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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파밍 보이즈 영화 포스터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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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 장면, 젊은 청춘의 열정이 느껴진다
▲ 파밍 보이즈 영화 초반부 장면, 젊은 청춘의 열정이 느껴진다
ⓒ 파밍 보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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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진주지역 청년 3명이서 셀카봉을 들고, 단돈 30만 원으로 (비행기표 제외) 나선다. 일단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주로 워킹비자를 받아. 4개월동안  닥치는 대로 일해 겨우  4-5시간의 쪽잠을 자고, 1,500만원을 모아서 드디어 세계일주를 떠나게 된다.

2013년부터 "농업세계일주" 로드 무비 겸 기록 형식의 다큐 영화는 정말이지 통통 튀는 매력덩어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문턱에 들어선 나이 이십대 후반하면 대개의 경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수천통을 쓰고,  분주하게 움직여야 정상(?)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들은 '삽질 이력서'를 온몸으로 쓰고  '농업의 꿈'을 과감히 찾아 나섰고, 꼰대가 아닌 삶으로 정직함을 보여주는 세계의 농부들을 만나고 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땀으로 뒤엉킨 배고픈 청춘 3명이 가는 길은 너무도 오래 걸어 절룩거릴만큼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포옹이 있었고, '흥'과 '즐거움'이 있었다. 

또한 이들은 한국의 농업에 대해 묻고 있었다. 애초에 무일푼 청년들이 시골에 가서 농사 짓는 것이 가능한가? 또한 이러한 농업들이 지속가능한 구조들을 갖추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아마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농장을 찾아가고, 농업기관, 영성농업, 주변의 자원을 가지고 쳥년농부들을 찾아 나선 이들의 순탄치 않은 과정을 따라간다. 각 나라의 국가정책이 '농업'에 대해 갖는 긍지를 갖게 할 수도, 또 전혀 반대의 마음으로 농업을 '천대' 할 수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아 2009년 결혼과 동시에 경남 산청으로 귀농했다. 늦은 가을 조용남의 <도시여! 안녕>을 고래 고래 불러가며, 서울에서 모든 짐을 정리했다. 빼곡하던 높은 빌딩과 회색빛 그림자들이 서서히 걷히고, 산청ic에 들어서는 순간 황금빛 들판과 주황빛 심장처럼 빛나던 내 생애 잊지 못할 황홀한 풍경이다.

낡은 다마스 한켠엔 우리의 신혼짐과 백일이 막 지난 아이, 그리고 우리 두사람이 타고 있다.

그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일단은 자연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28살 이제 막 엄마가 된 나와 생명, 평화의 가치를 온몸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29살의 남편이 합심해 산청 작은 면소재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동네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늘 우리의 먹고 살 걱정을 했고, 핀잔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시골에서 뭘 하고 먹고 살거냐?' ,"사지가 멀쩡한데 왜 이렇게 사느냐?" 이 질문을 하루에 열번도 넘게 받게 되니, 없던 걱정이 생겨 막막함이 밀려 오기도 했다.

우리는 근처 공원의 널브러진 모과를 주워 모과차를 담기도 하고, 집 근처 '천내계곡'이란 곳에 가서 발도 담그고, 수영도 하며 자연의 선물을 만끽했다. 난생처음 소나무의 꽃 송화와 송진으로 발효차도 만들며,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기도 했다. 또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그렇게 '외지 사람'에서 이제 '동네 사람'으로 대해 주셨다.

얼마 가지 않아, 동네 어르신께서 작은 논과 매실나무 등이 있는 땅도 빌려 주셔서 이렇게 '성공적인 귀농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매실 수확 할 채비를 해놓고, 친구들과 함께 작업을 하려는데, 그 땅 주인 어르신의 큰따님이시라며, 자기가 매실이 필요하다고 하며, 막무가내로 매실을 가져가는사태가 일어났다. 우리는 그전에 주변에 미리 예약을 받아 둔 상태가 난감했다. 그런데 어쩌랴, 힘의 우위에 있는 그 따님이 원하는 데로 하면서도, 속이 썩었다.

남편이 모종을 내기 위해 씨앗을 심고 있다
▲ 남편과 아이 남편이 모종을 내기 위해 씨앗을 심고 있다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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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려면 땅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세금을 제외하고 현금을 만들 수 없는 처지였다. 남편은 겨우내내 칡을 캐서 칡차로 팔기도 하고 했지만, 땅을 살 수 있을 만큼은 큰 돈이 되진 않았다. 그런던 중  이웃 마을의 '마을사무장' 일을 봐주고, 월급을 받았다. 농사라 봐야, 남들의 반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자급을 위한 농사이다 보니,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 우리 먹을 것 정도 뿐이 안 되었다.

답답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어리숙한 초보 농사 둘이서 뭔가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큰 몫돈을 빌려 대출'할 엄두는 애초에 갚지를 못할 것이니 시도할 생각도 못했다.

비닐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다보니 우거지는 여름날의 잡초들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베테랑 농부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너무 게으른 농부'였고, 생명농업의 단어는 무색하리만치 교과서에만 있어, 그들과 우리 사이에 간격을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외로웠다, 헬렌니어링과 스콧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으며, 풍경처럼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급작스럽게 위암에 걸린 아버지 앞에 내가 내 놓을 수 없는 것은 그저 귀한 산약재와 주변에 용하다는 돌파리 의사들 소개 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현금이 없었다.

난생처럼 한 영혼을 키우는 일도 무척 힘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함께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했고, 가끔은 호사스런 치츠케이크와 크림 파스타도 우아하게 먹고 싶었다. 아이가 보는 뽀로로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취해 맥주도 한잔 하고 싶었던 숱한 밤이 지났다.

남편도 생명농업의 가치를 이해하고, 힘들더라도 이길을 함께 가줄 친구와의 막걸리 한잔이 눈물나도록 그리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두번의 겨울을 지나고,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무더위에 지치면 무작정 뛰어 들던 천내계곡은 이제 댐이 생겨 사라졌다. 그렇다고 귀농한 2년의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이제는 대봉감나무와 단감나무를 멀리서도 한 번에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마트에서 편하게만 먹던 검정콩이 사람 손 하나하나로 가려 낸 수고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른 봄이면, 냉이와 달래의 향긋함을 알게 해준 곳, 바로 시골이었다.

여전히 그리운 풍경들이 그곳에 있다. 산에서 잡았다며, 멧돼지 뒷다리 고기를 내어주던 이장, 찌짐을 기막히게 잘 구워 주시던 옆집 아줌마, 쌀이 떨어져서 어쩌지 하고 있는데, 떡하니 오늘 도정한 쌀 한가마니를 들고 나타난 농부 선배의 그 기막힌 타이밍을, '귀한거 업었네' 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 아이를 예뻐해 주시던 동네 할머니들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작은 면소재지에서 사무일을 하지만, 호시탐탐 시골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보며 살고 있다. 나이 마흔 전에는 다시 시골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남편에게 늘 말한다. 이제는 나 혼자 귀농하지 않겠노라고, 공동체가 살아있거나, 적어도 함께 아이들 키우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이 있는 곳에만 가리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제 이 영화를 보며 한가지 깨달았다. 이제 나이 마흔 여전히 통장잔고가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자연 안에서 살고자 애쓰는 청년들에게 기꺼이 우리가 너른 품이 되어 주고 싶다는 바램이 생겼다.

힘들지만 그렇게 손잡고 가다보면, 영화에서 노래 한 소절처럼 smail again!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살았던 약 3년의 시간동안 자연은 늘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조건없이 주었고, 우리는 이제 pay back! 자연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갚아 주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라고 간절히 외치는 청년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를 기획한 유지황군은 얼마전 00공무원들께서 이 영화를 단체관람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농업 세계일주를 끝내고, 당장 농사는 짓고 싶은데 막막해 모 농업 기관을 찾아가 청년 농부가 되고 싶다며 상의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단박에 작물부터 정해서 오라며, 다품종 농업은 절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 한참 먹먹했던 기억을 떠오른다고 했다. 유지황군은 이 영화를 공무원들이 보시고 나서는 '농사짓고 싶은 청년'들에게 좀더 따뜻하게 영농지도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짧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러그 우아한 가난뱅이(http://naver.me/5ksEHr8h)에도 중복 기재 합니다.



태그:#파밍보이즈, #청년농부, #지속가능한농업, #생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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