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포스터

<미션> 포스터 ⓒ (주)피터팬픽쳐스


새벽 2시, 부엌에서 수동녹즙기를 돌리며 영화 <미션>을 본다. 1986년 작품이다. 피곤에 절은 눈이 이과수폭포의 비경에 확 떠진다. 순식간에 행해진 안구 정화다. 거기에 엔리노 모리꼬네의 주제곡 '가브리엘 오보에'가 몽롱함을 거둬낸다. 언제 들어도 매혹적이다. 중세유럽 교회에서 신성함에 비견되어 사용이 금지된 악기 오보에의 음빛깔 때문이다.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어스 분)은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 오보에만 달랑 챙긴 차림이 폭포 위에 사는 원주민 과라니족에게 선교하려는 투지를 전달한다. 주검으로 발견된 선임자를 잇는 걸음이다. 가브리엘은 오보에 연주로써 과라니족을 유인해 교감하고 함께 마을로 향한다. 탁월한 음감을 지닌 과라니족은 자신들에게 도래할 죽음의 미끼를 문 격이다.

<미션>은 1750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주변 오지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 초반부는 과라니족의 삶에 끼어든 가브리엘과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 분)를 갈마들며 조명한다. 출발 동기와 삶의 방식이 다름을 짚는 복선이다. 영화 후반부 학살 현장에서 두 사람은 과라니족과 함께하되 방법을 달리한다.

멘도자는 폭력을 예사로이 쓰는 용병이자 노예상이다. 애인을 가로챈 동생을 결투하다 죽이고 폐인처럼 두문불출하다가 가브리엘을 만나 과라니족 마을행에 합류해 신부가 된다. 그렇게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추후 다시 폭력으로 선회함은 그 자체가 그의 사랑이자 헌신 방식이다. 마을을 지키려는 멘도자의 폭력은 가브리엘의 비폭력적 사랑처럼 인류애를 지향한다.

영화의 종적 줄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패권 다툼에 낀 교황청이 파견한 주교 알타미라(레이 맥널리 분)가 과업을 완수하는 과정이다. 첫 상영 당시 볼 때는 제목 <미션>이 의미하는 바를 단순한 선교라 여겼다.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족을 문제적으로 비추며 가브리엘의 결기를 띄운 첫 장면을 우선시한 오해였다.

비디오로 두 번째 보면서야 주교의 구술로 행해지는 편지체 내레이션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미션>은 그 짜임새를 통해 사회 정의와 정글의 법칙을 충돌시키다 후자의 손을 들어주지만, '미션'의 사전적 정의에 포함된 (가브리엘의) 선교와 (알타미라의) 과업을 오가는 중의성을 띠다가, 두 신부의 죽음을 기리는 주교의 구술을 통해 내심 선교의 궁극점인 사랑을 낙점한다.

그 사랑 지향을 부각시켜 관객을 감화시키고자 함이 롤랑 조페 감독의 의도이리라. 알타미라가 아니라 가브리엘과 멘도자가 <미션>의 두 주연이라는 사실이 그 근거다.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며 종교개혁을 한 지 꼬박 500년이 되는 해인 올해, 기독교 최대 기념일인 부활절 시즌(4월16일)에 맞춰 <미션>이 재개봉된 이유이기도 하다.

주교 알타미라는 제국주의의 패권 다툼 와중에서 종교(카톨릭)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교황청을 대변한다. 따라서 결정을 유보하는 듯한 영화 속 고뇌는 개인적인 포즈일 뿐, 그의 정치적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선교로 세를 불린 예수교도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이 교황청에 대해 절대적 복종을 하도록 아퀴 짓는 일이다. 

폭력 여부에 의해 저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가브리엘과 멘도자는 과라니족과 함께하는 불복종을 택하다 죽는다. 불복종은 파면이므로 그들은 순교자가 아니다. 그에 대해 주교는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살아남은 건 그들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제국주의적 학살을 국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 강변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불복종 장면은 주교와 과라니족의 면담 중에 있다.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떠나라 하느냐며 왜 하나님의 마음이 변했는가에 대해 논리적 답변을 요구하던 족장은, 왕이 답변 자리를 피했다는 말에 자기도 왕이니까 자리를 피하겠다고 면담 장소를 떠난다.

피식민지 원주민은 통치 대상일 뿐 설득 대상이 아니기에 족장의 행동은 학살 집행 감행을 앞당기는 불씨로 작용한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두 번씩이나 연기한 나라의 국민 또한 통치되는 하대를 겪기 쉽다. 환경영향평가로써 환경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와 연계된 '성주 사드반대 평화 행진'의 귀추를 주목하는 이유다.

어쨌거나 영화 <미션>은 '미션'의 풀이에 대해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불길에서 살아남은 과라니 족의 아이들이 폭포의 더 높은 상류로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 인간적 패배를 인정하는 주교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살맛나는  세상을 위한 '살아남은 자'의 미션이 중대함을 암시한다.

원래 그런 세상이란 없다. 언제든 세상을 결정하는 건 구성원들의 마음(생각)이다. 맘먹더라도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말하려면, 감내할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 성주가 그러하듯.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에 끌려 다가서는 과라니족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에 끌려 다가서는 과라니족 ⓒ (주)피터팬픽쳐스



미션 가브리엘 오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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