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일전에 호박 군대의 화단 점령기를 올렸는데, 이번에는 그 후속편인 호박 2세 소식을 들려주고자 한다.

진격의 호박 군대는 거침없이 화단을 평정했다. 날이 갈수록 강력해져서, 지난번의 천둥과 번개, 빗줄기에도 살아남았다. 물론 피해가 있긴 했다. 비가 갑자기 쏟아진 탓에 줄기와 잎이 썩거나 곰팡이로 추정되는 허연 물질이 잎에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실의 아픔이 있었다.

화단에 버려진 호박에게서 태어난 새싹은 호박 일가 중에서도 단호박의 후손이었다. 이웃 할머니는 호박잎이 아주 큰 걸 보니 늙은호박이 될 거라 추측하며 흐뭇해 하셨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작년에 이 집에 와서 잡아먹고 남은 걸 버린 호박은 단호박, 애호박 뿐이었다. 늙은호박이 된다는 그 동글동글한 참호박은 애초에 없었던 거다. 나는 늙은호박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연약한 박하, 가지는 물론 어린 치자, 동백나무에, 나이 많고 키가 크지만 잎과 꽃은 조그마한 금목서가 그 늙은호박의 육중한 무게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게다가 키도 작은 내가 제아무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하더라도 그 호박을 따다가는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틀니를 하는 이웃할머니 입장에서는 하나 얻어서 겨울에 달달하고 따끈한 호박죽 써서 먹고 싶으신 마음일거라는 걸 이해하더라도. 언젠가 늙은호박 다듬다 손가락을 제법 베인 적도 있는 나로서는 역시 작은 단호박이 만만하다. 꿀과 계피가루 뿌려서 구워먹어도 맛있고.

암튼 그간 노오랗게 화사 미모로 성장한 호박꽃에게 중매하는 벌들이 제법 다녀갔다. 당사자끼리 혼담이 잘 이루어졌고, 그중에서도 성미가 급한 단호박들은 얼른 2세를 가졌다.

이 호박세계에서는 출산장려가 가장 최대의 국정과제이다 보니, 당연히 2세 소식을 전하는 호박만이 대접을 받는다. 야박하지만 어쩔 수 없다. 투자 대비 실적이라고나 할까.

실은 일전에 엄마가 호박이 너무 자라서 금목서랑 다른 식물들 괴롭히니, 호박이 열릴 것도 아니면 어서 없애자고 했다. 커봤자 치울 때 힘들다며. 이에 내가 좀 더 두고보자 만류했고, 그리고 1주일인가 언젠가 호박잎 쌈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주려고 호박잎을 따던 엄마의 눈에 열매가 보였다. 그 이후에는 천덕꾸러기에서 가끔 보양식으로 개똥도 챙겨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가지를 잡고서 옥상계단으로 향하던 호박 A가 있었다. 그와 반대로 고추와 감나무 묘목을 향해 가던 B에, 담을 타고 금목서를 사다리 삼아 하늘로 향하는 C. 그리고 박하네를 공격하며 빨래건조대를 넘보는 D. 치자와 동백을 잡고 레드오션인 금목서로 간 E와 동백에서 블루오션인 마당을 개척하는 중인 F까지. 어쩌면 금목서에서 뒤엉켜 그렿지 또다른 단호박도 있을 지도 모른다.

이들 중에서 A의 아기가 계속 내린 비로 그만 익사했다. 아주 동글동글 귀여웠는데... 비가 그친 후 발견된 아기 시신은 인근 화단에 묻어주었다. 본디 화단에서 태어난 삶이 잠깐 바깥 나들이하고 다시 회귀한 것이다. E의 아기는 비의 공격으로 추락사. 어디 있는 지 발견을 못했지만 어차피 화단 아님 절구 안이 전부이라 수습 포기.

그러다 오후에 고추와 방울토마토 사이에서 자라는 오이를 따려다 B의 아이를 발견했다. 제법 크고 완연한 진녹색의 단호박의 모습을 가졌다. 하긴 단호박 DNA가 어디 가랴. 경사스런 일이다.

그나저나 금목서 세계로 간 이들의 아기는 어지간히 크지 않으면, 무성한 호박잎과 금목서로 인해 도통 찾기가 어렵다.

내년에는 단호박보다 작은 밤호박을 먹고 씨를 버려야겠다. 참고로 밤호박이 아주 작은 체구임에도 몸값은 상당하다. 국수호박과 땅콩호박도 솔깃한데...

호박도 복권과 같아서 한 번 맛보니 중독성이 있다. 이번에 되었으니 다음에도 당첨될 지 몰라 하는 기대감이...

우리집에 단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

▶ 해당 기사는 모바일 앱 모이(moi)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모이(moi)란?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기사화 할 수 있는 SNS 입니다.
더 많은 모이 보러가기


태그:#모이, #밤호박, #단호박, #국수호박, #땅콩호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