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조리실에서 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조리실에서 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밥하는 아줌마? 여기 와서 하루만 일해 보라고 하이소.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지... 우리는 매일 병을 달고 일을 하는데 그렇게 쉽게 말이 나오나 보지예? 그 말 듣고 단체로 국회에 올라가 항의하고 싶었으예. 욕밖에는 안 나옵니더."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만난 조리원들은 이언주 국민의당 국회의원이 근속수당 인상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학교 급식조리원들을 '밥하는 아줌마'라고 비하한 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비하 받는 급식조리원의 근무 형태가 궁금했다.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급식실에 들어가려면 당장 보건증이 필요했다. 대구 중구보건소에 가서 보건증을 발급받았다. 검진을 하고 보건증을 발급받는데 약 1주일이 걸린다.

지난 19일 오전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을 찾았다. 철창처럼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급식실로 들어갔다. 보건증이 없으면 대통령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까지 들으면서 조리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대구의 낮 최고온도는 35.3도였지만 조리실 내부 온도는 40도를 웃돌았다. 대형에어컨 4대를 가동하고 있었지만 에어컨 앞에만 찬바람이 나올 뿐 조리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학교의 급식실은 그나마 다른 학교에 비해 나은 곳이다.

학생 1300여 명과 교직원까지 포함해 14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조리원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준비를 하고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 11명의 조리원들은 바쁘지만 서로 맡은 일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조리실에서 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 급식조리실에서 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1분도 안 돼 온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우선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와 앞치마를 두른 뒤 1400인분의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주방 앞에 섰다. 달아오른 철판 위에 김자옥(가명)씨가 쉼없이 계란을 깨뜨렸다. 옆에 선 이혜정(가명)씨와 함께 뒤집개로 익어가는 계란을 쉴 새 없이 뒤집었다.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을까봐 몸을 철판에서 약간 뺐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몸이 철판에서 멀어지니까 자연스레 일이 더디게 진행됐다. 1분도 안 돼 온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자옥씨가 "불 가까이 가야지 몸을 빼면 우야노. 이렇게 서툴게 하면 시간 못 맞추잖아요. 차라리 일을 하지 말든지, 아니면 가까이 와야지"라고 핀잔을 줬다. 불 가까이 좀 더 다가가자 순간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숨이 막혔다. 200도가 넘는 철판 위에서 계란이 익어갔다.

계란후라이를 빨리 하려면 한 손으로 뒤집개를 달아오른 달걀후라이 끝에 대고 재빨리 뒤집어야 했다. 면장갑을 끼고 고무장갑을 다시 덧끼웠지만 손끝이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뜨거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계란을 뒤집었다.

위생복 안에 입은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조은희씨가 물을 한가득 담은 큰 그릇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은희씨는 "여기서는 너무 덥기 때문에 자주 물을 마셔줘야 한다"고 말했다.

약 30분가량 지나 계란후라이 요리 작업이 끝났다. 그동안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일을 한 탓인지 무릅 관절에 통증이 오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다리를 떼자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자옥씨가 옆으로 다가와 "우리가 다 하고 잠시 한 것뿐인데 벌써부터 게으름 피우려는 것 아니냐"면서 "우리는 이런 일을 매일 한다. 여기 일하는 조리원들 중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급식 준비가 마무리되고 약 15분가량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급식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조리원들은 잠시 휴게실에 앉아 입담을 나누었다.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급식을 조리하는 조리원의 얼굴에 연신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급식을 조리하는 조리원의 얼굴에 연신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일이 끝나면 병원으로 퇴근한다"

"이언주 국회의원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예. 사과를 하긴 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사과했다고 느껴지지 않아예. 여기 와서 하루만 일해 보라고 하이소.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자연스레 이언주 의원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왔다. 자옥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옥씨는 "우리는 한 사람이 아파서 병가를 내면 대타를 구해야 하는데 구하지 못하면 일이 더 힘이 든다"고 말했다.

은희씨가 맞장구를 쳤다. 은희씨는 어제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고 했다. 그는 "여기 일하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아프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혜정씨가 나섰다. 혜정씨는 "칼질을 많이 하는 날은 어깨와 손가락이 아프다. 짬밥을 옮기고 하다 보면 허리가 아파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면서 "퇴근할 때마다 '병원으로 퇴근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자옥씨는 손가락을 내보이며 "장갑을 아침부터 끼고 칼질을 하고 조리하다 보면 손에 땀이 나고 손가락이 아프다"면서 "손톱과 살 사이가 벌어져 병원에 갔더니 '조각박리증'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자옥씨는 또 눈을 가리키며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면서 눈으로 흘러내려 항상 눈이 충혈 된다"면서 "제대로 땀을 닦지 못해 힘들 때가 많지만 어쩔수 없다. 양손에 조리기구와 음식물 등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은영(가명)씨는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얼마 전 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는데 하루만 치료받고 바로 일을 하러 나왔다. 내가 일을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기 때문에 아파도 빠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은희씨는 "몸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살이 나도 나와야 한다. 사람을 못 구하면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다. 하루 이틀 조리원 하려고 여기 오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조리원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보건증과 조리사 자격증, 이력서, 채용신체검사서 등이 필요한데 병가로 나오지 않는 조리원을 대신하는 이른바 '땜빵' 조리원도 이 서류가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 일당 5만 3000원 받는데 신체검사비용 3만여 원을 빼고 서류도 다 준비해야 해서 잘 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사를 하는데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은영씨는 "우리가 밥을 하고 반찬도 만들고 하는데 돈을 내고 먹어야 해요. 밥하는 아줌마들이 밥하고 자기 돈 내고 먹는 사람 봤어요?"라고 물었다.

조리원들의 식대 문제가 논란이 되자 전국의 모든 교육청이 식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제하는 곳은 대구와 제주교육청밖에 없다. 나머지 교육청은 수당 형식으로 인식하고 공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급식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급식조리원들이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음식 조리 시간만큼이나 바쁜 배식 시간

낮 12시 20분쯤 되자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리원들은 신속하게 배식대 앞에서 학생들을 맞았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배식대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조리원들은 조리시간만큼이나 바쁜 시간이라고 했다.

국자를 잡고 국을 떠주는데 학생들의 얼굴을 볼 틈이 없었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학생들의 식판만 바라보며 국자를 내밀기에도 정신이 없을만큼 바빴다. 가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가는 학생들에게 "맛있게 먹어요"라고 말할 틈도 생기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식기를 씻고 주방을 청소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담겨진 식판을 수세미로 닦아내고 다시 흐르는 물 속에 담가 자동세척기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급식실을 청소하고 짬밥을 처리하는 일도 조리원들의 몫이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식판을 씻는데도 이내 손끝이 따가웠다. 금방 찬물에 손을 담갔지만 조리원들은 "우리는 그렇게 일하면 금방 쫓겨날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식판을 닦는 일보다 하나씩 떼어내는 일이 더 힘들었다.

여성노동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해야 하는 후드 청소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조리원들은 "우리는 후드 청소를 하면서 항상 위험을 느낀다"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급식조리실에서 학생들이 먹은 식기를 씻고 있는 조리원들.
 급식조리실에서 학생들이 먹은 식기를 씻고 있는 조리원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일이 끝나고 퇴근시간이 되자 앞치마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조리원들은 그제서야 얼굴에 고인 땀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를 그냥 밥하는 아줌마 정도로만 봐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방학 때가 되면 병원에서 살아요. 손목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픈데, 그런 말 하면 너무 섭섭하잖아요"라면서 "우리도 엄연한 직장이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데 정규직 해달라는 게 뭐가 잘못인가요? 수당 좀 더 달라는 게 뭐가 문제인가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리원들은 앞치마를 벗고 나서는 기자에게 "오늘 일을 해보니까 어때요? 처음엔 어색하던데 끝날 때는 손발이 맞기도 했는데... 낼도 오이소"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흐르는 땀이 마르지 않았다.

조리실에서 식기를 씻고 있는 조리원들.
 조리실에서 식기를 씻고 있는 조리원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한편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는 충북지역에서 '열 탈진'에 의해 호흡곤란을 호소한 급식 노동자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119구급차가 아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며 교육당국이 산재사고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공무직본부 대구지부도 폭염 대비 급식노동자들의 안전대책 매뉴얼을 수립하고 부족인력을 충원해 살인적인 배치 기준을 완화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위생 점검 항목에 급식노동자 안전대책 평가항목 반영과 휴게시간 확보 등도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 급식실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신 대구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 영양교사, 조리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웃음을 잃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태그:#급식조리원, #조리원, #급식실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