렸네요. 그래서, 답을 찾았을까요?

저는 포항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차라리 독립시키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지역이에요. 저는 대선 당일, 포항시 남구의 개표소에서 참관인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개표 방송과 함께 쏟아지던 '지역에 대한 비난'에 화가 나서 '발끈'하다가도, 우리는 결국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마음이 답답했어요.

그날 이후로, 어느덧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두 달째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곳 '포항'에선 무엇이 달라지고 있을까요?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두리번거리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매일의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출근하기 싫은 몸을 깨워 간신히 출근시간을 맞추는 것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회의는 여전히 '적자생존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이고, 조직의 위계는 너무도 강고하여 '윗사람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지시'로 받아들여 집니다. 혹시라도 '이견'을 얘기하려면 엄청난 용기를 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모욕'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장면을 찍어대는데, 정작 일터는 1980년대의 <TV 손자병법>에서 보았던 장면들과 거의 다르지 않아요. 역시, 변화는 '느리고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청와대에서 포항까지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으니,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뉴스에 '희망'을 걸고 기꺼이 기다리는 중입니다.

2014년 새해맞이 봉하빵 나누기. 신년에 봉하마을의 노무현대통령 묘역에 다녀오면서 사온 봉하빵에 노란색 '민주주의를 위하여'를 붙이고, 동료들이랑 나누는데 얼마나 덜덜 떨었다구요. 이게 뭐라고! 그 동안 불안에 떨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ㅠ.ㅠ
▲ 새해맞이 봉하빵, 떨렸어요! 2014년 새해맞이 봉하빵 나누기. 신년에 봉하마을의 노무현대통령 묘역에 다녀오면서 사온 봉하빵에 노란색 '민주주의를 위하여'를 붙이고, 동료들이랑 나누는데 얼마나 덜덜 떨었다구요. 이게 뭐라고! 그 동안 불안에 떨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ㅠ.ㅠ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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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증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의 권력에 대한 '유착'도 대놓고 드러내서 하지 않는데, 현재의 권력에 대한 '변화'를 드러낸다? 그것은 '프로'가 아니죠. 대한민국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나만의 '보호색'을 장착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하는 사람인 것처럼 숨기며 지내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처세'로 받아들여지곤 하니까요. 괜히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드러내는 자에겐 수 많은 '편견'의 공격들로 위기를 느끼는 곳이, 대한민국의 '조직'이자 '사회'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하나의 색으로 오래 유지해 온 지역일수록 그런 '위험'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가족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하여 컵을 샀어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서, 노란색 리본을 붙이고는 동료들과 나눠가졌습니다. 물론, 이 때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았어야 했나요? 엉뚱한 논쟁에 쏟아부은 노력들이, 너무도 아깝습니다.
▲ 세월호 2주기 가족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하여 컵을 샀어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서, 노란색 리본을 붙이고는 동료들과 나눠가졌습니다. 물론, 이 때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았어야 했나요? 엉뚱한 논쟁에 쏟아부은 노력들이, 너무도 아깝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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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약해집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가 되어 고립되는 것이 너무 두렵거든요. 지난 9년을 보내면서, 저도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선거 때마다 '투표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것에도, 방에 세월호 리본을 붙여놓고 추모를 표현하는 것에도, 위계를 어기고 '나의 의견'을 얘기하는 행위 하나하나에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어요. 혹시라도 이런 행위들이 나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동안 제 행동도 점점 위축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정말 진지하게 '변절'을 고민하던 그때,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니까요! 아마 최순실만큼이나 놀랐을 겁니다, 바로 제가.

변화의 '증거'를 찾아다니던 며칠을 보내면서, 어쩌면,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된 후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더 이상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서 '위험'을 느끼지도, 오지도 않은 불합리를 먼저 걱정하여 숨어들지도 않아요. 당당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이 논의될 수 있는 테이블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두려움으로 덜덜 떨지 않고 내 의견을 표현하면서도, 그 자리가 어디이든 내가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민'으로 보호받고 있음에 안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질문 한 번만 다시 해주실래요?

"변화를 어떻게 느낄 수 있나요?"

"우선, 제가 SNS에서 '대한민국 청와대'에 좋아요를 눌렀어요! 제 자신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변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내가 자랑스러운건지,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망으로 비관하던 미래도, 희망을 갖고 '낙관 한 스푼' 정도는 더해도 좋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답니다.

그렇다고 뭔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하지만, 하루하루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은 더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게 어디예요! 쉽지는 않겠지만, '보호색'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멋진' 사람이 되어볼 생각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걸요.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나를, 이 나라의 국민을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다는 '믿음'이 있잖아요!"


태그:#일상 바라보기, #포항, #변화의 바람, #변화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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