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구 1000만 명의 시대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보유가구는 2010년 17.4%에서 2015년 21.8%로 증가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했다. 인간이 '키우는 동물에서, 인간과 교감하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렇기에 증가하고 있는 개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반려동물의 종류로 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현재 동물보호단체의 개식용반대 활동은 2000년대 이후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퍼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그렇다면 돼지고기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사실 돼지는 진돗개보다 아이큐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인간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돼지는 주로 식용으로만 인지된다. 물론 돼지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경우가 더러 존재하지만, 대다수 인간들에게 돼지는 고기일 뿐이다. 외식 선호도 1위 메뉴가 바로 돼지 삼겹살 구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돼지는 개처럼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개고기에 대한 인식과 돼지고기에 대한 그것은 비슷해질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이 질문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반려동물, 그 이상

강원도 산골에 사는 미자에게, 슈퍼 돼지 옥자는 반려동물 그 이상이다. '자'자 돌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자와 옥자의 관계는 흡사 일반 가정의 자매 관계와 유사하다. 특히 절벽에서 미자를 구하는 등 옥자의 지능적인 면모는 돼지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만든다.

옥자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은 식사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자는 할아버지와 밥을 먹으면서도, 옥자에게 감을 주기 위해 수시로 자리를 비운다. 미자와 옥자는 식사 시간을 함께 한다. 이는 옥자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에 해당됨을 묘사한다. 또한 미자와 할아버지는 닭 백숙을 반찬으로 먹는다. 이를 통해서도, 닭과 옥자는 모두 마당에서 먹고 자지만, 닭은 식용 고기로 인식되고, 옥자는 가족 그리고 식구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면서, 미자와 옥자의 관계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강원도 산골 밖에서는, 옥자와 같은 처지의 돼지들이 주로 식용으로만 인지된다. 미란도의 도축공장과 관계자들의 돼지를 향한 태도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동물해방전선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나는데,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옥자를 미란도의 실험실에 보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자는 옥자를 구하지만, 미자와 옥자의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미자 또한 돼지에 대한 강원도 산골 밖 사회의 인식을 체득한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고기'가 되는 다른 돼지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사회 속 옥자의 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물론 다시 산골로 돌아온 미자는, 옥자와 폭포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예전과 같은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미자와 옥자는 가족의 관계를 유지한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그러나 옥자, 더 나아가 돼지가 식용으로 인지되는 것을 알게 된 미자가 예전과 같은 인물이라고 보긴 힘들다. 자연스럽게 미자와 옥자 사이에도 관계의 변화가 일어난다. 옥자와 함께 도축공장에서 구출한 새끼 돼지는 마당의 닭에 관심을 가진다. 과거 옥자가 닭에 무관심했던 점과 대비된다. 미자는 묵묵히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다. 옥자는 창문을 통해 이를 지켜보다가 곧이어 자리를 뜬다. 새끼 돼지는 밥을 먹고 있는 미자의 등 뒤에 감을 내려놓고, 뒤돌아 앉는다.

돼지와 개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

그렇다면 영화 <옥자>는, 돼지는 개처럼 가족의 일원이 될 수는 있지만, 돼지고기는 개고기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물론 개와 돼지에 대한 인식이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개 또한 사회 일부에선 식용으로 인식된다. 여전히 개고기는 찬반 논란이 뜨거우며, 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매년 약 300만 마리의 개가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오히려 <옥자>는 돼지를 넘어 개 그리고 인간으로까지 주제를 확장한다.

미자는 옥자와 함께 도축공장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철창에 갇힌 수많은 돼지들 사이를 걷는다. 이는 마치 대규모 식용개 농장 혹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특히 철창 밑으로 새끼 돼지를 밀어 넣는 돼지 부부의 모습은, 흡사 나치의 폭압 속에서 자식만은 살리고자 했던 유대인들과 유사하다.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 심지어 같은 인간에게까지 자행했던 악행을 되돌아 보게 하는 순간이다.

<옥자>에는 통역의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자와 미란도 관계자들 그리고 동물해방전선 사이의 의사소통은 통역이 없이는 진행되지 못한다. 하지만 미자와 옥자는 통역 없이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 이러한 모습은 언뜻 말이 안돼 보인다. 하지만 동물학대와 유기 문제가 빈번하게 지적되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건 통역이 아닌 돼지, 동물 그리고 다른 인간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옥자 인간 통역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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