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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시대가 걷히고, 바야흐로 '소통'과 '협치'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연일 협치를 내세우고 있는데, '협치'에 대한 이해가 서로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협치'는 기성 정치권의 협치, 즉 여야 협치를 전제로 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불통의 시대를 넘어서 협치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과제를, 제도 정치권 그들 사이의 '소통'으로 한정하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단언컨대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은 시민과의 소통과 협치에 있다. 촛불은 독선적인 구질서, 특히 위임받은 대리인이 주인행세를 하는 낡은 정치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통제하는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자는 염원이다. 즉 낡은 정치의 작동 메커니즘을 전환해 민주주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새 정부 초반 80%대의 높은 대통령 지지도는 시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에 대한 반응일 게다.

'협치'는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것

협치(協治, Collaborative Governance)는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로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선행하겠다"라는 말이다. 협치를 논할 때, 누가 누구와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치권 사이의 협치도 중요하지만, 정작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과의 협치, 즉 국가권력의 권한과 책임을 시민과 나누는 문제다.

새 정부의 협치를 논함에 있어, 서울시가 지난 6년 동안 진행해 온 민관협치의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첫 출근길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자문기구 통한 협치가 시정 핵심"이라고 밝혔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박원순 시장은 지난 6년 동안 '혁신과 협치'가 서울시정의 양 날개라며 줄곧 협치를 강조해 왔다. 또 "정책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해도, 협치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할 수 없다"라면서 민관협치를 위한 행정혁신에 매진해왔다.

민관협치와 박원순 프로세스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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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서울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청책), 민관이 함께 논의하여(숙의), 공동의 계획을 수립하고(계획),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조례·기구),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협치)이 일반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경제의 경우를 보면, 2011년 11월 30일 박원순 시장이 참여한 사회적기업 '청책'을 계기로 201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회적경제과'를 설치하고, 사회적경제 '종합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민과 관이 협력하여 추진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통해 이 약속을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2012년 7월 서울시 사회적경제 '민관정책협의회'라는 협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기구를 통해 서울시 사회적경제 정책을 민관이 '공동수립·공동집행·공동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 방식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또한, 2013년에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설치했고, 2014년에 사회적경제 '기본조례'를 만들었다.

도봉구 마을사회적경제센터.
 도봉구 마을사회적경제센터.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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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업 중의 하나가 사회적경제활성화 자치구 공간지원사업(사회적경제 클러스터)이다. 재정이 열악한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생적인 역량강화를 위해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내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상호 소통과 협력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하는 것으로, 현재 13개 자치구에서 사회적경제 클러스터를 조성했거나, 조성 중에 있다.

단순한 공간 지원사업이 아니라 기업들의 협력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고, 은평의 경우, 입주한 6개의 교육관련 사회적기업들이 모여서 토요학교 및 자유학기제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여 '은평상상학교'를 브랜드화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철학은 "소통과 협치를 통한 혁신"으로 메가시티 서울의 복잡·다기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이후 '광화문 1번가'는 서울시 정책을 벤치마킹한 사례로 보이는데, 아직은 시민의 제안을 받는 수준(청책)이다. 좀 더 획기적인 행정혁신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시민과 나누는 '협치'로 나아가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참여에서 권한으로, 진화하는 참여예산제도

용마폭포공원 내 위치한 책깨비 도서관 전경.
 용마폭포공원 내 위치한 책깨비 도서관 전경.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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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례를 더 꼽자면, 서울시 참여예산제도를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이 심사하고, 시민이 결정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시민들로부터 총 1만967건(3조2617억 원)의 사업을 제안받았고, 이중 심의를 거쳐 1993건(2406억 원)을 예산에 편성해 집행했다.

일례로 지난 2016년에 송노석 시민이 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한 '책개비 도서관'은 폐버스를 리모델링해 작은 도서관으로 재조성한 사례다. 이 사업에는 서울시 참여예산 1억 원과 자치구예산 1000만 원이 투입됐는데, 독서와 휴식 공간으로 주민들의 호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서울시는 제도를 개혁하여, 시민들이 제안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집행에 참여하는 협치형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30조 원에 이르는 서울시 전체 예산의 편성, 결산, 중기재정전략 등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서울시의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이원목 재정기획관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협치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시민이 단순히 공개된 내용을 알고, 예산에 대한 의견만 제안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됐고, "시민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목 재정기획관이 후배공무원들에게 협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사진 왼쪽). 그리고 2018년 서울시 보건의료 분야 예산워크숍(오른쪽).
 이원목 재정기획관이 후배공무원들에게 협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사진 왼쪽). 그리고 2018년 서울시 보건의료 분야 예산워크숍(오른쪽).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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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7월 11일 서울시 시민건강국이 주최한 '2018년 보건의료 예산 워크숍'에서는 100여 명의 소속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5명의 담당 과장이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10여 명의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담당 부서에서 1차 검토한 차기년도 예산 초안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조언을 들어 수정하고, 행정 내에서 조정과정을 거치고, 시의회의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책의 완성도와 수용성, 그리고 현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서울시의 정책이 완벽하다거나,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현재 서울시의 민관협치 현장에는 다양한 갈등도 있고, 여러 한계도 분명히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과 '원칙'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협치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자 원칙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정부의 '시민 협치', 문 대통령 결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향후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정운영 과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향후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정운영 과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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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분권형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개헌 이전이라도 권력의 의지만 있다면 자치와 분권을 위한 정책은 가능하다. 예컨대, 국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고, 중간전달체계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OECD가 각국의 사례를 분석하여 발간한 한 책자에 '성공적인 민관협치를 위한 10계명'이라는 게 실려 있다. OECD가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리더십의 민관협치에 대한 결단(정치인의 인식변화)'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 정부의 시민과의 협치는 그 누구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새 정부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와 뿌리 깊은 사회의 적폐들, 그리고 여소야대 정국 등 혁신과 협치가 쉬운 길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이다. 모쪼록 서울시가 엄혹한 시절에 어렵사리 시도해 온 '혁신'과 '협치'의 성공과 실패의 교훈이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되길 기대한다.

[지난 기사] 문재인이 배울 만한 박원순의 한 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강준님은 현재 서울시 협치총괄지원관입니다.



태그:#문재인, #박원순,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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