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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초안은 아이들의 손에서 나옵니다.'

얼마 전 한 일반계고의 학생부 작성 모범사례를 홍보하는 어느 칼럼 글의 제목이다.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는 가운데, 학생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생부 기록에 애면글면하는 일선 고등학교와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직 교사로서 읽기에 불편하다. 학생부가 '아이들의 손'에 따라 얼마든지 '소설'이 될 수 있음을 자백한 셈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학생부는 담임교사와 교과 담당교사가 한 해 동안 아이들을 수업하고 관찰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장부다. 작성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손'이 개입되어선 안 되는, 오로지 교사만 접근할 수 있는 '관찰 기록장'이다.

물론, 교사가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수업태도를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기록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학생부를 학년 진급이나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학년말에 작성하는 관행 탓이며, 교사가 매일 출결 확인하듯 학생부에 접근해 누가 기록하면 해결될 일이다. 어쩌면 학년말에 몰아서 작성하는 관행이 학생부를 '소설'로 만드는 주범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직접 작성한 걸 참고로 해서 교사가 기록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도 있다. 문제는 아이들의 글을 교사가 '참고'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스스로 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이러저러한 걸 배우고 느꼈다며 글로 정리해 오는데, 어느 교사가 그걸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럴 경우 교사의 몫은 그저 '1인칭'에서 '3인칭' 시점으로 고쳐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기실 아이들이 써서 제출하는 건, 그 내용을 고스란히 학생부로 옮겨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마치 자기가 교사인 양 아예 기록할 영역까지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적어달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검사 받아야하는 일기장에는 솔직한 이야기가 담기기 어렵듯, 그렇게 작성된 학생부가 미화되는 건 불문가지다. 하물며 인생이 걸린 대학입시의 가장 중요한 전형자료임에랴.

고액을 들여 자기소개서 작성을 사교육업체에 의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어느덧 공공연한 비밀이 됐지만, 이젠 학생부에도 시나브로 사교육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한 아이의 말에 따르면, 학원에서 학업 역량이 잘 드러나도록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을 기록하는 법을 배우는가 하면, 아예 기록할 내용을 대신 써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제출한 걸 그대로 학생부에 옮겨 적어주는 현실이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풍경이다.

아이들이 쓴 걸 두고,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다음에야 사실을 검증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설령 미덥지 않다고 해서 대면 조사하듯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이구동성 고등학교 교사가 작성한 학생부 기록은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교사도 아이들이 작성한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일단 '아이들의 손'을 타면, 교사로서 달리 어찌해볼 방도가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생부 기록을 전제로 아이들 스스로 내용을 적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학교가 과연 모범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방식은, 백 보 양보해서, 학년말 교사들의 학생부 작성을 용이하게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일지언정, 결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선의를 믿는 게 교육이라지만, 대학입시에 목매단 그들을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로 내모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교육의 이름으로 부정을 부추기는 꼴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손'만 문제되는 건 아니다. '눈'도 그렇다. 학생부는 학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대개 담임교사가 개별적으로 출력해 아이들이 자신의 것을 눈으로 직접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오탈자를 찾아내고, 누락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할 목적이라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친구들의 학생부와 비교하며 내용과 분량을 만회할 마지막 절호의 기회다. 수많은 아이들이 교무실을 들락거리고, 교사들은 수업은 뒷전으로 미룬 채 학생부 '마사지'에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 때다.

아직 드물긴 하지만, 자녀의 학생부의 내용을 문제 삼아 교사에게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따져드는 학부모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떻든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생각에 교사는 다시 한 번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학생부는 또 그렇게 '설탕'이 입혀진다. 내용은 차치하고 학생부의 분량이 적다는 것만으로도 불안에 떠는 마당에, 서로 얼굴을 붉힐지언정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서로 잘 알고 있다.

이쯤 되면 학생부를 온전히 교사의 몫이라 하긴 곤란하다. 이른바 '학종 시대'에 교사란 아이들을 대신해 학교생활을 기록한 '대필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생부란 더 이상 교사의 눈에 비친 한 아이의 성장 기록이 아니다. 명색이 '교육의 3주체'라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꾸민 '1회용 맞춤형 전형자료', 그것이 곧 학생부다.

급기야 학생부 기록 여부를 무기 삼아 생활지도에 활용하는 교사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효되어 체벌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매의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상이라도 되는 양 학생부를 풍성하게 채워주고, 벌을 주는 대신 비워두는 행태는 학생부의 신뢰성을 허무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를 희화화하고 무력화시키는 자해행위다.

요컨대, 이러한 학생부로 아이들의 역량과 잠재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릇된 확신이다. 아무리 학종을 통해 입학한 경우와 수능점수가 높아 합격한 경우의 학점 등을 비교 분석해 얻은 결과라지만, 대학이 이미 취업준비 기관으로 전락해 지성의 요람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진 마당에 남우세스러운 변명에 불과하다. 아이들조차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을 두고 '신'이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조롱하는 이유다.

이 모든 사달은 학생부가 온존한 학벌구조 속 대학입시를 좌우하는 핵심 자료이기에 생기는 필연적 결과다. 학종이 점진적으로 수업을 바꾸고, 교실과 학교를 혁신시키게 될 거라고 호언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이렇듯 온갖 편법을 양산하며 그 취지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섣부르지만, 숱한 시행착오만 겪다가 결국 흐지부지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 수업을 개선하고 학교를 혁신시키고자 한다면, 단언컨대, 학종이 해답일 수는 없다. 모든 수업을 문제풀이로 대체시켰던 수능보다야 백 번 낫다 해도, 대학입시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된 현실을 상수로 놓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대학입시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깨지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학생부 작성의 모범사례를 홍보하는 그 칼럼 글을 자기도 읽었다며 한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요즘 들어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치여 수업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또, 어차피 대학입시전형의 하나일 뿐인데, 학종으로 수업을 개선하겠다는 건 현실을 너무 얕본 것 같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학종은 실제 수업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학생부 상의 수업만 변화시켰을 뿐이에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학생부를 학생들 스스로 쓰도록 제도화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은 변하지 않았는데, 제도를 단숨에 고친다고 수업이 바뀔까요? 결국 수업을 변화시키는 건 학종이 아니라 선생님들인데, 선생님들이 되레 학종의 노예가 된 것 같아요. 그보단 몇 해 전 이슈화되었던 '학생회 법제화' 등 학교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언뜻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수업의 변화를 이끄는 근본적인 대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친구들과 나눈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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